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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수술의사 없어 뇌출혈로 숨진 아산병원 간호사…해결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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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건강했던 30대…7시간 만에야 서울대병원 전원 후 사망

보건노조·경실련 등 국회 토론회 주관…'의사 부족' 인식 공유

국립의대 정원 확충, 업무 재분장, 공공임상교수제 등 거론돼

초청된 의협·병협은 불참…"수가 개선만이 답은 아냐"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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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의 책임간호사였고, 결혼을 앞두고 있었어요. 평소 아주 건강했고 직무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고 해요. 뇌출혈의 사전증상도 전혀 없었어요. 의료기관은 365일, 24시간 돌아가며 (응급상황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최고 병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단 건 그 외 병원에서는 얼마나 부지기수로 있겠냐는 거죠."(대한간호협회 조문숙 부회장)

"코로나19 유행상황에서 의료진이 임계점에 다다라 교대인력이 없었던 때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그때는 감염병이란 재난으로 특정시점에 직면하는 상황이 아닐까 했다면, 이건 훨씬 보편적이고 내게 바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단 점에서 일반 국민이 느끼는 심각성이 아주 컸다고 보여져요."(조원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국내 의료기관 중 이른바 '빅(Big) 5'로 꼽히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가 출근 직후 뇌출혈로 쓰러졌다. 일반적이라면 원내 상황인 만큼 치료의 '골든 타임'을 놓치리라 생각되긴 어렵지만, 실제로 그 일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당시 병원에는 간호사 A(37)씨의 수술을 집도할 전문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색전술 등의 응급처치를 받은 A씨는 7시간 만에야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엿새 만에 끝내 숨졌다. 지난달 24일 발생한 사건의 전말이다. 충격의 여파가 가시기 전 현장에서는 '예고된 참사'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아산병원 정도 되는 대형병원에도 뇌혈관 수술을 집도할 신경외과의 등 '필수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란 것이다.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관련 긴급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주최 측인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을 비롯해 여야 의원들이 다수 참석했다.

"국내 의사 절대적으로 부족…국민 안전 위해 관련논의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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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19일 오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관련 긴급 국회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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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19일 오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관련 긴급 국회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토론회 주제('필수의료분야 의사부족,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에 맞게 참석자들은 대부분 필수의료라 할 수 있는 중증질환 담당의사들이 매우 적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지난달 말 보건복지부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2022 보건통계'를 인용한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국내 인구 1천 명당 임상의사는 한의사를 포함해도 '2.5명'으로 OECD 가입국 평균인 3.7명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멕시코(2.4명)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다.

정춘숙 의원은 이를 가리켜 "폴란드, 멕시코와 더불어 최하위 수준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3058명으로 동결돼 있다"며 "양적 변화 없이 질적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발제를 맡은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먼저 고(故) 김동희 군 사건을 들어 아산병원 간호사와 유사한 응급사망이 숱하게 반복돼왔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지난 2019년 10월 편도제거수술 시 5세에 불과했던 김군은 수술 후유증으로 의식을 잃고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이송 중 '수용 불가' 통보를 받았다. 동아대병원으로 옮겨지던 도중 뇌사 상태에 빠진 김군은 5개월 투병 끝에 숨졌다.

이보다 3년 앞선 2016년에도 김민건 군의 비극적인 죽음이 있었다. 두 살배기였던 민건 군은 전북 전주의 도로에서 견인차에 치인 뒤 전북대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수술이 가능한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병원을 찾아야 했다. 그는 꼬박 7시간을 대기 상태로 있다가 눈을 감았다.

임 교수는 "병원이나 의료인의 과실 유무에 대한 판단, 직업윤리 문제 등을 제외하면 응급의료체계 문제를 포함한 필수의료 인력 부족에 대해 공통된 문제인식을 갖고 있는 걸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경실련 남은경 사회정책국장도 "지난 10년간 의사 확충 요구가 꾸준히 있었음에도 의사들의 반대를 이유로 국회와 정부가 사실상 방치해 직무유기를 했다"며 "2000년 의약분업 시행과정에서는 의료계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객관적 검토 없이 의대 입학정원을 3500명에서 3058명으로 감축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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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필수의료분야 의사부족,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란 주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 좌장으로 참여한 신현호 변호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중앙위 부의장)가 발언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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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필수의료분야 의사부족,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란 주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 좌장으로 참여한 신현호 변호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중앙위 부의장)가 발언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지역별 편차도 크다. 인구 10만 명당 근무 의사 수는 서울이 305.6명으로 최다였고, 경북은 126.5명에 그쳤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드러났듯 의료인프라가 수도권에 철저히 편중돼 있는 것이다.

