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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아버지의 해방일지③]“어디 여자가”…빨치산 딸 아닌 자존감 높여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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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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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는 다양한 측면이 있고, 그것을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기본적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산에서 4, 5년 보냈던 사람이었는데, 산에서의 삶이 아버지 전체의 삶을 짓눌러 버렸다. 정지아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지리산=김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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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작가가 쓴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보고 싶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쓴 책이다.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사랑은 숨겨지지 않는다. 누구들처럼 소설을 읽고 웃고 운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사실 ‘빨치산의 딸’은 대학 시절 읽었다. 그 때 여운이 30년이 넘어도 남았다. 정지아가 다시 책을 냈다고 해 지리산이 보이는 구례까지 한숨에 달려갔다. 정지아는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을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끼니마다 밥을 지어내고, 지리산 능선이 보이는 곳에 엄마와 단짝 친구처럼 살고 있다. 그에 말처럼 "쉰 넘어서야 깨달았다. 신이 나를 젊은 날로 돌려 보내준다 해도 나는 거부하겠다. 오만했던 청춘의 부끄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작가를 만나며 배척과 갈등의 말, 금기어로 여겨저온 ‘빨갱이’라는 단어는 유령 같은 것이다. 정지아 작가 아버지 故정운창씨는 조선노동당 전남도당 조직부부장, 어머니 이옥남씨는 남부군 정치지도원이었다. 정지아 작가를 만나는 날 정재욱 지리산 사람들 운영위원이 동행했다. 정재욱 운영위원이 작가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기자는 그 내용을 3회에 걸쳐 정리한다.<편집자주>

[더팩트 | 지리산=김도우 기자] 정지아 작가는 "어디 여자가" 이런 말 한 번도 듣지 않고 살았다.

어릴 적은 가난과 빨치산의 딸로 컸지만, 정말 좋은 부모 밑에서 자존감 높게 살았다고 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부부이면서 동지였다. 진정한 사랑이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서인지 아직도 연애를 못한다. 지금도 그런다. 사랑보다는 허구한 날 노선투쟁만 하니..."

작가는 웃어 보였다.

그는 "부모에게 받은 여러 가지 중에 자존감 받은 게 좋았다"며 "신춘문예 받았을 때 다른 동기들은 부모가 안 왔는데, 나는 와서 너무 좋아해주셨고, 너는 뭘 해도 잘 된다. 부모는 기 안죽이고, 그렇게 키웠다"고 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장례식장에서 3박 4일 동안 문상객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2·3명은 실존 인물이고, 나머지는 작가가 만들어 낸 인물이다.

인물을 새로 만들었지만, 아버지가 예전에 했던 말을 인용했다.

평소 짐작도 못했던 아버지의 인간관계에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됐다.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아버지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 이었다"

빨치산 출신 동지부터 베트남전 상이용사까지, 아버지의 첫 결혼 상대자의 여동생부터 어머니의 옛 시동생 식구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장례식장을 찾지만, 고인의 유일한 형제인 작은 아버지는 부고전화에도 말이 없고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빨치산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고, 아버지도 군인의 총에 죽었다며 형을 원수 취급했던 작은 아버지의 아픈 기억도 있었다.

부모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다.

작가는 죽음도 자기 성정(性情)에 따라 죽는 거 같다고 말한다.

부모님은 너무 강건해서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치매였다.

뇌에 동전만한 이상이 있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이었다.

아버지는 3일 만에 퇴원했다.

잠시도 엉덩이를 붙이고 있지 못했다. 일흔여덟 나이에도 그러셨다.

아버지 걸음걸이가 이상해서, 물어보니 교통사고가 났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 때도 "오죽하면 그랬겄냐"라며 곧장 합의했고, 그 후유증을 이기지 못했다.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을 싫어했던 아버지는 교통사고 당시 치료만 잘 받았어도, 혈전성 치매는 오지 않았고, 금새 돌아가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식에게도 폐 끼치기 싫어 술먹고 전봇대에 돌아가신거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식사도 아침10시 저녁 6시에 한다.

바깥에는 부끄러워 나오지도 않는다.

오래 사는 게 부끄럽다는 것이다.

기자 일행이 방문했을 때도 나오지 않으셨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뵐 수 없었다.

정지아 작가는 "문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남에게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신다. 방에서 혼자 운동하시고 딸 에게도 미안해하신다"고 전했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는 '공산당 선언'으로 학습했고, 지금도 그렇게 사시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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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의 “나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자, 뒤늦게 아버지의 굽은 등과, 그 등에 새겨진 수많은 슬픔을 뒤늦게 이해하게 된 자식들의 애절한 전상서로 읽힐 수도 있겠다. 사진은 지리산 능선이 보이는 구례 백운산 자락./지리산= 김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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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책에 나온 사람들이 아버지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인데 지금 내 인연이 되었다"며 "직장에서 맺어진 인연은 나오면 끝나지만, 부모가 맺은 인연은 나에게 연결되었고, 지금 다시 새로운 인연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중요한가를 나는 우리 부모에게 배웠다"고 강조했다.

정 작가는 구례에 내려온 뒤부터 1박2일 이상 어디 나갈 수 없다.

어머니가 다른 사람 밥 해주는 것을 못 먹기 때문이다.

묶인다는 불편함도 있지만, 이걸로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말한다.

이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지인들이 구례로 내려오고, 같이 있다 보면 그야말로 ‘찐친’이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저는) 글 쓰는 시간이 짧다. 단편은 길어야 3일을 넘지 않는다. 대신 구상을 아주 오래한다"며 "(제가 할 줄 아는 게) 생각하고 떠들고 글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3대 여성 시대의 삶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준비하고 있다. 또 17세 소년과 40대 중반 여성의 사랑이야기도 쓰고 싶다고 했다.

60대 노인들의 섹스 이야기 등 머릿속 생각은 많다고 했다. 그런데 언제 시작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선대 초빙교수, 강연 등 하며 어머니 모시고 잘 살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여성지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피부로 느끼며 말이다.

scoop@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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