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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노후 전투기 추락 잇따라… “언제까지 목숨 걸고 날아야 하나”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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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의 전력 유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노후한 F-4, F-5 전투기가 잇따라 추락하면서다.

지난 12일 F-4E 전투기 1대가 경기 화성시 전곡항 남쪽 9㎞ 지점에서 임무 도중 추락했다. 지난 1월 F-5 전투기가 추락, 조종사가 순직한 지 7개월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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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F-4E 전투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에서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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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 F-5는 도입된 지 수십여년이 지난 노후 기종이다. 지난 1월 추락한 F-5는 운용한 지 36년이 됐다. 지난 12일 추락사고를 겪은 F-4E는 1979년에 도입됐다.

조종사 안전을 위해 낡은 전투기를 조기 퇴출하자는 주장과 더불어 전투기 성능개량과 대체와 관련된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빛과 그림자 뚜렷했던 한국 공군 F-4

지난 12일 추락한 F-4E는 1979년 도입된 기체다. 한국 공군은 1960년대부터 F-4를 미국에서 들여와 순차적으로 실전배치했다.

미국에서는 1976년부터 F-15를 배치한 직후부터 구형으로 분류됐지만, F-4에 대한 한국 공군의 ‘애정’은 계속됐다. 지난 5월 대한항공이 한국 공군 F-4 창정비 최종 기체를 출고했을 때 공개한 기체가 마지막으로 생산된 F-4 18대 중 하나였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전략적 대북 압박 효과와 공중전, 지상공격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다.

1999년 도입된 이스라엘산 AGM-142 팝아이 공대지미사일은 노후화가 진행되던 F-4의 수명을 연장했다. 최대 사거리가 약 200㎞에 달했던 팝아이 미사일은 휴전선 이남에서 북한 내륙 지역을 타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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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RF-4 정찰기가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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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은 F-4 중에서도 후기 생산분에 속하는 F-4E에 팝아이 미사일을 장착했다.

북한은 팝아이 미사일을 장착한 F-4를 위협적으로 인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공군 출신 예비역은 “현역으로 복무하던 과거에 북한 공군 전투기가 휴전선 근접비행을 종종 했다. F-5가 대응 출격하면 북한 공군기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으나, 팝아이 미사일 장착이 가능한 F-4E가 뜨면 북쪽으로 돌아가는 일이 꽤 있었다”고 회고했다.

팝아이 미사일 운용과정에서 공군은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무게가 1.3t이 넘는 미사일을 발사하면, 강한 발사 후폭풍 등으로 F-4E의 무게 중심이 크게 흔들린다. 이는 미사일의 명중률에도 악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이 쉽지 않았으나 팝아이 미사일과 F-4E는 한국 공군에게 전투기를 이용한 중장거리 정밀타격 개념의 효용성을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노후화가 심한 상황에서도 F-4E 20대를 계속 사용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세월의 힘을 이기기는 어려운 법. 생산한 지 50년이 가까워지면서 부품 공급도 어려워졌고, 사고 위험도 높아졌다. 대한항공도 창정비를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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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이 지난 5월 25일 35년간의 F-4 전투기 창정비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밝히면서 공개한 사진. 대한항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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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공군은 2024년쯤 F-4E를 퇴역시킬 방침이다. F-4E의 빈자리는 F-35A가 메울 예정이다.

F-4E는 운용과정에서 논란도 많았다. 창정비는 이뤄졌지만, KF-16처럼 대대적인 성능개량 프로그램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고 대체 기종 확보도 크게 늦어졌다는 지적이 예전부터 나왔다.

F-4E를 장기간 운용했던 튀르키예, 이스라엘, 그리스, 일본 등은 1980년대부터 대대적인 현대화 작업을 거쳐 4세대 전투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성능을 높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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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장병들이 활주로에서 이탈한 F-5 전투기를 크레인으로 들어올리는 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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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은 대규모 현대화 사업을 했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팝아이 미사일 장착 외에는 기골보강이나 창정비 등을 통한 수명연장 정도다.

한국 공군은 KF-16, F-15K, F-35A,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KC-330 공중급유기 등 고가의 첨단무기를 수십년 동안 지속적으로 구매했다.

반면 F-4E는 대규모 성능개량을 제때 하지 못한 채 40여년을 사용했다. 수조원짜리 전력증강사업을 꾸준히 추진할 여력이 있었던 공군이 정작 F-4E의 성능은 제대로 높이지 못했다.

