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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에 <박경리 이야기> 쓴 김형국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저서만 50여권 [송의달이 만난 사람]

김형국(80)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달 초 본문만 602쪽 분량인 책 <박경리 이야기>를 출간했습니다. 1942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와 행정대학원 졸업후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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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교수가 1990년대 중반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황학정에서 습사(習射)하고 있다./김형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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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을 현재 맡고 있는 김 교수는 공저(共著)를 포함해 지금까지 50여권의 책을 냈습니다. 이중 상당수는 만 65세 정년 퇴임 이후의 작품들입니다. 노년(老年)이 될수록, 그는 더 정력적인 공부와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기자는 김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생각과 활동 세계, 지향점을 들어봤습니다.

◇원고지 2300장 분량...110주 연재

- 도시계획 전문가가 <박경리 이야기>를 쓰게 된 동기(動機)가 궁금하다.

“2년여 전부터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의 블로그 ‘석양에 홀로 서서’의 초대를 받고 소설가 박경리(朴景利) 일대기를 시작해 110주(週), 즉 2년하고 한 달 반 연재했다. 2022년 5월19일 최종회를 실었는데 원고지 분량만 2300장에 달했다. 중간중간에 박경리의 대표작인 대하소설 <토지>의 구절을 적지않게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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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교수가 나남출판사를 통해 2022년 9월 발간한 저서 <박경리 이야기>. 6쪽에 걸친 박경리 연보와 8쪽 분량의 참고문헌을 담고 있다. 인물 평전을 겸한 박경리 미학(美學) 탐구서이다./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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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집필중인 소설가 박경리. 박경리는 1926년 10월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2008년 5월 세상을 떴다. 대하소설 <토지>를 비롯해 <불신시대>, <암흑시대>, <표류도>, <시장과 전장>, <김약국의 딸들>, <성녀와 마녀> 등을 냈다./조선일보DB


- 소설가 박경리 선생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

“1980년 봄 그때 3부까지 완간된 대하소설 <토지>를 세 번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이후 박경리 선생과 30년 넘게 ‘특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글로써 박경리 선생의 인격을 말하고, 내가 배운 바를 내 전공의 시각에서 재생산해보고자 했다.”

박경리 선생과 교분을 맺으면서 김 교수는 토지문화관 건설위원장, <토지>완간기념사업회 위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 이번 책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 그리고 보람이라면?

“박경리 선생이 작고(作故)한 뒤에야 그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보니 생전에 주고받은 인연 외에 대부분은 문헌을 통해 그의 생애사(生涯史)를 복원해야 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기록을 한 체계로 엮는 게 어려웠다. 박경리의 미덕(美德)은 그의 불운(不運)을 승화(昇華) 내지 초극(超克)하려는 몸짓의 치열함에 있다. 붓 한 자루, 호미 한 자루를 갖고 글이 아니고는 도달할 수 없는 피안(彼岸)의 보람 고지를 향해 그녀는 지성(至誠)으로 투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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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초 강원도 원주시 토지문화관 현관 계단에 앉아 박경리(사진 가운데) 선생이 소설가 박범신, 조용호 씨와 담소하고 있다./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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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8일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토지문화관에서 소설가 박경리씨의 노제가 열렸다. 고인의 영정 뒤로 사위인 김지하 씨(흰 옷 입고 뒷짐 진 남자)를 포함한 참배객들이 따르고 있다./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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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가 2022년 9월 초 낸 <박경리 이야기>의 참고문헌 부분/송의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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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의 이어지는 말입니다.

“박경리의 지극한 불운 내지 박복(薄福)은 평생 계속 됐다. 그는 홀로된 어머니 가정에서 자랐고, 6.25동란 때 남편과 사별(死別)했고, 와중에 어린 외아들은 사고사(事故死)로 잃었다. 외동딸의 남편(시인 김지하)의 오랜 옥살이도 견뎌내야 했다. 이런 슬픔과 누적되는 박복(薄福)을 연민의 틀 속에서 그려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큰 보람이라면 박경리의 ‘한국미학론’을 도출한 것이고, 작은 결실이라면 박경리를 읽으면서 내가 궁금하게 여겼던 낱말의 바른 뜻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국토개발 전공...수도 移轉 반대활동도

- 전공 분야에서는 어떤 책을 썼는가?

“내 전공은 국토연구에서 지역계획 또는 국토개발론이었다. 수도 이전,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발전론, 지역격차 해소론 같은 것을 다루는 분야다. 1984년 <국토개발의 이론연구>를 시작으로 <한국공간구조론>(1997) <고장의 문화판촉: 세계화시대에 지방이 살 길>(2002)을 냈다. 도시 문제를 주제로 해 <사람의 도시>(1985), <하면 안된다: 도시문화를 보는 시선>(1986), <도시 시대의 한국문화>(1989) 같은 학술형 수필집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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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교수가 1997년 낸 저서 <한국공간구조론>/인터넷 캡처


- 사회 참여 활동도 했나?

