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정동칼럼] 동독의 재발견과 북한 방송 개방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얼마 전 통일부에서 주최하는 한독 통일자문위원회 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권위주의의 부활, 남미의 핑크 타이드, 동유럽 포퓰리즘의 재등장 등과 같은 민주주의 침식 현상에 대한 독일식 해석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회의였다. 독일 통일의 후유증을 ‘날것’으로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현상 속에서 문제를 재포착하고자 하는 그들의 인식은 우리 통일을 보는 시각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군데군데 남북관계 상황과 한국의 현실 인식을 매끄럽게 독일 측에 전달하며 그들의 인식 지평을 확장시켜 준 통일부의 세련된 노하우도 회의를 매끄럽게 만든 윤활유였다.

경향신문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인상 깊었던 것은 독일 연방정부가 현재 ‘독일 통일과 유럽의 전환을 위한 미래센터’ 설립을 진행 중이라는 점이었다. 미래센터의 설립은 잘잘못을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고, 30년 전의 ‘결정과 선택’이 무엇을 남겼는가에 대한 교훈을 도출하기 위함이라는 강조가 인상 깊었다. 다시 1990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의사결정과 선택을 할 것인지를 돌아보고, 30년간의 발견을 통해 기후 변화 등 유럽의 사회 전환 과정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 방식을 재정립하는 ‘미래 파트너’라는 대목에서는 부럽기까지 했다.

한창 토의가 진행되던 중 독일 참가자들 사이에서 약간의 설전이 있었다. 현재의 독일에서도 여전히 오씨(구 동독인), 베씨(구 서독인)류의 차별이 있는지 설왕설래가 오갔다. 구동독 연방주의 경제력이 독일 전국 평균의 80%가 되었다는 것은 자랑이지만 동시에 불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독일 통일은 수많은 회의감을 극복하고 기적적으로 수행된 과제였다.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그들의 말처럼 ‘운이 좋았던’ 여러 상황이 동시에 일어났고 그것이 독일 통일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이었다. 특히 독일 통일은 유럽 통합 과정과 동시에 진행되었고 유럽 통합의 가장 큰 수혜 국가로 독일이 등장했기에 비관론을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논쟁은 경제적 요인 외에 사회심리학적 측면에 집중되었다. 동독의 구체제가 혐오의 대상으로 되었고, “공공 보육, 전일제 학교, 공중 보건 조직 형태” 등 이데올로기를 벗겨보면 상당히 유용했던 동독의 정책들이 정당히 평가받지 못했던 현실은 현재까지도 구동독 주민들에게 심리적 박탈감을 주고 있는 듯했다. 동유럽식 극우 정당과 극우 운동이 동독 지역에서 더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현실도 거론되었다. 독일 통합의 한계와 동유럽의 포퓰리즘이 연결되는 고리로는 불완전한 설명이지만 보상심리 요인에 대한 정황적 설명은 그럴듯하기도 했다.

분단 독일은 현재의 남북관계보다도 더욱 통합 수준이 높은 상태였다. 77년째 분단상태인 우리보다 30년이나 먼저 성취한 통일이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통일 이전에도 동서독은 상당한 방송 통신 개방과 내독 간 경제협력을 통해 이해도를 높이고 있었다. 서독 라디오와 TV 방송은 많은 동독 가정에서 일상생활의 일부였다. 이에도 불구하고 30년이 지난 현재까지 독일통합에 대한 낙관론이 유보되고 있는 현실은 사회통합이 얼마나 지난한 과제인지, 언어와 역사 그리고 문화만으로 자신할 수 없는 일상의 과제까지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욱이 그것은 동독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서독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교훈은 새로운 성찰이었다. 동독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 때문에 동독인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심리적 지지대’를 박탈하였고 그 때문에 아직도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실토는 충격적이었다.

당연히 북한 정권은 동독에 비할 바 없이 폐쇄적이고 북한 주민들은 남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 리 없고 이런 상태가 77년이나 지속된 한반도 통일의 미래는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 3조와 4조로부터 통일을 명령받고 있는 우리는 남북통일과 사회통합을 회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면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당장 우리에게 제기되는 것은 방송·통신과 관련한 일상의 일들이다. 시대착오적인 북한 자료 통제를 대북 상호주의로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문할 때도 되었다. 지금의 북한 방송과 북한 매체에 대한 통제는 전문가의 독점을 강화하고 있는 제한 개방 체제이다. 북한의 폐쇄성만 탓할 때가 아니라 이제는 북한 매체 접근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줄 때가 되었다. 국민들을 불신하는 장치라면 폐기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직접 북한을 판단할 수 있도록 국민들에게 접근권과 통제권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동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성숙한 반성을 외면할 때가 아니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추모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