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일하는 한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사진 제공 = 독자] |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싱가포르에서 월 80만~100만원 비용은 합리적인 수준이죠.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비자 제한도 사실상 없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인력사무소를 운영 중인 제임스 황 씨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안착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저렴한 인건비와 쉬운 비자발급 요건을 꼽았다. 싱가포르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싱가포르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1만832싱가포르달러(SGD)다. 원화 기준으로 매달 1030만원가량이다. 싱가포르에서는 부부의 맞벌이가 보편화돼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가사도우미 고용에 100만원 정도 쓰는 것은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이처럼 저렴한 임금 계약이 가능한 이유는 싱가포르 정부가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해 내국인과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홍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에는 필리핀·인도·미얀마·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국가 출신 가사도우미가 활동 중이며 이들의 최저임금은 각 출신 국가에서 정한다. 대략 400~600SGD(38만~57만원) 선에서 최저임금이 형성되며 경력이 풍부하면 월 800SGD(약 76만원)까지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경험이 없는 가사도우미의 경우 최저임금은 필리핀 여성이 570SGD(54만원), 미얀마 450SGD(42만8000원), 인도네시아 550SGD(52만3000원), 인도 400SGD(38만원) 수준이다. 반면 경험이 있는 가사도우미의 경우 필리핀 여성은 800SGD(76만원), 미얀마 750SGD(71만3000원), 인도네시아 700SGD(66만5000원), 인도 650SGD(61만8000원) 수준에서 임금이 결정된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면 매달 싱가포르 정부에 고용세 300SGD(28만원)를 내야 하지만 가정에 16세 미만 청소년이 있거나 67세 이상 노인이 있을 경우 고용세가 60SGD(5만7000원)로 감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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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싱가포르에서 발급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관련 비자에는 인원을 제한하는 쿼터도 없다. 제임스 황씨는 "1가구 1도우미 고용 등 국가 차원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고용을 권장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 한 가구에 두 명의 도우미를 둘 수도 있어 사실상 인원 제한이 없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인력부(한국의 고용노동부 격)에 따르면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비자발급 요건은 △8년의 정규 교육과정 이수 △건강한 신체 등 두 가지뿐이다.
이렇다 보니 싱가포르 내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한 인력사무소 대표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취업을 알선해주는 인력사무소가 싱가포르 전역에 4000곳 정도 있다"며 "우리는 매달 15명 정도의 도우미를 가정과 연결해주고 있는데 그중 80%가 필리핀 출신"이라고 말했다.
가사도우미 계약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기존에 싱가포르에 체류 중인 경력자가 계약이 만료된 때에 새로운 고용주를 찾는 유형과 새롭게 싱가포르에 입국한 도우미가 고용주를 찾는 유형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1977년에 합계출산율 2명대가 붕괴된 이후 1978년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전격 도입했다. 싱가포르의 출산율은 1978년 1.79명에서 1988년 1.96명으로 나타나며 저출생 문제가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세계적인 저출생 추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출산율은 2010년 1.15명에서 2021년 1.12명으로 하향세가 둔화됐다.
반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984년 1.74명으로 2명대가 붕괴된 이래 추세적인 하향세를 이어갔다. 2010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2명으로 싱가포르보다 높았으나 최근 10여 년 새 하락세를 면치 못해 지난해 0.81명까지 떨어졌다.
싱가포르에서 외국계 IT 회사를 다니며 7년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 박 모씨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저렴한 인건비로 쓸 수 있어 다행"이라며 "비용이 훨씬 비싼 데다 외국인 여성을 고용할 수 없는 한국이었다면 7년 동안 직장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선 주말마다 공원에서 무리를 지어 휴식을 즐기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기자가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도 옛 시청 용지 근처의 포트캐닝공원에서 주말을 맞아 외출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수십 명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워킹맘 김 모씨는 "가사도우미들은 대개 주말에 외출이 허용된다"며 "주중에는 이들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기 때문에 직장 생활에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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