“노무현 정권이 수도 이전(移轉)을 시도할 때, 나는 반대 취지로 헌법소원을 내며 싸웠다. 최상철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류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당시 나의 동지(同志)였다. 2004년 최상철 교수와 공편(共編) 저서로 <천도 반대운동의 사회학>을 냈다. 2008년 5월에는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 위원장을, 2009년 2월에 새로 발족한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1기 민간 위원장을 맡았다. 2011년엔 <녹색성장 바로 알기>라는 책을 공편(共編)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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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교수가 최상철 교수와 함께 편집해 2004년에 낸 <천도 반대 운동의 사회학>/인터넷 캡처


- 미학(美學)과 예술인 인물 평전, 국궁(國弓) 등 다방면에서 전공 외 서적을 썼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국 화단(畫壇)의 기인(奇人)이었던 장욱진(張旭鎭) 선생을 처음 월간조선에 연재했고 나중에 단행본으로 묶어 1993년 <그 사람 장욱진>을 냈다. 1997년에는 축약본으로 <장욱진: 모더니스트 민화장>을 냈다. 화가 김종학, 조각가 최종태 등에 대한 책도 발간했다. 현장에서 고(古)미술 등을 견문한 경력을 정리해서 산문집 <우리 미학의 거리를 걷다>를 2015년에 썼다. 내가 적은 글은, 좋아하고 사랑했던 마음으로 바라본 미술판 견문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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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7월 13일 화가 장욱진의 신갈 한옥 집들이 날, 김형국(맨 오른쪽) 서울대 교수가 장욱진 화가와 함께 쪽마루에 앉아 있다./김형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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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서울대 교수가 2006년에 출간한 장욱진 화백 추모기. 독특한 미술세계를 구축한 화가의 그림과 인품에 매료돼 그를 만난 저자가 18년간의 교유 기록을 담담하게 엮었다. '한 사회과학도가 회상하는 화가 장욱진'이라는 부제를 달았다./인터넷 캡처


김 교수는 “단독 저술, 공저, 편저 등을 모두 합치면 내 이름을 달고 50권 정도 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식자(識者)들에게 최후 병기(兵器)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도서관에 안 가도 요즘은 알고 싶은 단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검색해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글이야 말로 사람의 정체성(正體性)을 드러내는 금강석(金剛石) 같은 장치이고, 좋은 글은 일생을 통해 구사할 수 있는 식자의 힘이다. 연마하면 ‘그 사람에 그 글’이란 칭찬도 두고두고 누릴 수 있다. 글이 논문의 질(質)을 만든다.”

- 대학·대학원 전공과 다른 다방면의 책을 많이 냈는데.

“학부에서 배운 기초과학인 사회학을 바탕으로 대학원에서 응용과학으로 인문지리학과 도시계획학을 공부했다. 문화예술 관련 책을 낸 것은 서울대 문리대(College of Arts and Sciences)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을 배운 덕분이다. 나는 인문주의(人文主義)자를 양성하는 문리대 졸업생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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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0월 30일 서울대 문리과대학의 축제인 학림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동숭동 교사(校舍) 정문/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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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識者들에게 최후 병기”

김 교수의 이어지는 말입니다.

“인문주의자는 ‘말’과 ‘글’에 방점(傍點)을 둔다. ‘말’은 바람이나 물과 같고, ‘글’은 바위 같다. 나는 알게 모르게 인문주의자의 다른 말인 ‘문필가(man of letters)’를 지향했다. 시(詩), 산문, 소설을 적을 수 있는 사람까지는 아닐지라도 내가 사랑한 것, 배운 것은 그 소재로 산문 정도는 적을 수 있을 정도까지 가야한다고 믿고 노력했다.”

-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면?

“내가 1992년부터 10년 좀 넘게 열심히 한 국궁(國弓)이 그러하다. 활을 쏘면서 그 유래 등을 알고 싶어 활 책을 찾았더니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공부해 2006년 <활을 쏘다>는 책을 냈다. 화살이 나무 사이를 휘돌며 S자를 그리며 날아가는 특성 등을 밝혀냈다.”

그는 “활쏘기의 매력은 시위를 당기는 순간 바로 입선(入禪)에 든다는 점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도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그 순간 사라진다. 정신집중력을 고양할 수 있다. 활을 즐기고 책을 쓰면서 이순신 장군을 만난 것도 큰 배움이었다. 활쏘기 기량(技倆)으로 치면 이순신은 오늘날 활쏘기 체계에선 8단과 9단 사이의 입신(入神)의 경지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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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교수가 국궁을 익히면서 2006년에 쓴 책 <활을 쏘다>/인터넷 캡처


- 김 교수께서 쓴 책들의 저자 소개에 “인문학의 체득은 학예일치(學藝一致)여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적혀 있는데 무슨 뜻인가?

