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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사설] 전기차로 번진 미·중 전쟁 파고, 기업 혼자 헤쳐 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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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힘 원내대표가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해 “매년 국산차 10만대 수출이 막힐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얼마 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 내용을 곰곰이 살펴보니 심상치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다. 이 법안에 따라 미국에서 대당 1000만원가량 주던 전기차 구매 세제 혜택을 북미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차에만 준다. 보조금 대상이 전기차 72종에서 21종으로 줄어든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 5종은 모두 제외됐다. 미국 전기차 시장의 9%를 차지하는 현대차로서는 심각한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가 한·미 FTA 및 WTO(세계무역기구) 협정 위반 우려를 전달했다지만 우리 입장은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달 반도체법에 이어, 인플레이션 감축법까지 통과된 것은 미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의 국익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외국에 중요 부품 및 자재 공급을 의존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탈(脫) 중국의 공급망 재편을 예고했었다. 그 구상대로 미국은 초당파적으로 관련 법안을 착착 통과시키고 있다.

전기차는 지난해 세계 자동차 판매의 5.8%를 차지한다. 성장하는 미래차 시장을 놓고 미국 테슬라와 중국 비야디(BYD)가 세계 1, 2위를 다툰다. 그간 중국은 각종 지원책을 통해 자국 전기차 업체를 대대적으로 키웠다. 전기차용 배터리에서도 중국 CATL과 BYD가 각각 세계 1, 3위다. 이에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중국 견제에 나섰다. 이번 법안에서는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생산한 배터리와 배터리용 핵심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한다. 사실상 중국의 전기차 및 배터리에 대한 제재다.

반도체, 전기차용 배터리 등에서 미국이 적극적으로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세계 교역 환경이 바뀌고 있다. 무역 의존도가 GDP의 85%에 이르고, 1·2위 교역국인 중국과 미국의 긴장이 격해지면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상황은 우리에게는 엄청난 도전이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개별 기업으로서는 미국 투자를 늘리고 부품 및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등의 방식으로 대처해 나가겠지만 기업 혼자 헤쳐나갈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정부가 외교·통상·산업 라인을 풀가동해 미·중 정책 흐름에 기민하게 정보를 취합하고 원자재 수입 다변화 등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기업과 빠르게 정보를 공유하면서 한 몸처럼 움직여야 이 거대한 파고를 헤쳐나갈 수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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