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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 나락으로…윤 대통령 ‘48초 참사’ 총정리 [논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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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과는 ‘스탠딩 환담’만

미 보도자료엔 전기차 언급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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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썰] 윤 대통령 ‘48초 참사’, 미국에 농락당하는 ‘무능 외교’. 한겨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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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논썰의 박현입니다.

영국과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참사’ 수준의 외교 행보를 보였습니다. 영국 여왕 조문 불발에 이어 미국에선 바이든 대통령과 ‘48초 환담’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뉴욕의 유엔 주재 일본대표부가 입주해 있는 건물을 찾아가서 만나야 했습니다. 이번 논썰에서는 총체적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현 정부 외교와 미국의 한국산 전기차 차별대우 문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정상간 회담은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이뤄지는 게 관례입니다. 이를 위해 참모진들이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합니다. 상대국과 의제는 물론 만남 장소와 시간, 동선, 언론 노출 방식까지 치밀하게 조율합니다. 그런데 이번 한-미 정상간 환담, 한-일 정상의 약식회담은 이런 관례에 비춰보면 거의 모든 측면에서 ‘참사’ 수준입니다. 저도 특파원을 하면서 여러 차례 워싱턴과 뉴욕에서 정상회담, 약식회담 등을 취재했습니다만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아마추어 외교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먼저 매년 9월 열리는 유엔총회 기간의 정상간 외교는 특수하다는 점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00여개 나라 이상의 정상 또는 정상급 인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기 때문에 통상적인 정상회담이나 회동이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유엔본부의 총회장도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복도에서 서서 회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한-일, 한-미 정상간 만남의 형식은 상식에서 한참 벗어납니다.

일본 총리 800미터 떨어진 한국대표부에선 왜 못 만났을까?

한-일 정상회담의 경우 저는 만남 장소부터가 굴욕적이었다고 봅니다. 대통령실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참석한 행사장을 윤 대통령이 찾아간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행사장이 유엔 주재 일본대표부가 입주한 건물입니다. 통상적으로 이런 경우엔 정상회담은 제3의 장소에서 열리는 게 관례입니다.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는 그곳에서 불과 5블록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거리로는 약 800미터, 걸어서 10분 거리입니다. 한국대표부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 왜 일본대표부 건물에서 만나야 했을까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특히나 한-일이라는 민감한 외교관계를 갖고 있는 경우에 만남 장소는 더 신중했어야 합니다. 만약 제가 고르라면 두 대표부 중간에 있는 호텔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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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외교 프로토콜을 깨고 굳이 일본대표부 입주 건물에서 회동은 한 데는 대통령실이 두 정상간 만남을 사전에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빚어졌다고 봅니다. 정상회담은 두 나라가 동시에 발표하는 게 관례입니다. 그런데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5일 공식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하고 일정을 조율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일본 정부에서는 이를 부인하는 보도들이 나왔고, 급기야 기시다 총리마저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21일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기시다 총리가 ‘그렇다면 만나지 말자’라고 한국 쪽의 일방적인 발표에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대통령실은 한-일 정상간 회담 성사를 위해 만남 장소를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양보를 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나마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등에서 회담 성과라도 있으면 이해해줄 수도 있으나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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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도 도긴개긴입니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만남은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 뒤 48초에 불과했습니다. 회담은커녕 회동이라는 표현을 쓰기 민망할 정도입니다. 대통령실도 이를 환담이라고 정정했습니다. 게다가 이 회의 행사장을 떠나면서 윤 대통령은 욕설까지 써가며 발언을 하는 사고까지 쳤습니다. 대통령실은 “사적 발언을 외교적 성과로 연결시키는 것은 대단히 적절치 않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뉴욕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런 일로 ‘외교 참사’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유감스럽다. (윤 대통령이) 무대 위에서 공적으로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지나가면서 한 말을 누가 어떻게 녹음했는지 모르겠지만, 진위 여부도 판명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친 사고를 어떻게든 무마해보려는 안간힘으로 보입니다만 이런 소식을 언급해야 하는 제가 오히려 민망할 정도입니다. ‘국격 추락’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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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백악관은 이런 보도자료까지 냈습니다. “두 지도자는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자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또한 공급망 탄력성, 핵심 기술, 경제·에너지 안보, 세계 보건, 기후변화 등 광범위한 우선적 과제들에 관해 진행 중인 협력에 대해 논의했다.” 48초 동안 이렇게 많은 주제들을 논의할 수 있었을까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그나마도 국내에서 최대 이슈인 한국산 전기차 차별대우 문제는 한마디 언급조차 없습니다.

