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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골프장 알은 품지도 까지도 줍지도 말라 [라이프&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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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라이프&골프] 300야드 신인 장타 윤이나의 오구플레이로 골프계가 뒤집혀 있다.

지난 6월 DB한국여자오픈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공으로 진행한 사실을 한 달 넘게 숨겼다가 알려 문제가 된 것. 주최 측인 대한골프협회에 이어 여자프로골프협회 차원의 징계도 이어질 예정이다.

골프에서 가장 악성 매너는 속임수다. 골프 규정집 맨 처음에 매너와 룰 준수가 나온다.

너무 당연한 사실을 규정에 수록한 이유는 골프에 심판이 없기 때문이다. 본인의 양심에 맡기는 대신 룰을 위반하면 벌타, 실격, 자격정지에 이어 영구퇴출까지 당한다.

룰 위반 가운데도 속임수인 속칭 알까기가 가장 불량하다. 자신의 볼을 찾지 못하면 몰래 다른 볼을 내려놓고 치는 행위다. 심각한 부정행위로 골프 룰 따위는 아랑곳 않겠다는 골프 파괴행위다.

아무리 관대해도 알까기마저 용납하는 건 골프를 농락하는 처사다. 골프장을 다수 소유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골프계에 일정 부분 헌신한 점을 평가받는다. 이 평점을 다 까먹는 것도 툭하면 일삼는 알까기 때문이다.

그린 근처에서 알까기를 저질렀다가 원래 공이 홀인원 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경악한 골퍼도 있다. 미국 골프닷컴이 매겼던 골프 부정행위 등급에서 알까기가 최상위였다.

윤이나는 알까기가 아니라 러프에서 다른 사람 공을 자신의 공으로 착각한 데서 비롯됐다. 그린에 올라와 보니 자신의 공이 아니었던 것.

당연히 다음 홀로 옮겨 스트로크 하기 전에 신고하면 2벌타만 먹는데 오래 숨겼다가 문제를 키웠다. 알까기와 다르지만 속였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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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골프 스트레스를 없애자는 취지로 대안골프협회(Alternative Golf Association)가 생겼다. 선마이크로시스템 창업자 스콧 맥닐리가 회장으로 기존 상식을 뒤엎는 골프를 주도했다.

편하게 골프 룰을 바꾸어 동반자들이 재미나게 즐기자는 목적이다. 협회 명칭 플로그톤(flogton)은 'not golf(골프가 아니다)'의 스펠링을 거꾸로 붙여서 만든 신조어다.

규칙은 ①마음에 들지 않으면 홀마다 멀리건 하나 ②라이가 좋지 않으면 핀 후방 1.8m 이내에 공 옮기기 ③같은 조건으로 벙커에 빠진 공도 벙커 밖으로 옮김 ④3퍼트 이상 무조건 컨시드 ⑤OB나 로스트 볼은 무조건 1벌타 ⑥페어웨이에서 티에 공 올려놓고 치기 등이다.

이 대안골프에서도 알까기를 불허한 것은 골프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행위여서다. 룰만 변형하지 속임수까지 허용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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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 개선도 악성이다. 공이 숲 쪽으로 날아가 OB구역 경계 바로 밖에 걸쳐 있으면 옮기려는 충동이 불쑥 치솟는다. 무시하고 그대로 치든지 살짝 옮긴다.

유사 알까기다. 공을 확인한다며 라이를 개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마추어로서 유사 알까기를 범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골프 명언은 인간의 취약한 본성을 그대로 간파한다.

"골프란 최악의 적인 자신과 플레이하는 것이다."(핀리 피터던) "18년간 탁자에서 상대한 것보다 18홀 매치플레이를 한번 해보면 상대를 더 잘 알 수 있다."(그랜트랜드 라이스)

타수 속이기도 악성 부정행위다. 미스 샷에 따른 타수를 줄이는 행위다. 소위 '철버덕' 케이스다. 경사면에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몇 차례 실패 끝에 힘겹게 공을 올려놓곤 모른 채 한다. 직각 벙커 같은 깊은 벙커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위장하려고 손을 이용해 모래와 공을 동시에 퍼올리는 기괴한 장면도 있다. 이때 사용하는 손을 은어로 핸드 웨지(hand wedge)라고 한다.

착각한 캐디의 스코어 오기에 눈감는 것도 간접 속임수다. 실제 타수보다 줄여주면 가만히 있지만 한 타라도 높여서 적으면 득달같이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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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면에서 TV를 보던 노르웨이의 어머니가 PGA 경기 후 아들 호블란에게 마커 실수를 전화로 알려줘 신고케 한 사례는 양심의 승리다. 1925넌 US오픈에서 선두였던 보비 존스가 러프에서 미세하게 공을 움직인 사실을 스스로 신고해 상대에게 우승을 넘겨준 것도 감동이다.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이다. 당신은 내가 은행 강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나를 칭찬할 것인가." 그를 띄운 매스컴에 대한 반응이다.

알까기 심정은 가는데 물증이 없어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경우를 보았다. 골프장에 픽업해온 동반자의 알까기를 의심한 한 골퍼가 내내 말 한마디 않다가 결국 혼자 차를 몰고 집에 가버렸다.

알까기 하는 골퍼를 영어로 레그혼 보이(leghorn boy)라고 한다. 로스트 볼(lost ball)을 살아 있는 볼(ball in play)로 둔갑시키는 행위다.

레그혼은 거의 매일 흰색 알을 낳는 닭 품종으로 연평균 280여 개를 낳는다. 골프공 색깔이 이 알과 닮은 데서 알까기 용어가 나왔다.

알까기는 성적을 떠나 평판에도 치명적이다. 양심 불량에 따른 문제적 인간으로 낙인찍힌다.

속임수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다. 그 아픔을 잘 견뎌내야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알은 품지도, 까지도, 줍지도, 바꾸지도 말자.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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