역대 공군 수뇌부가 구형 기체의 성능을 제때 높여 전투력을 유지하고 조종사의 생존성을 보장하는 대신 첨단무기 도입에 따른 ‘전시 효과’를 더 선호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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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공군 전투비행단의 연합작전 능력 향상을 위해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실시된 쌍매훈련에서 한국 FA-50(왼쪽) 전투기 1대와 미국 A-10 전투기 2대가 연합 편대비행을 하고 있다.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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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의 실책, FA-50에서 반복되는 것 막아야

노후 전투기 추락사고가 잇따르자 군 당국은 대체 기종 추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2023~2028년까지 3조9400억 원을 투입해 F-35A 20대를 도입할 예정이다.

FA-50 추가도입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보다 성능을 높이지 않으면, 노후 기종 대체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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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군 FA-50 전투기가 활주로에 착륙하기 위해 하강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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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공군에 첫 납품된 FA-50은 내년부터 초도생산 물량을 중심으로 운용기간이 10년을 넘어서는 기체가 등장할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항공기 수명이 40년이라고 하면, 중간수명은 20년이다. 중간수명을 넘어선 기체의 성능개량은 신규 개발보다 경제성이 낮다.

성능개량 소요제기와 검토, 검증을 거쳐 소요를 확정하고 획득사업에 필요한 절차를 거치려면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사업추진전략을 마련하고 업체와 계약을 맺은 후 실제 사업 절차에 착수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또 추가된다.

이 과정에서 FA-50이 중간수명을 초과하면, 경제성 문제로 성능개량 사업 추진은 더욱 어려워진다.

지금부터 FA-50의 성능을 높이는 작업을 추진하지 않으면, 개량 시기를 놓친 채 노후 기종으로 전락한 F-4E의 전철을 밟을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성능개량 프로그램을 개발, 추가 도입 물량에 우선 적용하면서 기존에 배치된 60대도 순차적으로 개량 작업을 하면 적은 비용으로도 공군의 전력지수를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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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공군 전투비행단의 연합작전 능력 향상을 위해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실시된 쌍매훈련에서 한국 FA-50(앞쪽) 전투기 1대와 미국 A-10 전투기 2대가 연합 편대비행을 하고 있다. 공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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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FA-50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최근 폴란드에 48대를 수출하는 것과 관련, 기본계약을 체결했다. 1차로 12대를 내년에 인도하고, 36대는 2025년부터 블록20으로 제공한다. 1차로 공급되는 12대도 블록20으로 개조한다.

FA-50 블록20은 지난 5월 국회에서 열린 공군전력 발전방향 세미나에서 KAI가 공개한 FA-50 성능개량안이 상당수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를 비롯한 국산 신형 항공전자장비가 다수 탑재되고, 단종 부품이 교체된다. 신형 중·단거리 공대공미사일과 중거리 공대지미사일 등도 추가된다.

이같은 방식은 공군력 증강과 수출 진흥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

F-35A 도입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공군력을 높일 수 있다. F-4E 퇴역으로 공백이 발생하는 중거리 공대지미사일 운용 능력을 FA-50이 맡으면 북한 내륙 지역 공습이 가능해진다.

북한군 방공능력이 강화되면서 전선과 인접한 곳에서의 공습이 한층 위험해진 상황을 감안하면, 정밀타격 능력과 조종사 생존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공중전에서도 기존보다 전투범위가 크게 확장된다. E-737 공중조기경보통제기가 실시간으로 전장정보를 지원하면 KF-16, F-15K 기종의 지원을 받지 않고도 북한군 미그-21, 23 전투기와 공중전을 치르는 것도 가능하다.

FA-50의 수출 지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의 군대는 제작국가에서 운용한 실적이 있는 무기를 선호한다. 제작국가의 군 당국이 품질을 ‘보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방위사업청이 수출용 무기체계 군 시범운용 제도를 만들고, 육군이 호주의 장갑차 사업에 참여한 레드백 장갑차를 시범운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FA-50 블록20은 현재 상황에서는 폴란드만 도입이 확정된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 공군이 FA-50을 폴란드 버전과 유사한 수준으로 성능개량을 진행하면, 폴란드 측도 FA-50에 대해 더욱 신뢰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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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21(서울 ADEX)에 한국 공군 FA-50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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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국가에서 성능개량을 실시하면, 잠재적 수출 대상국을 상대로 더 많은 관심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한국 공군이 쓰지 않는데 다른 나라들이 FA-50 성능개량형 도입을 검토해보겠는가”라며 “폴란드에도 우리 측의 조건에 대한 신뢰를 더 높이고 공군력도 늘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무인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대가 왔지만, 여전히 공중전은 조종사의 비중이 크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비행에 나서는 조종사에게 군과 정부는 우수한 장비를 갖춰줄 의무가 있다.

첨단 전투기를 들여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사용중인 기종의 성능과 생존성을 높이는 작업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성능개량과 대체 시기를 놓쳐 낡은 전투기로 전락한 F-4E의 사례가 또다시 반복된다면, 조종사들의 위험한 비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FA-50 등의 성능개량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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