남 국장은 "제때에 효과적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사람 수(치료가능 사망률)는 지역 간 최대 3.6배 차이가 나는데,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회복될 수 있는 국민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지역의 '의사 구인난'이 꼭 수도권에 비해 열악한 처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란 점이다. 최근에는 수도권에 속하는 경기 성남시의료원조차도 2~3억대 연봉을 제시했지만 순환기내과 등의 지원자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수의료 인력이 워낙 적다 보니 소수의 업무부담이 가중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국내 1인당 외래 진료횟수는 14.7회로 OECD 평균(5.9회)의 2.5배에 달하고, 평균 재원일수도 19.1일로 OECD 평균치(8.3일)의 2배가 넘는다.

보건의료노조 정재수 정책실장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의사 증원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지만, 전체 의사 수가 부족한 게 아니라는 의협의 주장은 틀렸다. 우리나라 의사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중환자 전담의 32%는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를 하며 과로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평균 재원일수만 봐도 열악한 근무환경이 부실의료, 환자의 피해로 연결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의사 정원 확대'에 반대한다는 건 대단히 이율배반적"이라며 "의사인력 부족 문제가 국민 생명·안전에 직결된다고 보고 즉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승전-수가는 위험"…의대정원 확대·공공임상교수제 등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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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번 사건은 한 가지 방책으로 풀기 힘든 '난제'다. 각 집단이 판단하는 주요 원인에 따라 해법의 방향도 나뉠 수밖에 없다.

단적으로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의 배경에는 필수의료 과목의 전문의 부족 문제가 있고, 그보다 더 기저엔 기피 과(科)의 '비현실적 수가'가 자리한다고 보는 의협은 의사 증원이 정답이라는 주장에 반대한다.

이같은 시각 차를 반영하듯, 의협과 대한병원협회는 토론회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앞서 의협은 지난 8일 입장문을 통해 "필수의료이면서 의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흉부외과, 뇌혈관외과, 산부인과 중 분만 분야 등에서 현실적인 진료여건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신경외과 전문의는 OECD 평균인 1.3명에 비해 높은 4.7명이지만 개두술 등 뇌혈관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의사는 소수"라며 "의사들이 기피하는 분야에 대한 지원책을 강구하는 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토론회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수가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수가 인상'이 만능 열쇠가 될 수는 없다고 우려했다.

임준 교수는 "'기승전-수가'는 문제가 있다. 신경외과의 수가를 올려주면 다른 과는 가만히 있겠나. 특정 부분의 수가만 올리기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정말 필수의료에 집중할 수 있게 전체적인 병원 단위 수가나 지불제도를 개편해야지,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올려주는 방식은 문제를 왜곡시킨다"고 짚었다.

조원준 위원은 "'수가 개선'이라는 제안을 수용해야 한다고 보지만, 다른 반문에 대한 답을 의료계가 내놔야 한다. 교대인력 자체가 부족한데 수가만 올려주면 (해당 과가) 24시간 근무를 할 수 있나"라며 "필수 과가 아닌 곳은 의사가 충분한가. 그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현장조사 후 (이번 사건에서) 행정적으로 위법한 부분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병원 측이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지 않았고 발전기금 등을 적립하는 상황에서도 건물과 베드(병상)만 늘린 것은 사실"이라며 "이런 병원에 가산수가를 주는 게 적정한지 등 국민들이 관련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기적으로 당장 정부가 시행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국립의대 정원 확대, 의사와 PA(진료지원인력·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사이 업무 재분장 등이 거론됐다.

남 국장은 "국립의대 중에는 50명 미만 규모의 정원도 있는데, 이런 곳은 최소한 100명 정도 수준으로 채워야 한다. 적정 규모의 인력을 확보해야 적정 교육도 가능하다"며 "정부가 빨리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조승연 회장은 "당장 1~2년 내 효과를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직무범위 재조정이다. 전 세계에서 이미 다 쓰고 있는 방법"이라며 "미국에서도 업무분장이 상당히 많이 이뤄져서, 물리치료사 등이 개원하고 간호사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게 꽤 많다. 의사 수를 늘리지 않을 거라면 업무 재분장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현행 의료법 상 간호사는 단독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현장에 원체 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수술실에서 개복부터 봉합까지 의사들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하는 PA 간호사의 '불법의료'는 의료계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다.

임 교수는 소규모 병원급 의료기관이 일정 정리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종합병원으로서 기능할 수 없는 1차 의료기관이 너무 많다 보니, 자연히 상급종합병원 등의 응급대응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대형 병원의 진료가 외래에 치중돼있는 점도 지적했다.

국립대병원에 공공임상 교수직을 신설하는 공공임상교수제도도 중장기 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다. 필수 중증의료 분야 인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지역 거점 공공병원의 질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권역 책임의료기관을 중심으로 공동수련제도 운영을 고려해 보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복지부 차전경 의료인력정책과장은 "정부도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대책을 만드는 TF를 구성했고, 간담회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며 "'10년 후'를 바라보는 정책도 있어야 하지만, 당장 급한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하는데 최대한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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