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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좌절을 견디면 희망이 온다"... '도플갱어' 성악가 사무엘 윤·김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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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첫 듀오 콘서트 '도플갱어'
국제 음악 축제·콩쿠르서 '한국인 최초' 공통점
"클래식 음악계에 활력 불어넣는 자리 되길"
한국일보

듀오 콘서트 '도플갱어'를 앞두고 23일 기자들과 만난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오른쪽)과 바리톤 김기훈이 마포아트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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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음악 여정은 참 닮았다. 두 성악가에게는 '한국인 최초'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유럽 오페라 축제 개막작의 주역으로, 세계적 권위의 성악 콩쿠르 아리아 부문 우승으로 '첫 한국인'의 기록을 썼다. 숱한 실패를 견딘 끝에 거둔 성과인 점도 공통적이다.

'바이로이트의 영웅'으로 불리는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51·윤태현)과 지난해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 아리아 부문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기훈(31)이 27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여는 듀오 콘서트의 타이틀을 '도플갱어'로 정한 이유다. 공연에 앞서 23일 기자들과 만나서도 두 사람은 상대에게서 자신의 미래와 과거를 읽어 냈다. 김기훈은 "사무엘 윤 선생님에게 미래의 나를 투영하며 나도 10년 후, 20년 후에 이토록 진지하고 열정적인 음악가로 남을 수 있을지 생각하곤 한다"고 했고, 사무엘 윤은 "김기훈은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바리톤이고 20년 전의 나는 김기훈만큼 잘하지 못했다"고 응수했다.

두 사람의 첫 듀오 콘서트인 이번 무대는 해외 활동이 활발한 스타 성악가들의 조합이자 보기 드문 베이스 바리톤과 바리톤 성부의 만남으로 눈길을 끈다. 이들은 성부 조합에 맞는 프로그램 구성 문제가 좀처럼 풀리지 않자 아예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 했다. 1부 전체를 독일 예술가곡 8곡으로 꾸며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했다. 슈베르트의 '도플갱어', '죽음과 소녀'로 시작해 마지막 곡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내일'까지 이어 부르면서 한 남자가 암흑 같은 시간에서 서서히 빠져나와 밝은 미래를 바라보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연극적으로 소화하기 위해 음역대가 다른 두 사람이 한 곡을 나눠 부르거나 같이 부르기도 한다. 사무엘 윤은 "음악가로서 성장하면서 힘들었던 경험을 담아 결국 누구에게나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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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마포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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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독일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벌 개막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인공을 맡으면서 전성기를 맞은 사무엘 윤은 "러시아 레퍼토리를 빼놓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대부분 다 했다"고 할 정도로 세계 무대를 왕성하게 누비는 오페라 가수다. 최근에는 독일 주정부가 수여하는 독일어권 성악가 최고 영예인 '궁정가수' 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국제 콩쿠르에서 14번 고배를 마신 20대가 있었다.

김기훈의 카디프 콩쿠르 우승은 좌절이 쏘아 올린 성과였다. 그는 2019년 차이콥스키·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각각 2위를 하고 세계적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인 아스코나스 홀트와 계약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일정이 미뤄졌다. 더 이상 콩쿠르에 나갈 생각이 없었지만 설 무대가 사라지면서 두려운 마음을 안고 다시 도전했고,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었다. 얼마 전엔 영국 글라인드본 오페라 페스티벌의 '라보엠' 무대에 섰고, 내년 4월부터 다시 본격적인 외국 일정이 잡혀 있다. 김기훈은 "글라인드본에서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느낌을 다시 받고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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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김기훈. 마포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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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장기화에 경기 둔화 우려까지 커지면서 최근 클래식 음악계는 일부 젊은 스타 연주자들의 공연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침체된 분위기다. 스타 성악가인 두 사람이 색다른 무대를 꾸미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사무엘 윤은 "이번 공연이 하나의 돌파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기훈은 "연기와 함께 '보이는 클래식'처럼 짠 이번 무대가 대중이 클래식 음악을 조금 더 쉽게 접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공연의 2부는 두 성악가의 대표적 오페라 아리아 레퍼토리로 구성했다.

2015년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음악과 인생 조언을 구하고 전하며 오랜 시간 내적 공감대를 형성해 온 사이이기도 하다. 사무엘 윤은 독일 쾰른 오페라 극장의 종신 가수였지만 지난 3월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되면서 독일 생활을 정리했다.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사무엘 윤이 김기훈에게, 또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항상 같다.

"순간의 반짝거림에 연연해 꾸준함을 잃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죠. 단지 기술자가 되는 게 아니라 음악가의 소양을 갖추고 그에 앞서 좋은 사람이 되라고 조언합니다. 김기훈 후배도 이런 제 이야기를 잘 들어줬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가 만들어진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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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왼쪽)과 바리톤 김기훈이 23일 마포아트센터에서 듀오 콘서트 '도플갱어'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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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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