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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신뢰받지 못하는 검찰…‘법’(法)이 ‘물’(水) 품은 이유 되새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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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상수의 철학으로 바라보기

법을 어지럽히는 자들

당 헌종 때 범죄 저지른 아전들

법 농간을 장물죄보다 엄히 다뤄

법의 근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죄 다룰 때는 공평하되 단호해야


한겨레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특검법 발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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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헌종 때 어사와 어사중승 등의 벼슬을 지낸 문인 유공작이 산둥성 절도사로 갔을 때, 그 지역 아전 두 명이 죄를 범해서 잡혀 왔다. 한 사람은 도둑이 훔친 장물을 거래하는 장물죄를 저질렀고, 또 한 사람은 법조문을 농간한 죄를 저질렀다. 주변 사람들은 벼슬아치이면서 훔친 물건을 다룬 죄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해서, 유공작이 장물죄를 범한 자를 더 엄하게 다뤄 처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유공작은 “법을 범하면 법은 그대로 있지만, 법을 어지럽히면 법이 없어진다”(범법법재 난법법망, 犯法法在 亂法法亡)라며 법조문을 농간한 자를 더 엄하게 처벌했다.

이른바 ‘법률 기술자’들은 자신들이 법률을 능숙하게 잘 다루는 것을 자랑하지만, 그 재주만 믿고 법률을 농간하다가는 어떤 죄악보다도 크고 심각한 죄악으로 다스려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함을 이 일화는 일깨워주고 있다.

중국 고대 전국시대에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는 법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법은 신분이 높은 귀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에게 아부하지 않고, 먹줄은 굽은 나무의 형편을 봐주기 위해 휘어지지 않는다.”(법불아귀 승불요곡, 法不阿貴 繩不撓曲)

나무를 깎을 때 먹줄이 나무가 휘어진 부분, 옹이 등을 사정 봐주지 않고 모두 일관되게 곧게 잘라내듯이, 법 앞에서 귀족이든 평민이든 누구나 평등하게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비자의 법치주의가 근대 서양의 법치주의와는 결이 다르긴 하지만, 전국시대의 법가는 법 앞에서 만민이 평등해야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진다는 사상을 정립했다.

법, 천하의 공평한 것 되어야


한자 ‘법’(法)의 옛 글자는 ‘법’(灋)이다. 이 글자는 고대 중국 서주 시대의 청동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자 해설서인 한나라 허신의 <설문해자>에 따르면 이 글자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 수’(氵), ‘해치 치’(廌), ‘갈 거’(去) 등이 그것이다.

‘법’이란 글자에 ‘물 수’ 변이 들어간 이유에 대해 <설문해자>는 “(물이) 천하의 공평함을 상징”한다고 했다. 법이란 한자에 ‘물’이 감긴 것 역시 천하에서 가장 공평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한다.

또 해치는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는 신명한 짐승이다. 뿔이 하나 달린 괴수이며, 사람의 머리만 보고도 그 사람이 곧은 사람인지 곧지 않은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만약 그 사람이 올곧지 않으면 자신의 뿔로 그 사람을 들이받는다고 한다.

그 밑으로 ‘갈 거’ 자가 들어 있다. 이 뜻은 해치가 올곧지 않은 사람을 뿔로 들이받듯이, 법이란 공동체의 규칙을 무시하고 어지럽히는 사람을 향해서 뿔을 들이대고 달려가서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잘못이 있는 사람에게 법이 칼끝을 겨누지 않는다면 법은 제대로 가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한다. 법이란 물과 같이 공동체의 어느 구성원이 권력을 가졌든 못 가졌든, 신분이 귀하든 천하든, 재산이 많건 적건 상관없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비자의 말처럼 이것이 법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오늘날 법을 뜻하는 ‘법’(法) 자는 옛 글자 ‘법’(灋)의 원형에서 해치를 나타내는 부분인 ‘해치 치’가 생략되고 삼수변(氵)에 갈 거(去) 자만 남아서 법(法) 자로 쓰인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해치’란 말이 생략됐는지는 문자 전문가들도 이런저런 추측만 할 뿐 정확한 과정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비록 해치를 나타내는 부분이 생략되었지만, 법이라는 개념이 처음 만들어질 때 인류가 생각했던 법의 속성은 그대로다.

‘공정함’(물)과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범죄자와 범법자에 대한 징치’(해치), 이 두 가지가 오늘날에도 법의 가장 원초적인 속성이라고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지금 시대야말로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자를 잡아내고 징치하는 해치로서의 기능은 법의 주요 속성으로서 더욱 강조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가을서리와 봄바람 사이


현재 우리나라는 ‘법률 기술자 전성시대’라고 할 만하다. 이들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 있다. 대통령, 법무부 장관, 금융감독원장 등 정치에서 경제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요직 상당수를 검찰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검찰 공화국’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우리 정치권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수사에 대한 논란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 추진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는 배경에는 검찰에 대한 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

특히 김건희 여사에 관한 문제를 지금의 검찰에 맡겨두어서는 불편부당한 수사가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특검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검찰 조직이 법의 속성 가운데 올곧게 징치를 하는 해치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제까지 국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던 검찰의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옛사람들은 ‘지기추상하고 대인춘풍하라’(持己秋霜 對人春風)고 얘기했다. 법을 다루는 이들이 자신에 대해서는 가을서리(추상, 秋霜)처럼 대하고, 남에 대해서는 봄바람(춘풍, 春風)처럼 대하라는 말을 새겨야 한다. 아울러 앞서 인용했던 당나라의 유공작처럼 법을 농간하는 집단이 있다면 우리는 가차없이 엄벌을 내려야 마땅하다. 유공작의 말처럼 “법을 어지럽히면 법이 없어지기”(난법법망) 때문이다.

철학연구자

연세대에서 주역 연구로 석사, 제자백가 논리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겨레> 기자를 거쳐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등을 지냈다. 제자백가 사상과 철학을 강의하고 글쓰기를 하고 있다. <아큐를 위한 변명> <한비자, 권력의 기술>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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