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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위험한 세상, 그래서 문학 발명됐다" 다정함 들고온 노벨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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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노벨문학상 올가 토카르추크

에세이집 『다정한 서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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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노벨문학상 수상자 올가 토카르추크. 사진 민음사, Karpati & Zarewicz / ZAi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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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서관을 만들고 있어요. 먼 훗날 언젠가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컴퓨터 스크린이 꺼져버리는 날이 올 수도 있는데, 그 때가 되면 종이책이 다시금 가치있고 바람직한 무언가가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60)는 ‘미래’와 ‘공생’을 말하면서 전기가 사라진 세상을 대비해 집에 도서관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안전하지 않은 세상에 필요한 문학… "다정함, 다른 존재에 대한 무한한 공감의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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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토카르추크의 신간 『다정한 서술자』. 사진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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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봉쇄 이후 엮어낸 에세이집 『다정한 서술자』(민음사) 한국어판을 펴낸 토카르추크는 26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와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지구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문학과 책의 가치를 역설했다. 그는 “코로나19 초창기의 공포는 극복했지만 전쟁과 인플레이션, 기후 재앙이라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며 “세상은 인간에게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고, 아마 그래서 인간이 문학을 발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정한 서술자』는 토카르추크가 노벨상 수상 이후 처음 펴낸 책이다. 그간 발표한 에세이와 칼럼, 강연록 중 노벨상 수상 기념 기조연설을 비롯해 강연록 6편과 에세이 6편을 작가가 직접 선별해 엮었다.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긴 이 책에서 토카르추크는 21세기가 요구하는 문학적 대안으로 '다정한 서술자'를 내세운다. 그는 "다정함이라는 이 놀라운 도구는 인간의 가장 정교한 소통 방식"이라며 "글쓰기의 과정에는 다정함, 즉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무한한 연대와 공감의 정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이야기' 천착하는 작가, "지금까지 쓴 건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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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 내부 성추문으로 노벨상 수상자 시상이 미뤄져,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2019년 수상자와 함께 2019년 10월에 발표됐다. 이후 열린 2019년 12월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기조연설에 나선 토카르추크의 모습. 노벨상위원회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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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데뷔한 토카르추크는 2010년 폴란드 문화훈장 은메달, 2018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2018년 노벨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스웨덴 한림원이 "삶의 한 형태로서 경계 넘나들기를 묘사하는 데 백과사전적 열정과 서술의 상상력을 보여주었다"고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밝힌 것과 같이, 그는 현실과 허구를 섞어 가며 변화하는 시선과 인물을 그리는 데 탁월하다.

늘 '새로운 이야기'에 천착하는 작가는 "새로운 텍스트를 시작할 때마다 지금까지 쓴 것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며 "익숙한 사고방식이나 뻔한 행동경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탈중심적인 기벽이 우리 시대에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과 다른 세계관을 인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우리에게 영구히 주어진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유심히 살펴보면 모든 좋은 책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덕분에 세상에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과 질문들, 새로운 발견이 생겨난다" 등 책의 가치를 강조한 에세이를 써냈지만, 인터뷰에서 작가는 "오늘날의 젊은 독자들은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것, 역사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에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시공을 초월한 상상과 환상, 유토피아나 판타지, 혹은 SF에 매료되는 듯하다"며 "유럽의 책 읽는 인구가 점점 줄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노벨상 상금으로 세운 재단 "지속 가능한 미래 위해"



책에서 "탐욕, 자연을 존중할 줄 모르는 태도, 이기주의, 상상력 결핍, 끝없는 분쟁, 책임 의식의 부재가 세상을 분열시켰고, 남용했고, 파괴할 수 있는 상태로 전락시켜 버렸다", "팬데믹이 초래하는 다양한 결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세상을 통제하고 있으며 창조의 주인' 이라는 인식을 깨는 일"이라고 쓴 작가는 노벨상 수상 이후 상금을 일부 출자해 만든 ‘올가 토카르추크 재단’을 통해 미래‧평등‧창작‧다정함을 키워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가장 최근엔 작가가 거주하는 지역 법에 동물권을 명시하기 위한 활동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저의 꿈은 무책임한 인간의 활동으로부터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강과 산, 풍경에 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다양한 창의적인 프로젝트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토르카추크는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과 공동체를 다룬 대하소설을 비롯해 두세 권의 소설을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에세이를 통해 "작가의 정신이란 결국 모든 파편과 조각들을 집요하게 끌어모아 이어붙여, 보편적인 전체를 창조하는 일종의 '종합적인 사고'"라고 말한 바 있는 그는 "앞으로도 천천히, 신중하게 작업할 생각"이라고 글을 맺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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