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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어머니, 우리를 다시 데려가 주세요.” 크름 타타르인 수난의 상징이 된 청년[시스루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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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름반도 행정 청사에 페인트 끼얹어

체포 후 방화 자백했지만 고문 정황

타타르 수난사 겹치며 상징 떠올라

경향신문

보흐단 지자 인스타그램 @bogdan.ziza


2014년 러시아에 병합된 우크라이나 크름반도 서부 도시 예프파토리야의 행정청 출입문은 지난 5월17일 아침 노란색과 파란색 페인트로 엉망이 된 모습으로 발견됐다. 간밤에 누군가 페인트를 끼얹고 달아난 것이었다.

예프파토리야 검찰 당국은 이날 저녁 범인을 체포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소수민족인 타타르계 청년 보흐단 지자(27)였다. 그는 작품과 스포츠 활동을 종종 유튜브에 올리는 예술가다. 그는 러시아 당국이 통제하는 현지 방송에서 “‘특수군사작전’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페인트를 끼얹었을 뿐 아니라 “소이 혼합물로 불을 붙이려 했다”고 말했다. 친러시아 단체들도 친우크라니아 단체가 방화를 목적으로 벌인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자의 사촌 올렉산드라 바르코바는 방송 당시 그의 티셔츠가 찢어져 있었고 얼굴에 구타당한 흔적이 있었다며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건물에 방화 흔적이나 파손된 부분은 없었다.

지자는 현재 크름자치공화국의 수도 심페로폴 교도소에 갇혀 있다. 그는 11월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로 이송돼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제정된 법에 따르면 그는 특수군사작전에 반대한 혐의로 징역 15년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친척들이 구명운동에 나서면서 지자는 러시아 치하 수난을 당하고 있는 크름 타타르인을 상징하는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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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페인트로 훼손된 예프파토리야 행정청사 출입문 /보흐단 지자의 구명운동을 벌이는 인스타그램 @WEBOGDANZI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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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는 크름반도의 예프파토리야에서 태어났다. 그는 13세기 칭기즈칸의 원정을 따라 크름반도로 들어온 튀르크계 민족의 후손인 크름 타타르인이다. 타타르인은 수백 년간 크름반도에서 뿌리내리며 토착민이 됐지만 반도의 지배자가 바뀔 때마다 소수민족으로서 수난을 겪었다.

크름반도는 1787년 러시아 제국의 한 주로 병합된 뒤 1917년 독립했지만 1921년 다시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됐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4년 스탈린은 타타르인이 나치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병에 걸려 사망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하자 타타르인들은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조상들이 갖고 있었던 옛 집과 땅을 되찾지는 못했다.

과거 소련과의 악연으로 타타르인들은 2014년 크름반도 합병 때 투표거부 운동을 주도했다. 반도의 토착민으로서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당시 주민투표에서 러시아와의 병합에 찬성하는 여론은 97%로 집계됐지만 타타르인의 찬성 비율은 30%에 불과했다. 타타르인은 우크라이나에서 주목받은 반면 러시아 당국에는 ‘불온분자’로 찍혔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런 시선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현지인들은 전한다.

르몽드에 따르면 타타르인은 크름반도 전체 인구의 13%에 불과하지만 극단주의나 테러리즘으로 기소된 264명 중 70% 이상이 타타르인이다. 크름공화국에서 타타르 활동가를 변호하는 릴리아 게메지는 지난 7월15일 변호사 면허를 취소당했다. 그는 “타타르인의 변호인들은 체계적으로 기소되거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바르코바는 “반러 입장을 취한 타타르인들은 체포돼 자백한 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지자의 경우 우리가 적극적으로 알려서 당국도 신경을 쓰는 것”이라고 르몽드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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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청 출입문에 페인트를 끼얹은 혐의로 예프파토리야 당국에 체포된 후 방송에 나와 방화할 의도가 있었다고 자백하는 보흐단 지자의 모습


지자는 우크라이나 독립 기념일인 지난 8월24일 감옥에서 쓴 편지를 친척들을 통해 온라인에 공개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긴 이별의 시간 동안 편지를 쓰지 못한 점 사과드려요. (중략) 나는 어리석고 약했어요. 나는 못된 계모랑 어울리려 했어요. 계모는 당신이 날 떠난 이유를 거듭 말했어요. 나는 나중에 당신이 강요당했다는 걸 이해했어요.”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친애하는 어머니, 우리를 다시 데려가 주세요. 우리는 당신의 품에 있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계모는 러시아를 뜻한다. 지인은 지자가 평소 강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지자는 지난 2월 침공 직전에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반전 메시지를 담은 시를 올리기도 했다.

크름 타타르 협회 회장인 케말 무스타파예프는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는 우리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최근에서야 크름반도의 토착민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역설적이다. 국민으로서 타타르인은 전쟁 중 태어났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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