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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자24시] 시대착오적인 '건강가정기본법'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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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무연고자 장례를 주관하다 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의식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해 3월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 장례식을 취재하면서 만난 한 장례지도사의 말이다. 그는 사망 후 법적 가족으로부터 시신 인수를 거부당하고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난 사회 소외 계층들의 사연과 더불어 사실혼·동거 가족은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를 주관하기 어려워 '억울한' 무연고 사망자가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2020년 사망자가 생전에 자신의 장례 주관자를 지정할 수 있게 하는 행정처리 지침이 생겼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가족 범위를 규정하는 법률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취재 경험 때문에 그해 11월 발의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무사히 통과하길 바랐다. 개정안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단위'로 가족을 규정하는 조항을 삭제하며 가족의 정의를 넓혔고, 장애인·이혼 가정 등에 대한 차별 인식을 확대한다는 비판이 있던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를 '가족'으로 수정한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그런데 최근 여성가족부가 앞선 입장을 번복하며 해당 법을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건강가정은 추구하고자 하는 정책적 목표를 나타내고, 가족의 정의는 국가의 보호·지원 대상을 법에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였다. 일각에서 보수 여당과 종교계의 눈치를 본 행태라고 비판하자 여가부는 "개정안으로 인한 소모적 논쟁을 지양하고 실질적 지원에 방점을 두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가부의 행태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식에는 변화가 없을 것 같다. 1인 가구가 40%를 넘고 가족이 아닌 친구·연인끼리 거주하는 비(非)친족 가구원이 100만명 이상인 시대다. 여가부의 2019년 조사에서 이미 응답자 중 66.3%가 '혼인·혈연 관계에 무관하게 생계와 주거를 공유할 경우 가족으로 인정한다'고 답했다. 더 이상 전근대적인 가족상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 여가부의 해명대로 실질적 지원에 방점을 두기 위해서라도 전향적 결정이 필요한 시기다.

[오피니언부 = 이진한 기자 mystic2j@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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