물론 한-미 두 정상은 런던에서 개최된 찰스 3세 영국 국왕 주최 리셉션과 뉴욕에서 개최된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 바이든 대통령 내외 주최 리셉션에 참석했을 때 등 3차례 조우했습니다. 대통령실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뉴욕 일정 단축으로 인해 공식 회담은 불가능해졌고, 그래서 짧은 환담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양국 국가안보회의(NSC)는 그간 여러 주제를 협의해왔는데, 두 정상이 환담을 통해 이를 확인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기차, 외환시장 유동성 공급장치, 확장억제 등 세가지 주제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전기차 문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이 인플레 감축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협력해줄 것을 요청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계속해서 진지한 협의를 이어가자고 밝혔다고 합니다. 또한 유동성 공급장치와 관련해서도 협의를 해나가고 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일단 런던에서 운을 띄우고 이번 글로벌 펀드 재정공약회의에서 확인받고 저녁 리셉션에서도 재확인을 받는 절차가 이뤄지게 됐다.”

양국 국가안보회의(NSC) 차원에서 구체적인 협의를 했고 그 내용을 양국 정상이 추인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전기차 문제에 대한 한국의 우려를 이해한 것에 만족할 국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렇게 민감한 문제들은 실무선에서 푸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정상의 정치적 자원을 동원해서 풀어야 합니다. 전기차 문제는 미국 의회가 법 조항을 개정해야 근본적으로 풀릴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적극 나서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윤 대통령이 형식을 갖춘 정상회담에서 이 조항이 국제 통상규범이나 한미 FTA에 어긋나는 점, 한국 기업에 대한 차별 대우, 국내 여론 등을 다양하게 전하면서 설득을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잇따른 외교참사, 대통령실 ‘혼돈’과 무관치 않아

저는 이번 외교 참사는 외교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 부족과 부적절한 언행, 여기에다 국가안보실의 아마추어리즘과 부실이 합쳐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두달간 사실상 혼돈에 빠진 대통령실도 한몫하고 있다고 봅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취임 100일을 계기로 대통령실 실무를 담당하는 행정관들까지 권고사직 형태로 물갈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규모가 50명 안팎으로 대통령실 전체 인원 420명의 10%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국가안보실도 예외가 아니라고 합니다. 권력 핵심부가 헛발질을 해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수족들을 잘라내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국가 중대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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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감축법이 미국 의회를 통과하기 전에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저는 대통령실의 혼돈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7월27일 법안 최종안이 공개됐을 때 사안의 중대성을 신속히 파악했다면, 때마침 방한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펠로시 의장은 8월4일 방한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전화통화를 했으나 이 문제는 언급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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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주미대사관에서 이 문제를 제때 파악하지 못한 데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제가 주미대사관을 겪어본 바로는 이런 중대한 사안을 놓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주미대사관에는 우리나라 대사관 중에서 유일하게 의회과가 별도로 있습니다.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주요국에 있는 우리 대사관에는 정무과·경제과·영사과·무관 정도가 있습니다. 그만큼 미국 의회의 입법 사항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미대사관 의회과는 중요 법안이 발의될 때부터 통과될 때까지 모니터링을 합니다. 의회과뿐만 아니라 경제과에서도 체크를 했을 것입니다. 대사관이 미처 파악 못했더라도 최소한 워싱턴에 있는 현대차 현지사무소에서는 파악을 해서 대사관에 알려줬을 겁니다. 현대차 현지사무소는 현지 로펌을 고용해 대의회 정보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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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적기 대응’ 실패 책임, 누구에게 있나

