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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상인의 현실감각" DJ 어록을 민형배 복당에 쓴 이재명의 착각 [뉴스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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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가 14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대전·세종 합동연설회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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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선생님(DJ)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정치는 현실이다. 서생적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상인의 현실 감각도 가져야 하고, 이 두 가지가 합리적으로 잘 조화되는 것이 좋다.”

지난 16일 저녁 JTV 주최 토론회를 보던 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 발언에 귀가 번쩍 뜨였다. 이 후보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과정에서 탈당했던 민형배 무소속 의원의 복당 필요성을 역설하며 DJ를 인용했다.

이 후보는 “시민운동가라면 원칙을 끝까지 지키는 게 중요하지만, (정치인은) 바뀐 상황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한번 결정했다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건 옳지 않은 태도다. 민 의원 복당 문제도 사실은 같다”고 말했다. 민 의원의 탈당에 대해선 “민주당 또는 개혁 진영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나름 희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1년 내 복당 금지) 규정도 중요하지만, 국민과 지지층 의견도 충분히 고려해 상황에 맞춰 판단하는 게 옳다”는 게 그가 DJ를 인용해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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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8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서 추모사를 마친 뒤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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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DJ의 말이 저런 뜻이었을까. 김대중 대통령 13주기인 18일 새벽, DJ가 생전 직접 읽고 고친『김대중 자서전』을 펼쳤다. 자서전에 소개된 발언 시점은 2006년 3월, 사립학교법 개정에서 시작한 여야 대치가 극에 달한 무렵이었다. DJ는 영남대 강연 직후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새내기에게 좋은 말씀 부탁드린다’는 질문에 “정치인으로서 훌륭하게 성공하려면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을 가져야 한다. 서생적 문제의식, 즉 원칙과 철학의 확고한 다리를 딛고 서서 그 기반 위에서 상인적 현실 감각을 갖춰야 한다”고 답했다.

DJ는 이어 “국민의 손을 잡고 반걸음만 앞서가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이 말은 DJ가 당시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건넨 충고이기도 했다. DJ는 “참여정부가 일련의 민주적 조치들을 펼치고 있음을 평가하지만, 국민 의사를 수렴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며 “현대 정치는 국민을 무시하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그러면서 “목적이 정의롭고 고상할수록 ‘국민과 함께’라는 방법상의 원칙은 더욱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생적 문제의식’을 추진하는 데 있어 국민 공감대를 고려하라는 게 DJ가 ‘상인적 현실 감각’을 언급한 이유였다.

이 후보는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도 DJ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이란 말을 “매우 좋아한다”며 소개했다. 하지만 최근 행보는 DJ가 강조한 민심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이재명 방탄’ 논란이 일었던 당헌 80조 개정이 대표적이다. 이 후보는 “학교 빨리 가기 위해서 샛문을 만들었는데 그게 어느 날 도둑의 침탈 루트가 되면 막아야 한다”고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정작 KBS·한국리서치 여론조사(12~14일)에선 개정 반대(48.8%)가 찬성(36.1%) 여론을 압도했다. 이 후보가 ‘개혁 진영의 소망’이라며 옹호한 검수완박 역시 여론조사(한국갤럽, 5월 3~4일)에선 ‘잘못된 일’이란 응답이 47%로 더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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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당대회 출마 선언 다음날인 지난 7월 1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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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면서, 방명록에 "상인적 현실 감각과 서생적 문제의식으로 강하고 유능한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적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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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런 이 후보도 한때는 지지층 입김을 넘어선 ‘원칙론’으로 민심의 지지를 얻은 적이 있다. ‘민주당 내 비주류’로 불리던 2020년 7월, 대법원에서 ‘친형 강제 입원’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한 족쇄가 풀린 직후였다. 당시 이 후보는 ‘무공천 당헌’을 바꿔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려던 민주당 지도부에 “장사꾼도 신뢰가 중요하다. 정말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며 반대했다.

다음날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비공개회의에서 이 발언을 질타했고, 강경파 정청래 의원도 “매 맞을 일”이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당리당략을 넘어선 그의 원칙론은 ‘내로남불 민주당’에 질렸던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다음 달 실시된 한국갤럽 조사(2020년 8월 11~13일)에서 이 후보는 지지율이 13%→19%로 오르며, ‘무공천 당헌 개정’에 찬성했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앞질렀다. 결국 패배하긴 했지만 역대 민주당 대선 후보 최다 득표인 1614만 7738표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했다. 최근 “특검도 탄핵도 당원 투표로 하자”고 외치는 이 후보가 되돌아봤으면 하는 순간이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오현석 더불어민주당 반장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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