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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월드리포트] 윤석열과 바이든, '대통령의 언어'…사과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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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 팔려서 어떡하나"


윤석열 대통령의 이 발언을 놓고 온통 세상이 시끄럽다. 저속한 표현 논란에 국익 논란까지 겹쳐지면서 입 있는 사람들은 다들 한마디씩, 갑론을박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실의 해명은 우선 '바이든'에 맞춰졌다.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말했다는 거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불이익이 발등에 불이 된 상황에 '미국 달래기'에 집중해야 하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 대통령과 미국 의회를 겨냥한 저속한 표현이 불러올 후과가 두려웠을 만하다. '바이든'을 '날리면'으로 바꾸면 자연스레 앞의 '국회'는 미국 의회가 아니라 한국 '국회'라는 의미가 문맥상 자연스러워지는 효과도 있다. 윤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회의에서 내놓은 1억 달러 공여 약속이 대한민국 국회의 예산 불승인으로 지켜지지 못할 경우 윤 대통령 자신이 '쪽 팔려'지는 상황이 된다는 거다. 해서,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쪽 팔리다'는 표현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해명에 집중한 셈이다.

처음엔 대통령실의 해명이 당혹스러웠다. 조삼모사하는 것 아니냐는 불편함이 먼저였다. 실제 녹화된 영상을 열 번 정도 들어봤다. 다섯 번은 해당 발언에 대한 자막이 나와 있는 영상을 눈 뜨고 봤고, 다른 다섯 번은 눈을 감고 '날리면'이라는 단어가 들리는지에 집중했다. 다섯 번은 '바이든'으로 들렸고, 나머지 다섯 번은 '날리면'으로 들렸다. 최대한의 '국뽕'을 발휘하면 이건 그대로 대통령실의 해명을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XX'는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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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의 해명을 받아준다 해도 불편함은 남는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윤 대통령이 언급한 '이 XX'가 미국 의회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를 겨냥했다고 해명했다. 순간, 오래전 기억이 겹쳐졌다. 검찰청에 출입하던 시절, 한 검찰 간부와의 저녁 자리였다. 해당 간부와 한 전직 검찰 간부를 도마에 올려놓고 비판적인 뒷담화에 열을 올리다가 내 입에서 '그 XX'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마주 앉아 함께 비난을 했던 상대방이 돌연 내게 정색을 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네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냐?"

평소 거친 입담에 익숙했던 내게 이 한마디는 이후 지금까지 스스로에 대한 '鍮尺'이 되고 있다. 여전히 어길 때가 많지만. '안 보이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 우리의 정서에 비춰보면 윤 대통령의 '이 XX' 정도는 사실 그럴 수도 있는 정도로 넘길 수 있다. 윤 대통령도 수많은 술자리에서 'XX' 소리를 듣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건 '안 보이는 데'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어디서든 초미의 관심을 받는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한 혼잣말이었다는 해명만으로는 부족한 이유다. 국회를 '이 XX'로 표현한 부분은 사과가 필요해 보인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점잖아 보이는 외모와 달리 욱하는 성질도 있고, 평소 욕도 많이 하는 걸로 알려졌다. 그런 성정 탓에 '말실수'도 많았다. 마이크가 켜진 걸 모르고 폭스 뉴스 기자에게 '멍청한 XXX'라고 원색적인 욕을 한 적도 있고, 미러 정상회담을 끝낸 뒤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CNN 기자가 푸틴을 믿느냐고 꼬치꼬치 따져 묻자 "그걸 이해 못 하는 걸 보니 당신은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고 발끈하며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도 고스란히 영상으로 잡혔다. '말실수' 수위를 놓고 보면 바이든이 한 수 위다.

'사과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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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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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그 다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위에 언급한 두 번의 '말실수' 이후 곧바로 사과했다. 폭스 뉴스 기자에겐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했고, CNN 기자에게는 문제의 발언을 한 뒤 전용기에 올랐다가 곧 다시 내려와 "내가 당신에게 잘난 척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사과하는 장면이 영상에 잡혔다. 평소 바이든에 대한 평가는 인색한 편이지만, 이 두 장면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재빠른 사과 이후 논란은 더 커지지 않고 거기서 끝났다. 법조 기자 시절, 가까이서 지켜봤던 윤 대통령은 언행이 소탈하고, 거침없는, 그런 점이 매력적인 검사였다. '검사'에서 '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뀐 이후 예전의 나처럼 그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대통령의 언어가 가진 무게감 때문일 거다. 대통령의 언어, 특히 그게 실수였다면 그건 대통령의 입으로만 돌이킬 수 있다. 홍보수석이 대신 나설 일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사과할 용기'를 내야 한다.
김윤수 기자(yunso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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