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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프런트 야구’ 전성시대 열리나[장환수의 수(數)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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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40년 스타 프런트 열전

이제 프로야구에선 사장과 단장도 유명세를 치른다. 어떤 이들은 감독과 선수 못지않은 팬덤을 자랑한다. 물론 잘해야 칭찬 한 스푼, 못하면 비난 한 바가지이긴 하다. 1년 내내 돌아가는 프로 리그가 정착되면서 선수단을 지원하는 프런트의 중요성이 부각된 결과다. 그럼에도 이들이 주인공인 역사는 찾기 힘들다. 언제나 최고 선수와 우승 감독이 앞 페이지를 장식한다. 깊이 반성하는 의미에서 이들의 얘기를 다뤄본다.

● 파격 송정규 vs 임은주

동아일보

송정규, 임은주


프런트 스토리의 마중물로는 역시 이들이 제격이다. 롯데 열성 팬에서 1991년 단장으로 일약 덕후의 꿈을 이룬 송정규 씨(등장인물 과다 주의·이하 경칭 생략). 얼마 전 ‘롯데의 30년 저주’를 썼더니 바로 연락이 왔다. 그는 기자의 외모와 말투까지 기억했다. 선장 출신으로 훗날 한국도선사협회 회장까지 지낸 그는 ‘필승전략 롯데 자이언츠 톱 시크리트’라는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신준호 당시 구단주가 직접 스카우트했는데, 워낙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의 책은 롯데의 개선책을 제시했다는 평과 비전문가의 일반론이라는 평이 대립했다. 어찌됐든 프로는 성적으로 말하는 법. 하위권을 맴돌던 롯데는 1991년 4위에 오른 뒤 1992년 우승컵을 안았다. 그는 이듬해 사장 승진설까지 나왔지만 해임됐고, 롯데는 이후 가장 오랜 기간 우승 못한 팀이 됐다.

임은주는 하키 선수에서 축구 심판으로 변신한 뒤 강원FC 사장(2013~15년)과 안양FC 단장(2017~18년)을 역임한 여성 스포츠계의 기린아다. 여기까지만 해도 파격의 화신인 그가 2019년 초 키움 단장이 됐다. 야구계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들끓었다. 결국 키움은 여론에 밀려 열흘 만에 단장을 교체했다. 기자는 그의 남다른 카리스마와 추진력을 알기에 ‘키움이 기왕에 사고를 쳤으니 끝까지 밀어붙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 1세대 박용민 vs 조광식 vs 노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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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민


프로 초창기엔 언론인 출신 창단 단장이 많았다. OB 박용민, MBC 조광식, 삼성 노진호까지 6개 팀 중 절반이나 됐다. 이들은 낙하산은 아니었다.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모기업 직원으로서 파견됐다. 두산그룹 총수 일가이기도 한 박용민은 합동통신, 조광식은 동아일보를 거쳐 MBC, 노진호는 중앙일보 기자였다. 단장의 역할에 대해 모르던 시절에 구단 홍보에 신경을 쓴 결과일 것이다. 조광식은 1990년 MBC를 인수한 LG의 창단 단장도 맡았다. 노진호는 1984년 중앙일보로 돌아갔다가 이듬해 빙그레가 창단 작업을 할 때 단장으로 다시 이직했다.

이들은 관리형 프런트로 대체로 무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로 원년인 1982년 우승 단장 박용민은 로열패밀리란 선입견을 깨고 1991년 사장으로 그만둘 때까지 최고의 성과를 보여줬다. 이후 언론인 출신으로는 두산 경창호(합동통신), 롯데 장병수(동아일보), NC 이태일 사장과 김종문 단장(이상 중앙일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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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김용휘 vs 최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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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과 김용휘(오른쪽)


1990년대 들어 비로소 메이저리그식 단장 야구에 근접한 프런트가 나왔다. 투톱은 현대 김용휘, LG 최종준이었다. 김용휘는 20대 때부터 현대그룹의 스포츠단 실무를 맡은 준비된 프런트였다. 농구단 시절 이충희를 영입하는 성과를 냈던 그는 1996년 42세의 김재박을 창단 감독으로 발탁했고, 전준호 임선동 박종호 조규제 박경완을 스카우트해 최단 기간에 현대왕국을 건설했다. 현대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4번이나 우승했다. 이는 해태 전성기에 단장, 사장을 맡은 노주관의 5회 우승에 이은 두 번째 기록이다.

