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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친중인가요"…美 서열 3위 펠로시가 물었다는데[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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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 한국 찾은 펠로시 美 하원의장
尹 대통령 방문 무산되자 불만 내비쳐
주한미국대사관 "내부 논의, 노코멘트"
美대사·사령관 초청해 뒤늦은 달래기
29일 해리스 부통령 방한...아쉬움 털까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한국일보

미국 권력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지난달 3일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에 도착해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 대사,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의 영접을 받았다. 반면 공항에 나간 우리 측 관계자는 없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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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주한미국대사관. 전날 한국을 찾은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사관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날 펠로시 의장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예방이 무산됐기 때문입니다. 펠로시 의장은 조 바이든 대통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이어 미 권력서열 3위에 해당하는 정계 거물입니다.

외교 소식통이 전한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이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는 친중인가요”라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대만을 먼저 들렀다가 온 탓에 한국이 중국 눈치를 보느라 윤 대통령과의 만남이 틀어졌다는 의미로 읽힐 만한 대목입니다.

과거에는 달랐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2015년 4월에도 한국에 왔습니다. 방한 기간 박근혜 대통령, 정의화 국회의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두루 만나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7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에서 새로 취임한 윤 대통령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으니 섭섭했을 법도 하겠지요. 한미동맹 공고화는커녕 자칫 균열로 비칠 수도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공식 경로로 미 대사관에 문의했습니다. 대사관 측은 “한국을 방문하는 미 의원들과 정부 인사들은 직원들의 견해도 듣고 한미관계 증진을 위한 노고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종종 대사관 직원들과 만납니다”라며 “이는 내부적인 논의로, 우리는 이에 대해 코멘트 하지 않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만약 펠로시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면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부인했을 텐데, 여러모로 해석의 여지가 남는 미국 측의 반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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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달 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한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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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윤 대통령은 여름휴가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펠로시 의장과 만나지 않았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입니다. 대신 펠로시 의장을 비롯한 방한 대표단과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미 측은 스피커폰을 켜놓고 여러 명이 돌아가며 윤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전례 없는 기묘한 방식입니다.

통화는 40분간 진행됐습니다. 통화시간 40분을 놓고 ‘촌극’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원래 펠로시 의장이 방한 일정을 짤 때 윤 대통령을 예방하는 시간은 30분가량이었다는 겁니다. 외교 소식통은 “원래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통화를 했는데, 이 의미를 미국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왜 우리 스스로 논란을 자초한 것일까요. 당초 미 하원은 펠로시 의장의 아시아 순방국을 발표하면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한국, 일본을 거명했습니다. 이때 대만은 없었습니다. 일부 외신에서 대만 방문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당시 우리 외교부 관계자조차 “대만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전격 방문하자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상황이 험악해졌습니다. 펠로시를 맞이해야 하는 우리 정부의 부담이 한층 커진 것이지요. 더구나 펠로시가 한국을 찾은 8월은 한중수교 30주년(8월 24일) 행사를 앞둔 시기였습니다. 대중관계 관리 차원에서라도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과 웃으며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여기에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역할론도 거론됩니다. 한국 부임 이후 정ㆍ관ㆍ재계 인사들과 전방위로 접촉하는 그의 물밑 작업에 우리 정부가 펠로시 의장을 대하는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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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7월 2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필립 골드버그 신임 주한 미국대사를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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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 의장은 8월 4일 못내 서운함을 안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펠로시 의장 출국 사흘 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주한미국대사관 인사를 만나 미 측의 기류를 파악했다고 합니다. 물론 상황이 서먹해진지라 서로 오가는 말이 매끄럽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에 대한 질의에 대통령실은 “당시 김 실장의 공식 일정표에는 (미 대사관 인사와의 만남이) 없었다“고 부인하면서도 "추가 스케줄은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다시 이틀이 지난 8월 9일 윤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이종섭 국방부 장관, 김승겸 합동참모의장이 배석했습니다. 5년 만에 대규모 야외 실기동 훈련을 재개하는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앞두고 양국 군 지휘관을 격려하는 자리였습니다.

눈에 띄는 건 골드버그 대사의 참석입니다. 대통령실은 군 지휘관 격려 외에 “신임 주한대사 부임을 환영하는 자리였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뒤늦은 ‘미국 달래기’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골드버그 대사가 원래 초청 대상에 없었다는 겁니다. 대통령실은 이 간담회를 공개하지 않다가 이틀이 지나서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29일 해리스 부통령이 한국에 옵니다. 미 백악관은 해리스 부통령의 순방 일정을 공개하면서 처음부터 윤 대통령을 만난다고 못 박았습니다. 5월 바이든 대통령, 8월 펠로시 의장에 이어 미 권력서열 1ㆍ2ㆍ3위 최고위급 인사가 불과 4개월 안에 모두 한국을 찾는 셈입니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위해서라도 펠로시 방한 때의 못다 한 아쉬움이 한껏 가시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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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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