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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24] 마음과 전쟁할 때도 거북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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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을 그린 ‘한산’이란 영화가 인상 깊었던 것인지, ‘거북선’이란 단어가 상담에서 툭 튀어나왔다. 약물 치료에 거부감이 있는 이에게 ‘거북선 없이 이순신 장군이 승리했어야 더 좋은 승리이냐, 전쟁에선 승리하면 되는 것이다, 이 약물이 거북선이다’는 말이었다. 어설픈 은유가 담긴 메타포 소통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네요. 이해가 쏙 됩니다’란 답변을 들었다. 마음과 소통하는 데 메타포 한 단어가 때론 상세한 설명보다 효과적이다.

‘마음과 전쟁할 때도 병법이 필요하고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고 공격적인 도움말을 드릴 때가 있다. 사실 마음과 전쟁을 연결하는 것은 어색하다. 마음 관리는 ‘마음과 소통(mindful communication)’하는 일이고 실제 마음에 다가가 꼭 안아주어 위로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마음은 날씨 같다. 변덕이 심하다. 특히 요즘처럼 마음의 변덕이 심하고 부정적 감정이 강한 상황에선 감정과 적정하게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거리 두기를 위해선 감정에 다가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휩싸이지 않도록 내 위치를 지키며 전세가 유리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맷집이 필요하다, 한산도 대첩에서 적을 유인하여 유리한 상황이 올 때까지 거리를 두다 결정적 순간에 학익진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상상해도 좋다. 마음 소통엔 논리적 언어보다 시각적 요소가 담긴 메타포 소통이 효과적일 수 있다.

다면 평가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은 후 의기소침해지고 다른 리더와 비교할 때 자존감이 떨어지는 등 부정적인 생각에 빠진 리더가 이런 마음을 단칼에 끊어 낼 방법이 있는지를 질문했다. 부정적인 감정과 전투할 때도 먼저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마음을 끊는다는 것은 곧장 마음과 한판 붙어 버리겠다는 다급함이 담겨있다. 당연하다. 단번에 내 불편한 감정을 제압하고 싶다.

그러나 먼저 쳐들어가면 안 된다. 이순신 장군처럼 버텨야 한다. 이유는 우울, 의기소침이 찾아온 것은 정상 감정 반응이고 변화에 대한 동기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피드백에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문제다.

내적 성찰과 행동 변화를 위한 에너지인 감정을 끊어내겠다는 것은 전투할 때 대상 설정부터 잘못한 것이다. 일단 불편해도 버티며 실제 핵심 타깃을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거북선을 동원해야 한다. 이 싸움에서 핵심 타깃은 정확한 정보다. 자신을 성찰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믿을 수 있고 내가 필요한 정보를 가진 ‘바로 그 사람’의 대화를 통한 정보와 분석이 필요하다. 그리고 거북선에 구체적인 변화 계획을 태우고 부정적 감정을 동기 에너지 삼아 마음과 일전을 치를 때 승리할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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