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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어터지는 옷장 보다 이 남자가 떠올랐다…"4조 지구 위해 바쳐요" [방영덕의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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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늦더위 탓에 여름 옷을 미처 다 들여놓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채 가을 옷들을 꺼내 놓으니 옷장이 미어터지려 합니다. 가뜩이나 좁은 방이 더 좁아 보입니다. 순간 머리에 스치는 생각 하나, '재활용 수거함에 넣을까(혹은 버릴까)?'

하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기부'라는 형식으로 내놓은 중고 의류가 지구상 어디에선가는 심각한 환경 파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 기부한 중고 의류가 '쓰레기 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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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옷더미가 쌓여 쓰레기 산을 이룬 가나 수도 아크라 모습 [사진 출처 = 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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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달 전 중고 의류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 해변가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모래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수한 옷 더미가 뒤덮힌 해안가는 가나 수도 아크라였습니다. 마치 쓰레기 매립장을 연상시키는 옷들 대부분은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기부한 중고 의류였는데요.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으로부터 헌 옷을 헐값에 대거 사들이거나 기부를 받습니다. 그래서 자국민들에게 다시 옷을 팔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나라에서조차 처리하지 못한 옷들은 사실상 쓰레기로 취급된다는 것입니다. 수로, 강, 해변 등에 마구잡이로 버려집니다.이런 옷들이 모여 '쓰레기 산'을 이루는데요. 악취가 진동하고, 유독 화학 성분 때문에 주변 환경은 모조리 파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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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옷 더미로 뒤덮힌 가나 수도 아크라의 한 해변가 모습 [사진 출처 = The new york daily 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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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제품 단가를 낮추기 위해 사용하는 플라스틱 소재의 합성섬유 의류는 분해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습니다. 때문에 토양을 오염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재고로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것은 패스트 패션 뿐만 아닙니다. 명품 브랜드도 예외가 아닙니다. 싸게 파느니 차라리 불태워 없애버리는 게 명품업계 관행인데요. 이같은 소각이 얼마나 환경에 안 좋을지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구 한쪽에서는 '가성비 갑'으로 추앙 받는 '패스트(FAST) 패션'입니다. 갖고 싶어도 없어서 못 산다는 명품입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어느 한 곳에선 환경 재앙을 야기하는 '빌런'이 되고 있습니다.

◆ 패션산업의 환경 영향, 이 정도 일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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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거된 중고의류를 분류하는 모습 [사진 출처 = bbc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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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폐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패션 산업은 원료부터 시작해 디자인-제조-소비-폐기로 이어지는 고리가 모두 다 환경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량의 에너지, 용수, 화학약품, 살충제 등이 이용됩니다. 이에 따른 온실가스 및 수질오염, 폐기물, 해양 미세플라스틱 등이 발생해 환경 문제를 유발합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친환경 리사이클 섬유패션산업 육성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섬유패션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6~10%, 해양 미세플라스틱 배출량의 20~35%, 그리고 살충제 사용량의 10~25%를 차지합니다.

지구 온난화를 야기하는 탄소 배출량은 연간 약 120억t에 이릅니다.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8~10%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이같은 규모는 항공업과 해운업에서 배출하는 탄소의 양보다 많은 수준이라고 하니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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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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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사용량으로 따져 보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산업이 바로 패션산업입니다. 전체 물 소비의 2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 벌의 면 셔츠를 생산하는데에만 약 2700ℓ의 물이 필요한데요. 이 양은 한 사람이 2.5년 동안 마시는 물의 양과 같습니다. 면 셔츠, 딱 한 벌을 만드는데 말입니다.

패션산업은 지구 환경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지만, 실상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큽니다. 당장 유행에 맞춰 사 입고, 아무 생각없이 버리고 또 다시 사 입는 소비 패턴을 반복하면서 말이죠. 그러는 사이 지구는 병들고 있습니다. 병든 지구가 세계 곳곳에서 보여주는 기후 변화는 그야말로 재앙입니다.

◆ "지구가 목적, 사업은 수단"...4조원대 지분 지구에 진짜 '기부'

기후 변화를 걱정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친환경을 필두로 한 ESG 경영이 화두죠. 특히 패션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패션이 생각보다 환경 파괴에 미치는 영향이 커 사회적으로 거센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부자들은 참 많습니다. 그런데 4조원이 넘는 회사 소유권을 턱하니 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라며 "내 삶을 올바르게 정리할 수 있게 돼 안도감이 든다"고 밝혔는데요.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창업주 이본 쉬나드(83) 회장의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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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창업주 이본 쉬나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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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나드 회장은 파타고니아 웹사이트에 게시된 편지를 통해 그와 그의 배우자, 두 자녀가 가지고 있던 지분 100%를 환경단체와 비영리재단에 양도하는 것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분 이전은 이미 지난 8월에 완료됐습니다.

전체 주식의 2%인 의결권 있는 주식은 환경 보호 등 회사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 법인 '파타고니아 퍼포스 트러스트'에 이전됩니다. 의결권 없는 나머지 98%의 주식은 환경 위기와 싸우고 있는 비영리재단 '홀드패스트 콜렉티브'에 넘겨집니다. 사실상 우리 지구에게 기부를 한 것입니다.

친환경 패션을 얘기함에 있어 파타고니아를 빼놓고 하기 어렵습니다. 1973년에 설립된 파타고니아의 기업 목표는 지구에 불필요한 해를 끼치지 않고 사업을 통해 자연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지구가 목적이고 사업은 수단인 셈입니다.

'그린워싱(green과 white washing의 합성어,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를 뜻함)'을 하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파타고니아는 세간의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저 친환경 마케팅의 일환일 뿐이라고 폄하됩니다.

그러나 이번 회사 소유권 기부 결정은 이같은 세간의 시선을 던져버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생길 미래 수익까지 다 기후변화와 환경 보호활동에 기부한다고 할 정도니까요. 미국에서는 ESG 경영을 뛰어넘는 새로운 표준을 수립했다는 평가가 쏟아집니다.

Don't buy this jacket. 파타고니아의 유명한 카피문구입니다. 웬만하면 옷을 사지 말고, 수선해서 입거나 중고장터부터 확인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해선 옷을 사지 않는 것이 디자인 제조 소비 폐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다는 쉬나드 회장의 철학에서 나온 말이죠.

옷이 넘쳐나는데도 입을 옷이 없다며 살 궁리부터 하는 모습을 반성해봅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지구를 위해서요.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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