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3 (화)

[취재파일] 한미, 한일 정상 만남…'굴욕', 구걸'로까지 평가할 일일까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이 5박 7일 간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이슈를 모두 집어삼키고 있다. 성과가 적지 않았던 지난 6월의 나토 순방은 '인사비서관 배우자의 동행'만 남았고, 이번 순방은 'XX'로 대표되는 비속어만 남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아무리 사적 대화라고 해도 그것이 공개된 장소에서 발화된 순간부터는 더 이상 사적일 수 없다. 하루 24시간 전체가 공적일 수밖에 없는 대통령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일을 더 키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15시간만의 해명은, 문제의 발단이 대통령 본인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이라는 말을 언급한 적이 없다', '바이든 이라는 말을 언급한 기억이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해명까지 15시간이 걸린 건 윤 대통령의 이런 입장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그래도 'XX'라는 비속어에 대해 대통령실은 정정하지 못했다. 대통령실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 상황은 윤 대통령 본인 발언으로 촉발된 일인 만큼,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 전에는 수습이 불가능하다. 비속어 사용에 대해서 깨끗이 사과하고, 해명할 것이 있다면 직접 해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아니, 그런 상황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 국민은, 그리고 우리나라는 '비속어 논란'으로 시간을 허비해도 될 만큼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비판에 단초를 제공한 대통령실, 그래도 '구걸'이란 평가는 적정할까



비속어 발언이 발생하기 전에도 야당인 민주당은 이번 순방에 대해 '굴욕', '구걸', '참사'라는 표현을 써 가며 비판했다. 아쉬움은 있을 수 있다. 항상 현실은 기대에 못 미친다. 한 번에 속 시원한 결과를 내기 힘든 국가 간 외교는 자주 실망을 주기 마련이다. 사람도 갑자기 가까워지기는 어렵고, 멀어졌던 사람 특히 나한테 해코지를 했던 적이 있거나 뒤통수를 친 것 같은 사람과의 화해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기대가 클수록 실망은 큰 법. 이번 순방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실망이나 아쉬움을 넘어 '구걸'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한미-한일 정상 만남을 평가하는 건 적정한 것일까.

물론, 이런 평가의 단초는 대통령실이 제공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발언이 화근이었다. 김 차장은 지난 15일 "한미 정상회담,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해 놓고 시간을 조율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으로 한미, 한일 정상회담 개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고, 순방에 대한 기대치는 한층 높아졌다.

그런데 일본 측에서 "정해진 게 없다", "안 만 날 것이다"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고, 미국 측에서도 호응이 없었다. 김 차장의 발표는 정상회담 개최는 양국이 동시에 발표하는 관례와도 달랐다. 저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참고 : 정상회담에 대한 한일 양국의 엇갈린 입장 발표, 왜? ) 발표 자체의 전략 측면에서도 의아한 일이었다. 소위 '앓는 소리'를 해가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기대치를 낮춰야 평균적인 결과만 내도 더 높이 평가 받는다는 게 사회생활의 불문율인데, 발표를 통해 사전에 기대치를 왜 이렇게 잔뜩 높이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상황 변화 많은 다자외교에 더해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변수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황 변화가 많은 유엔 총회라는 다자외교 무대에 더해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이라는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진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다.

지난 8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했다. 영국 왕실은 다음날인 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을 18일 '국장'으로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때부터 9월 20일 유엔 총회 개막에 맞춰져 있던 각국의 대·내외 일정들이 조정되기 시작했다.

미 백악관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주요 감염병 퇴치를 위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조달회의를 이번 달 19일 뉴욕에서 주최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논란의 발언이 나온 바로 그 회의다. 하지만, 회의는 이번 달 21일(현지시간)로 연기돼 개최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국장의 여파다.

미국 정상은 유엔 총회에서 관례에 따라 브라질에 이어 2번째로 기조연설을 해 왔다. 유엔 총회 개막은 20일로 앞서 예정되어 있었는데, 미 백악관 측이 기조연설 하루 전에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조달회의'를 계획한 것이다. 회의 주최 성과를 바탕으로 기조연설에 힘을 싣기 위해서로 풀이되는데, 오는 11월 8일 중간 선거를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의 성과로 만들기 위한 기획 차원으로 풀이 된다.

어떤 외교 일정도 국내 선거 일정보다 앞서기 어려운 현실



그런데 재정조달회의와 바이든 대통령의 유엔 총회 기조연설은 모두 지난 21일로 연기돼 이뤄졌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의 여파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9일 장례식을 마치고 바로 미국 뉴욕으로 날아오지도 않았다. 미국 내 사정을 이유로 워싱턴 DC에 하루 갔다 오는 것으로 일정이 바뀐 것이다. 이로써 바이든 대통령이 뉴욕에 머무는 시간은 이틀에서 단 하루로 줄었다.