“학문(과학)과 예술을 함께 익히는 학예일치가 인문주의이고 인문학이라는 의미이다. 학문은 사람의 이성에, 예술은 사람의 감성에 착안한다. 학문의 대표 격인 문사철(文史哲: 문학·역사·철학)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고, 미술·음악 같은 예술은 사람을 다정다감하게 만든다. 머리에 든 차가운 지식은 따뜻한 마음에 실어야 제대로 소통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삶의 원칙이 있다면?

“원칙을 내세울 정도의 선언적 삶을 살지 못한 대신, 선현들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다. 이를테면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의 ‘소박한 삶에 고상한 생각(Plain living, high Thinking)’이란 말을 명심했다. 책을 읽는 교양인으로서, 역사에서 등소평이 모택동을 평가했던 ‘공칠과삼(功七過三)’의 기준을 유념한다. 친일 사업가인 화신산업의 박흥식(朴興植·1901~1994)은 일제(日帝)에 군용기를 헌납하는 한편 대전감옥에 갇혔던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1878~1938)를 위해 보석금을 냈다. 해방 직후 종로경찰서 헌병들의 요시찰 인물에 박흥식도 포함돼 있음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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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선생은 1878년 11월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본 경찰에 체포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 지병을 앓다가 1938년 3월, 59년 4개월에 걸친 생을 마감했다./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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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지정학·역사책 더 읽고 공부할 것”

- 건강 관리는?

“정년 퇴직하기 전은 주말마다 북한산 등반을 했다. 미국의 옐로우스톤(Yellowstone), 요세미티(Yosemite) 국립공원 등을 여러 차례, 최소 1주일 이상 경내에 머물며 걷기도 했다. 운동은 국궁을 10년쯤 한 게 전부이다. 지금도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 잠자리에 들면 곧 바로 잠드는 숙면(熟眠)을 하고 있다.”

- 한국미래학회 회장도 지내셨는데 ‘과거에 예상했던 미래’, 즉 대한민국의 현재를 평가한다면?

“한국은 세계화로 가장 덕을 많이 본 나라이다. 한국 인재의 세계 진출은 괄목할만하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거꾸로 가고 있다. 자식조차 부모가 국회의원임을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반미(反美)를 외치면서 자녀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는 공인들은 어떤 사람인가? 원로 미래학자 한 분은 ‘한국 민주주의는 democracy가 아니라 democrazy가 됐다’고 한탄하더라.”

- ‘100세 시대’를 맞는 한국인들에게 삶의 지혜를 공유한다면?

“폐일언하고 독서(讀書)를 권면하고 싶다. 일본 공영방송 NHK가 2018년 10월14일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방영한 ‘건강수명을 늘리자: AI(인공지능)에게 물어 보았다’ 프로를 보면, 장수(長壽)의 비결은 인삼·녹용 같은 약재나 운동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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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의 '건강장수의료센터 외래'에는 큼지막한 번호와 화살표로 각종 검사실·진료실이 표시돼 있다.(사진 왼쪽) 진료 대기 순서를 알리는 모니터에도 환자 3명만 크게 띄워 놓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노인들이 혼자 밥 해먹기 훈련 장면/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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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는 자체 개발한 ‘AI 히로시’에게 600개 이상 질문을 갖고, 10년 이상 추적한 일본 전국 65세 이상 41만명의 생활 데이터를 학습시켰다. 또 5000만건의 학술논문, 25년동안의 뉴스 250만 건, 국가 통계와 연구기관·민간회사가 수집한 수십만 명의 개인 데이터 등을 학습시켜 분석했다. AI가 내린 결론은 ‘건강수명에 가장 좋은 최상책은 운동, 식생활이 아니라 독서’라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일본 전국에서 인구 대비(對比) 도서관 숫자가 가장 많은 야마나시현(山梨県)은 남자와 여자 수명이 각각 일본에서 1위, 3위였다. 이 현은 1945년 패전 직후부터 거의 각급 모든 학교에 사서직을 배치해 독서 습관을 갖게 했다. 충실한 초등교육이 치매 발생을 대폭 낮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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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나시현은 후지산 북부에 있으며, 현청 소재지는 고후(甲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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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계획은?

“자료만 모아놓고 마무리를 못한 글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이야기를 마저 하고 싶다. 정년 퇴직 이후 유념하며 공부해온 한·중·일(韓中日) 동북아 지정학 역사책을 더 읽고 공부할 생각이다. 요즘은 아내와 함께 고종명(考終命·하늘이 부여한 天命을 다 살고 죽음을 맞이함)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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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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