실제로 당시 주미대사관 쪽은 이 법안의 최종안이 공개되자마자 파악했고, 의회를 통과하기 전부터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주미대사관의 활동내역은 날마다 서울의 외교부 본부로 보고가 되기 때문에 외교부도 이를 파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안이 펠로시 방한 전에 대통령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은 것은 외교부 또는 국가안보실의 직무태만 때문이지 않을까 추정됩니다. 외교부가 국가안보실에 제때 보고를 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국가안보실이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지 못해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선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를 명백히 가려야 한다고 봅니다. 주미대사관의 잘못이라면 주미대사가, 그렇지 않다면 외교부나 국가안보실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컨트롤타워가 이렇게 작동을 하지 않는 사이 피해는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현대·기아차는 바이든 대통령의 투자 요청에 무려 100억달러 이상을 약속하면서도 홀대를 당하는 처지입니다. 현대차는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신설해 2025년부터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전기차 1대당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판매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투자계획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공장을 지어봤자 판매가 예상보다 적으면 손실이 발생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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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뒷북 대응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억울하다고 합니다.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300페이지가 넘는 법안(‘인플레 감축법’)을 분석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유럽연합(EU)·일본도 비슷한 처지라는 점을 거론하며 할 만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특정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조항은 이미 지난해부터 논란이 됐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사태 파악에 하루도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미국 내 전기차 판매 2위로 순위가 뒤처진 유럽연합·일본에 견줘 피해가 훨씬 큽니다. 피해가 큰 당사국이 가장 열심히 뛰어야 하는 게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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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행정부는 공화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상관없이 과거와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통상 문제에서 국제규범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친 언사를 동원해가며 동맹국들을 불편하게 했습니다만, 바이든 대통령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오히려 트럼프 때보다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동맹국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반강제적인 수단까지 동원할 태세입니다.

미국 ‘스타 장관’, 한국 투자 검토하던 대만 반도체 기업 가로채

특히,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백악관은 삼성전자를 포함한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에 민감한 고객정보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당시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강제로 수집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러몬도 장관은 올해 들어서도 대중국 견제와 미국 제조업 부활이라는 ‘바이든 책략’의 사실상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수출통제 리스트에 중국 기업 100개 이상을 추가하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창설에 앞장섰습니다. 대중국 견제 조항이 담긴 반도체지원법의 의회 통과를 위해 정적인 트럼프 행정부 때 고위 관리들까지 만나 설득했다고 합니다. 한술 더 떠 한국 투자를 검토하던 대만 반도체 기업 글로벌웨이퍼스를 중간에 가로채기도 했습니다. 그는 올해 6월 이 회사 대표와 1시간 동안 전화통화를 통해 투자처를 미국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습니다. 로드아일랜드 주지사 출신으로 대권 야망도 갖고 있다는 그는 자유무역을 주창해온 기존 상무장관들과는 결이 많이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찌됐든 바이든 대통령에겐 ‘스타 장관’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바이든은 지난 5월 방한 때도 러몬도 장관과 동행해 삼성 반도체공장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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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우리나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나 통상교섭본부장은 존재감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스타 장관들이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바이든의 ‘스타 장관’에게 판판이 깨지는 형국입니다. 최근 미국의 한국산 전기차 차별 대우 문제가 불거진 뒤에야 ‘뒷북 대응’하느라 분주합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특파원 간담회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관계가 어려워지고 (한국) 여론이 나빠지면 그 외의 다른 큰 틀에서의 접근에 모멘텀(추진력)이 낮아질 수 있다, 소탐대실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하겠다”


