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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일사일언] 횡단보도서 마주친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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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허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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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불이 깜빡인다. 뛰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음은 달려가고 있으나 마냥 젊지 않은 몸은 거부한다. 하얀 줄 끝에 서 있는 신호등이 잠시 멈춰야 할 때라고 말한다.

도심을 걷다 보면 주변 풍경이 갑자기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횡단보도에 섰을 때다. 바삐 어디론가 향하던 이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춘다. 비로소 길 건너 사람들의 정면을 관찰할 기회가 생긴다.

그 짧은 순간 대부분 휴대폰을 바라본다. 가방도 신발도 머리 스타일도 행동도 표정도 비슷하다. 서울뿐만 아니다. 런던, 뉴욕 같은 해외 도시도 비슷한 풍경이다. 개인의 취향이 중요해지면서 각종 소셜네트워크는 개인의 이야기로 넘쳐나는데 어쩜 이렇게 점점 닮아가는 것일까. 비슷한 이미지, 비슷한 이야기를 소비하면서 학습‘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무엇이 멋있는지 어떤 것이 더 세련된 건지, 어떤 와인을 마셔야 할지 어떤 차를 타야 할지.

10여 년 전 ‘핑크시티’라는 인도의 자이푸르에 있는 아티스트 숙소에서 3개월 동안 머문 적이 있다. 한번은 무더위를 식히려고 박물관에 들어섰다. 개인 소장가가 모은 손바닥만 한 신들의 조각상 1만여 점이 전시된 박물관이었다. 코끼리를 닮은 인도의 가네시, 비쩍 말라 고행을 거듭하는 석가모니를 닮은 조각, 예수 그리스도처럼 양팔 벌린 채 서 있는 조각. 각각의 이야기를 지닌 신들이 각기 다른 표정으로 저 건너편 세상에서 나를 향해 서 있는 느낌이었다.

횡단보도에 서면 그때가 떠오른다. 인공지능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을 만드는 시대가 됐지만, 이 세상엔 똑같이 생긴 사람도 똑같은 운명을 사는 사람도 없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우주를 지닌 신일지도 모른다. 비록 옷차림과 표정, 행동은 비슷해졌다 할지라도.

다시 파란불이 켜졌다. 차의 길이 사람의 길이 되는 횡단보도라는 경계 공간을 건너간다. 하얀 줄 하나하나를 건너 맞은편 세상으로 넘어가며 생각한다. 잠시 동안이라도 내 주변 ‘신’들의 얼굴을 바라보자.

[이진준·뉴미디어 아티스트·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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