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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분단과 연좌제 상처 딛고 불교 구도 소설 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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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만다라' 김성동 작가 별세
한국일보

대표작 '국수'가 완간된 2018년 당시의 김성동 작가. 솔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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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만다라'와 '국수'로 유명한 김성동 작가가 25일 충북 건국대충주병원에서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75세.

1947년 충남 보령 출생인 고인은 조선조 마지막 과거에 진사 급제한 증조부에게 한학을 배웠다. 증조부는 한일합방 때 곡기를 끊어 생을 마쳤고, 남로당 지도자 박헌영의 비선이었던 부친은 예비검속으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중 한국전쟁이 나면서 수천 명의 사상범들과 함께 처형됐다. 연좌제 족쇄로 정상적인 삶이 어려워지자 1964년 서울 서라벌고를 중퇴하고 도봉산 천축사로 출가해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고인이 방황 끝에 탈출구로 선택한 것은 문학이었다. 1975년 '주간종교'에 첫 단편 소설 '목탁조'가 당선돼 등단했고, 정식 승적이 없었던 고인은 당시 소설 내용을 문제 삼은 조계종에게 '승적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 제적한다'는 통고를 받았다.

1976년 환속한 뒤 1978년 중편 '만다라'로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이듬해 장편으로 개작해 출간됐다. 수도승 법운이 지산이라는 파계승을 만난 뒤 깨달음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 불교 구도 소설의 한 정점에 오른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한국 사회의 병폐와 세속적인 불교를 비판한 이 작품은 1981년 임권택 감독의 대표작이 된 동명 영화로도 제작돼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후 '엄마와 개구리', '먼산', '별' 등의 단편과 '피안의 새' 등 중편을 잇달아 발표했다.

1983년 '문예중앙'에 부친의 삶과 죽음을 다룬 '풍적'을 연재하다가 부친의 사상과 활동을 다룬 부분 등이 검열에 걸려 삭제되는 일이 생기자 집필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 무렵 큰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가 사흘 만에 깨어났고, 몇 차례에 걸친 뇌수술 등을 거쳐 석달여 만에 병원에서 퇴원했다.

'국수(國手)'와 '꿈'도 고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바둑 고수 또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 일인자를 뜻하는 제목의 '국수'는 1991년 문화일보 창간호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 27년 만인 2018년 5권으로 완간했다. 180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임오군변과 갑신정변 무렵부터 동학농민운동 전야까지 다양한 분야의 예인과 인간 군상을 그린 시대극이다. '꿈'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불교신문'에 연재한 소설로 젊은 승려 능현과 여대생 희남의 사랑을 중심으로 구도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고인은 2019년 해방 공간에서 좌익운동에 투신한 부모와 연좌제에 시달린 가족사를 고백하는 자전적 단편 세 편을 묶어 소설집으로 내놓기도 했다.

생전에 이태준문학상(2016), 현대불교문학상(2002·1998), 신동엽창작기금상(1985) 등을 받았다. 빈소는 건국대충주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이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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