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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매경이코노미스트]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의 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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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경제학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전통적으로 경제학 영역으로 여겨지던 금융, 조세, 무역, 산업 성장 및 규제 등을 넘어서 복지, 의료, 주거, 가족, 교육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경제학 논리와 방법론이 적용됩니다. 최근 경제학은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를 일상의 의사결정에도 적용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원칙,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는 예외일 수 없습니다. 경제학적 사고방식도 기회비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텔아비브대 경제학과 아리엘 루빈스타인 교수는 대학생 764명에게 기업 부사장 역할을 주고, 경영상 이유로 직원을 해고하는 의사 결정 실험을 했습니다.

현재 직원 수는 196명입니다. 부사장은 이 중 몇 명을 해고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96명을 해고하면 이윤은 200만달러, 52명을 해고하면 160만달러, 20명을 해고하면 100만달러, 한 명도 해고하지 않으면 40만달러입니다. 96명을 해고할 때, 이윤은 극대화됩니다. 해고 직원 수가 줄수록 이윤은 줄어듭니다.

참가자는 이윤 극대화와 해고되는 직원의 처지를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 있습니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선택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전공에 따라 참가자는 다른 결정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철학 13%, 수학 16%, 법학 27%, MBA 33%, 경제학 전공 학생 중에서는 46%가 96명 해고를 결정했습니다. 다른 전공에 비해 경제학 전공 학생이 압도적으로 이윤 극대화를 더 많이 선택했습니다. 심지어 경영자가 되는 법을 배우는 MBA 학생보다도 이윤 극대화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참가자에게 해고자 수에 따른 이윤 크기를 수학 공식으로 제시했습니다. 제시된 해고자 수를 간단한 공식에 대입하면, 숫자로 제시한 경우와 똑같은 이윤을 얻습니다. 모든 점에서 앞의 실험과 같고, 단 하나의 차이점은 필요한 정보를 숫자 대신 수학 공식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수학 모델을 주로 사용하는 경제학 방법론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질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숫자로 주어진 경우 전공과 상관없이 전체 학생 중 31%가 96명을 해고합니다. 수학 공식이 주어진 경우에는 무려 75%가 96명을 해고합니다. 수학 공식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자, 참가자는 해고 직원의 처지에 대해 크게 둔감해지고, 의사 결정을 이윤 극대화 방향으로 급격하게 바꿨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참가자의 선택이 전공별로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해고 직원의 처지를 많이 고려하던 철학 전공 학생도 수학 공식을 통해 사유하자, 경제학 전공의 학생과 전혀 차이를 보이지 않게 됩니다.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의 기회비용은 바로 동감 능력 상실입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동감 능력을 인간의 보편적인 도덕 감정이라 제시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경제학을 공부할 때 잃는 것이 동감 능력이라는 점은 너무나 역설적입니다.

재무부 장관, 대통령 경제 자문,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했던 로런스 서머스 경제학 교수는 말했습니다. "독성 폐기물을 저개발국가에 버려야 한다는 경제 논리는 나무랄 데가 없다."

많은 이들의 공분을 일으켰지만, 대다수 경제학자는 서머스의 주장이 효율성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을 잘 이해합니다. 비슷한 논리로 저소득층 복지를 줄이는 것,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 환경을 무시하는 것 등도 효율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우리 경제학자는 논문과 보고서를 쓸 때 서머스의 복사본이 되고 맙니다.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를 적용한 의사결정과 사회정책은 '동감 능력 상실' 편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김재수 美인디애나-퍼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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