단장 취임 동기인 최종준은 LG 야구단에 이어 축구 배구 씨름단 단장을 거쳤고, 2003년에는 SK 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개 팀 단장은 그가 유일하다. 이후 대구FC 단장까지 했으니 직업이 단장이란 말이 나올 만했다. 그러나 그는 야구단에서 준우승만 3번 했지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3세대 김재하 vs 김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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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하, 김승영


삼성 김재하와 두산 김승영은 위의 두 사람과 나이는 큰 차이가 안 나지만 젊은 시절부터 야구단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점에서 세대가 구분된다. 2000년 취임한 김재하는 해태 김응용과 선동열을 영입해 삼성의 오랜 암흑기를 깨고 3번이나 우승컵을 안았다. 김응용은 2005년 감독 출신으로는 처음 사장에 올랐다. 김승영은 2004년부터 17년까지 최장수 단장~사장 기록을 세웠다. 원만한 성품만큼이나 오랜 기다림 끝에 2015년부터 시작되는 두산 왕조를 열었다.
● 구단주 이장석 vs 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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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석, 정용진


키움의 최대 주주인 이장석은 유일하게 재벌 출신이 아닌 구단주였다. 오클랜드 빌리 빈 단장과 비유돼 ‘빌리 장석’으로 불린다. 김용휘에 이어 프런트 야구를 가장 잘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팀의 대표이면서 사실상 스카우트와 운영팀장을 겸직했다. 하지만 억척스러운 마케팅과 스타 선수 팔기는 명암이 엇갈린다. 각종 재판에 시달리며 현재는 직책을 맡고 있지 않다.

SSG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야구 열정과 구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으로 유명하다. 이제 정용진이란 이름 자체가 구단의 브랜드가 됐다. 연예인 동반 경기 관람은 물론이고 시구에 SNS 홍보까지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정성 덕분인지 SSG은 창단 2년째인 올해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 4세대 김태룡 vs 민경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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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룡, 민경삼


프로선수 출신이 단장에 오른 것은 2008년 히어로즈 박노준이 최초다. 그러나 그는 구단과 갈등 끝에 1년 만에 사퇴했다. 이후 SK 민경삼이 2010년, 두산 김태룡이 2011년 취임했다. 이들은 각각 SK와 두산의 전성기를 이끌며 선수 출신 프런트 시대를 열었다.

취임 첫 해 우승컵을 안은 민경삼은 선수 출신 최초로 사장에 오른 SSG에서 우승하면 프런트로선 두 팀에서 우승하는 진기록의 주인공이 된다. 올해로 12년째 최장수 단장 기록을 세운 김태룡은 두산의 3회 우승 영광을 누렸다.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단장이 된 삼성 송삼봉은 첫 해인 2011년부터 신임 류중일 감독과 호흡을 맞춰 4년 연속 우승을 하고도 건강 문제로 2014년 시즌 중 사퇴해 아쉬움을 남겼다. 주위에선 이름처럼 삼봉은 했지만 사봉은 실패했다는 농담이 나왔다.

● 5세대 선수 출신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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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석


선수 출신 단장은 현장과 구단 운영을 모두 경험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가진다. 올해 10개 구단 단장은 6명이 선수 출신이다. 2020년에는 7명이나 됐다.

염경엽 박종훈 장정석은 감독과 단장을 모두 거쳤다. 현대 선수 출신으로 김용휘의 애제자였던 염경엽은 넥센 감독을 하다가 SK 단장으로 옮긴 뒤 다시 감독으로 보직을 바꾸는 이색 경력을 자랑한다. 이제 국내 프로야구도 메이저리그처럼 프런트 야구 전성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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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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