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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실리콘밸리는 10%의 기술과 90%의 다양성으로 움직인다" [실리콘밸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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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신기욱 스탠퍼드대학교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최첨단 기술도 사람이 만드는 것
글로벌인재 모으는 힘은 문화적 다양성
인도·중국계 없었다면 실리콘밸리 불가능
한국, 인프라만으로는 성장 한계
다국적 인재 수용할 문화 갖고 있나
퍼스트무버 되려면 '다름' 존중해야


파이낸셜뉴스

신기욱 스탠퍼드대학교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소장은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실리콘밸리와 같은 혁신 DNA를 장착하려면 글로벌 인재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부터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홍창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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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물론 아시아 국가에서 저에게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것이 뭔지 아세요? 실리콘밸리 혁신 비결이 뭐냐는 거에요. 어떻게 하면 실리콘밸리를 따라잡을 수 있는지도 묻습니다. 그 질문 자체가 틀린 겁니다. 혁신과 기술이 미국에만 있나요. 러시아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국가에는 실리콘밸리가 없을까요."

【파이낸셜뉴스 실리콘밸리(미국)=홍창기 특파원】 24일(현지시간) 신기욱 스탠퍼드대학교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소장은 실리콘밸리가 기술만으로 생긴 곳이라는 편견을 깨야 한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전 세계 첨단 테크와 혁신이 공존하는 실리콘밸리는 문화적 다양성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기술 10%, 다양성 존중 90%

신 소장은 "최첨단 기술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는 말부터 꺼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과 기술은 미국만의 것이 아니라 글로벌 인재가 모여서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글로벌 인재를 모을 수 있는 힘이 뭐냐. 바로 문화적 다양성이다"라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에 인프라가 잘 갖춰졌다고 해서 전 세계 우수 인재들이 머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신 소장은 "실리콘밸리의 혁신은 글로벌 인재들이 적응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힘을 낼 수 있기에 가능했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실리콘밸리의 힘은 기술이 10%라면 90%가 문화라는 것이다. 그는 "실리콘밸리라는 것이 미국 백인이 만든 것이 아니다"면서 "이민자들이 많든 것이다. 인도와 중국계가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 소장은 "한국이 실리콘밸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기자에게 역으로 질문했다. 그는 "한국이 다양한 국적의 인재를 수용할 수 있는 문화가 있느냐"면서 한국이 실리콘밸리와 같은 혁신 DNA를 장착하려면 글로벌 인재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부터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소장은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야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이 나온다"면서 "한국이 최첨단 기술과 혁신을 갖추려면 문화적 다양성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다양성 존중 못하면 '퍼스트무버' 못돼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에는 표준화가 중요했고 그런 힘으로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신 소장은 "적은 인구수로 한국이 이만큼 온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면서도 "글로벌 인재가 한국에 와서 같이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는 문화없이 한국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새로운 제품,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는 될 수 있지만 선도자를 말하는 퍼스트무버(First mover)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소장은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넷플릭스, 아마존 등 미국 기업들 모두 스타트업이었다"면서 "지금은 엄청난 영향력으로 그들만의 플랫폼을 만들어 전 세계를 장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다양성을 강조했다.

한국인들이 영어를 상당히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실제로도 영어를 잘하는 한국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는 신 소장은 "글로벌 인재도 중요하지만 다른 민족, 문화, 배경을 이해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인, 흑인, 아시아계를 마음속으로 나눠서는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없다는 설명이다.

■로마법만 고집하면 로마에 아무도 안 가

그는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예를 들었다. 신 소장은 "이스라엘도 한때 한국처럼 타문화에 상당히 배타적이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전 세계 스타트업의 성지가 됐다"면서 "텔아비브(이스라엘의 수도)가 실리콘밸리처럼 된 것은 다른 문화를 수용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그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격언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현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로마법만 고집하면 로마에 아무도 안 간다"고 힘줘 말했다.

신 소장은 한국에서 일하는 해외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전한 일화도 소개했다. 신 소장은 "그들이 묘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 스스로가 한국에서 거주하는 소수계 인종을 모르게 차별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야 봐야 한다"면서 '인터컬츄럴 스킬'을 또 한번 얘기했다.

■미·중 갈등 기회지만 냉철한 시각 필요

신 소장은 "트럼프 정부 때는 미국이 중국을 매우 거칠게 다뤘다면 바이든은 더욱더 촘촘하게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라며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잘 아는 참모들이 많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더 어려울 것이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미국에게 도전하고 있지만 결국 구 소련이나 일본처럼 실패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이 간단한 나라가 아니라며 미국의 한미동맹은 자국 이익을 강조한 동맹이기 때문에 미국을 냉철하게 봐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소장은 "미국은 한국이 필요하면 한국에 있는 것이고 필요 없으면 떠날 것이다"며 한국이 미국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소장은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과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세를 늘려갈 입지가 커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 자본의 투자를 받는 것이 상당히 리스크하다는 인식이 크다"면서 "중국과의 기술협력에서도 비슷한 기류가 있는 만큼 한국이 이를 잘 파고 들면 기회는 분명히 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뉴스

신기욱 스탠퍼드대학교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소장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학교 아시아태평양연구소에서 실리콘밸리만의 특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홍창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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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 소장은
아이오 대학교와 UCLA 교수를 거쳐 지난 2001년부터 스탠퍼드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스탠퍼드 대학교에 처음으로 한국학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지난 2005년 부터 스탠퍼드 대학교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소장을 맡고 있다. 국제관계 전문가이며 실리콘밸리를 그 누구보다 잘 하는 석학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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