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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하루 22원 급락…증시도 블랙 먼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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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이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을 맞았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여진에다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하며 시장이 주저앉았다.

26일 하루 만에 달러당 원화가치가 22원 떨어지며 ‘1달러=1430원’ 선을 단숨에 돌파했다. 엔화와 위안화 값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22원 내린(환율 상승) 달러당 1431.3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달러당 1419원에 출발한 원화가치는 장 초반 단숨에 달러당 1420원을 뚫고 1430원 선까지 밀렸다. ‘1달러=1431.3원’은 종가 기준으로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16일(달러당 1440.0원) 이후 13년6개월 만에 가장 낮다. 원화가치의 급락으로 한국은행이 다음 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3년물 국고채 금리는 13년 만에 4.5%를 넘어섰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3.02% 떨어진 2220.94로, 코스닥지수는 5.07% 급락한 692.37로 장을 마감했다. 코스닥지수 종가가 700선을 하회한 것은 2020년 6월 15일(693.15) 이후 2년3개월여 만이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뉴욕 증시 3대 지수가 하락한 영향으로 1.28% 떨어진 2260.80에 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발 파운드화 약세 소식으로 3%대까지 하락 폭을 키웠다. 3거래일 연속 ‘사자’로 지수를 방어했던 개인마저 돌아섰다. 코스피 시장에서 개인은 2456억원어치 ‘팔자’에 나섰다.

이날 원화가치를 끌어내린 건 영국 파운드발(發) 달러 강세다. 파운드화 약세가 이미 치솟을 대로 치솟은 달러 가치를 더 밀어올린 것이다. 26일 오후 2시40분 기준 파운드화 가치는 파운드당 1.0544달러까지 급락했다. 198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장중 한때 전 거래일보다 약 5% 가까이 떨어져 1파운드당 1.0327달러까지 밀렸다. 패리티(1달러=1파운드)가 코앞이다.

파운드화의 자유낙하를 불러온 건 영국 정부의 감세 정책이다. 경기부양을 위한 소득세율 인하와 법인세 인상 방침 취소 등 70조원 규모의 감세 정책이 대규모 국채 발행으로 이어지며 금리가 뛰고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시장에 번져갔다. 투자자가 파운드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이며 달러 강세를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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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러시아의 징집 소식과 리즈 트러스가 이끄는 영국의 새 정부가 펼치는 감세 정책에 파운드화 강세에 베팅했던 글로벌 헤지펀드가 지난 23일부터 파운드화 ‘패닉 셀’에 나섰다”며 “이들이 달러를 쓸어담으며 달러의 몸값이 더 치솟고,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1973년=100)는 이날 113선을 넘어섰다. 달러인덱스가 113을 넘어선 것은 2002년 5월 이후 약 20년4개월 만이다.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도 수퍼 달러의 기세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중국인민은행은 이날 위안화 가치를 전 거래일보다 0.0378위안 낮은 달러당 7.0298위안으로 고시했다. 2020년 7월 7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진 ‘1달러=7위안’이 무너진 ‘포치(破七)’에 중국 정부는 외환 위험준비금 비율을 오는 28일부터 0%에서 20%로 상향 조정하는 강수를 뒀다. 금융기관이 선물환 거래를 위해 1년간 예치해야 하는 외화 비율을 대폭 높인 것이다. 위안화 가치 방어에 나선 중국 외환 당국의 긴박함을 보여준다.

엔화값도 약세를 이어갔다. 이날 엔화가치는 달러당 144엔 선에서 거래됐다. 지난 22일 일본은행이 24년 만에 엔화 매수에 나서며 일시적으로 달러당 140엔대를 회복하는 듯했으나 다시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엔화와 위안화 약세는 원화값을 더 끌어내리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달 들어 위안화와 엔화 약세 영향이 가세하고 지난주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충격이 더해지며 환율이 달러당 1400원을 넘어 가파르게 상승 중”이라고 말했다.

달러 강세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문제는 원화가치의 하락 속도와 폭이다. 시장에서는 원화가치가 조만간 달러당 1500원까지 밀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백석현 연구원은 “‘1달러=1430원’이 깨졌으니 ‘1달러=1450원’까지 가는 건 시간 문제”라며 “이제 ‘1달러=1500원’까지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내년 미국의 물가 및 한·미 금리 차까지 고려했을 때 원화가치가 달러당 1525원까지도 밀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달러 강세의 분위기가 바뀌려면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기조가 마무리되고 유럽의 경기 침체 불안이 가시는 내년 상반기는 돼야 할 것”이라며 “달러 강세는 적어도 반년 이상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화가치가 흔들리며 한·미 금리 역전에 대한 우려도 더 커지고 있다. 석병훈 교수는 “원화가치는 단기적으로는 한·미 금리 차에, 장기적으로는 경제 펀더멘털에 영향을 받는다”며 “미국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연 4.5% 수준까지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은도 미국과의 금리 차가 1%포인트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밟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장은 한은이 다음 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3년물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349%포인트 오른 4.548%에 마감했다. 국채 3년물 금리가 4.5%를 넘어선 건 세계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0월 28일(4.51%) 이후 가장 높다.

김연주·정은혜 기자 kim.yeo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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