미국 내 사정은 민주당이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정치자금공개법'(Disclose Act) 통과 촉구 연설 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역시 중간 선거를 한 달 여 앞둔 바이든 대통령에게 있어 사활이 걸린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과 중간 선거를 앞둔 미국 내 사정이 맞물리면서 미국과 정상회담을 추진해 온 국가들에겐 비상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갑작스런 상황을 감안하면 비록 '48초'에 그쳤지만, 한미 양국 정상이 조우했다는 것도 평가할 부분은 있다. 일본 역시 윤 대통령과 같은 장소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짧은 대화를 나눈 것과 비교해서도 그렇다. 국내 지지율 하락세인 기시다 일본 총리 역시 외교 성과로서 '미일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지 않았을까. 미국이 시간을 쪼개 정상회담을 가진다면 한국이 일본 보다 우선순위에 있었을까. 불편한 진실을 직시할 필요도 있다.

물론 '48초 대화'로 스치듯 안녕한 듯 한 한미 정상의 조우는 매우 아쉽고, 실망스럽다. 역시 대통령실이 정상회담 개최를 자신 있다는 듯 예고하며 기대감을 높였기에 실망감이 더욱 크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 발생과 일정 변경, 냉혹한 현실을 감안할 때 한미 정상 간의 만남은 성에 차지 않고 기대에 많이 못 미치지만 '굴욕', '참사' 등의 수사를 동원하면서까지 비난한 필요는 있을까. '48초 만남'에 대한 야당의 과도한 비난이 앞으로 미국의 콧대를 더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국익을 위한 것일까.

한일 관계 사실상 방치했던 민주당의 한일 정상회담 평가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굴욕', '참사'에 더해 '구걸'이라는 수식어까지 동원한 야당의 비판은 온당하고 적정할까. 반복해 얘기하고 있지만, 단초는 김태효 차장의 발표가 제공했다. 기대치만 잔뜩 높이고, 자칫 만남 자체를 무산 시킬 수도 있었던 그 발표가 이후 일본 측의 반발과 현재와 같은 비판이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다. 한일 관계 개선을 외교 정책 우선순위에 둔 윤석열 대통령을 보좌하는 대통령실 참모들은 그간 놓친 것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를 점검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질 필요가 있다.

한국 기자들도 없는 곳에 마치 일본 측 요구에 따라 비밀작전을 수행하듯 기시다 총리를 만나러 간 모습을 일본 기자가 찍은 영상을 통해 보는 현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불만스럽다. 하지만, 그걸 '구걸'이라고까지 비판하는 건 어떨까. 특히나 '죽창가'로 대표되듯,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를 위한 수단으로 소비하며, 문제의 해결보다는 방치를 통해 역대 최악의 한일 관계를 야기했던 야당이 그나마 대화의 물꼬를 튼 만남을 '구걸'이라고까지 비판하는 건 지나친 것이 아닐까. 민주당의 비난이 과거사의 가해자임에도 관계 개선의 해법을 요구하는 일본의 콧대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국익을 위한 것일까. 한일 관계 개선은 아예 필요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국민과 국익을 위한 온당하고 적정한 비판



다시 한 번 반복해 확인하고 있지만, 비판의 단초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제공했다. 하지만, 비판의 크기는 잘못에 상응할 필요가 있다. 비판을 넘어선 비난과 저주에 가까운 비판은 특히 외교 영역에 있어선 국익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다. 모든 이슈에서 으르렁대는 여야 의원들이 '의회 외교'라는 이름으로 외국에는 함께 나가는 것은 단지 외유를 즐기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외교에는 여야가 없기 때문이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 국익을 보호하고 증대시키기 위해 질책과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독불장군식 외교정책의 후과는 대통령 임기 5년을 넘어 영향을 미치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굴욕','참사','구걸'이란 수사까지 동원한 주장은 비판일까, 비난일까. 치열하게 싸우고 비판하더라도 그 결과는 특정 정파나 정당이 아닌 국민 모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라야 한다. 더욱이 외교 영역에서라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한가. 과도한 용어까지 사용해 가며 공격과 수비를 하고 있는 여야 모두에 대한 질문이다.
박원경 기자(seagull@sbs.co.kr)

▶ 네이버에서 S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가장 확실한 SBS 제보 [클릭!]
* 제보하기: sbs8news@sbs.co.kr / 02-2113-6000 / 카카오톡 @SBS제보

※ ⓒ SBS & SBS Digital News Lab. : 무단복제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