지금 전기차만 문제되는 게 아닙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 중국에 첨단 공장의 신·증설을 10년간 제한받는 법이 통과해 이미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배터리는 내년부터 일정한 광물·부품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바이오도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내 연구와 제조를 강화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동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주력 첨단산업인 이른바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가 모두 큰 리스크에 노출된 것입니다. 미국의 이런 일련의 정책들은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초기부터 구상이 돼 있었습니다. 1년여의 치밀한 준비 끝에 착착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입니다. 바이든에게는 계획이 다 있었던 겁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취임하자마자 반도체·배터리·핵심광물·바이오 등 4개 산업에 대한 글로벌 공급망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상무부·에너지부·국방부 등 주무 부처가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 그해 6월 공급망 보고서를 내놓습니다. 지금 나오는 정책들은 다 여기에 밑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 보고서는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기 위해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 미국 내 제조기반 확충, 동맹국과 협력 강화, 중국 제재 강화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습니다. 이를 통해 미국 내 첨단산업 제조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국 내 안정적인 생산능력을 확보하며,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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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국제질서의 대전환기를 헤쳐나갈 전략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현 정부는 미국과의 ‘경제안보동맹’을 통상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안보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패권국이 짠 프레임입니다. 미국은 동맹·우방국들을 경제안보라는 기치 하에 자신이 주도하는 경제블록 안에 묶어 패권 도전국인 중국을 약화시키는 한편으로 자국 제조업의 부활을 꾀하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개방형 통상국가엔 이런 보호무역주의가 매우 불리합니다.

미-중 패권 경쟁은 둘 사이에 낀 나라들이 받을 타격이 훨씬 큽니다. 전쟁 같은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배제하고 경제적 측면만 따져봐도 그렇습니다. 이런 예측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확인됩니다. 기존 연구들이 막연히 디커플링 시 손실이 클 것이라는 수준에 머무른 것과 달리, 이 보고서는 구체적인 손실 규모를 추정했습니다. IMF는 미-중 간 첨단기술 분야의 교역이 중단되는 ‘기술 디커플링(분리)’이 현실화할 경우 시나리오별로 주요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추정했습니다. 대상 국가는 미·중과 한국·일본·유로지역·인도 등 6곳입니다. 시나리오는 각 나라가 같은 경제블록 내에서만 교역을 하는 경우와 두 블록 모두 교역이 가능한 경우 두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우리는 미-중 디커플링 시에도 두 경제블록과 모두 교역이 허용될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소폭 증가했습니다. 우리가 중국을 대체하는 어부지리 효과를 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같은 블록 내에서만 교역이 허용될 경우엔 국내총생산 감소율이 6%에 달해 충격이 경쟁국 중에서 가장 컸습니다. 감소 규모가 일본의 2배나 됐습니다. 이는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데서 기인하는 현상입니다. 이런 예측은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에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강대국 대립 시대, DJ의 ‘논두렁론’이 던지는 시사점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일찌기 ‘논두렁론’으로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습니다.

“안보 면에서는 미국이 중요하고, 경제는 양쪽 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도랑에 든 송아지와 마찬가지입니다. 양쪽 언덕의 풀을 뜯어 먹거든요. 주변에 있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다 활용해야 해요.”
지금 같은 강대국간 대립 시기에는 논두렁론이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지만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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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후반 미-일간 산업패권전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미국은 당시 자국 산업을 추월하려던 일본을 주저앉히고자 플라자 합의와 미-일 반도체협정을 맺었습니다. 어찌보면 중국의 도전을 저지하려는 지금의 움직임과 흡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이 주춤하는 사이 새롭게 열린 중국 시장을 발판삼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미-중 대립 시기도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활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사다리 걷어차기’ 시도는 중국의 무서운 추격을 지연시켜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기회에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동남아·서남아시아 시장을 개척하는 등 세계시장의 입지를 넓혀나가야 합니다.

전기차 차별대우 문제는 현대·기아차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한-미 간 경제통상 관계의 신뢰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한국 기업들을 차별하면 한-미간 공조 체제는 금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미-중 대립은 장기전을 띨 공산이 크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서부터 룰을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위가 크게 위협받을 것입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미국 시장에서의 공정한 대우와 대중국 시장 접근권을 확보하는 게 관건입니다. 더이상 미국에 농락당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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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하기 위해서는 외교안보 라인의 전면 쇄신이 필요해 보입니다. 현재의 인적 구조로는 대전환기를 헤쳐나가기 힘들어 보입니다. 윤 대통령 또한 외교 문제에서 지나친 미국 편중 사고와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해결하려는 조급증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기획·출연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도움 채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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