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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서구 대중음악 속의 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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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이 주제인 英민담 ‘두자매’

후대에게 냉혹한 현실성 전달

K-팝도 민담과 민요 녹여내면

한국문화, 팝 역사에 남기는 셈

대중음악에는 민요에서 영감을 얻었거나, 아예 민요를 팝 스타일로 편곡해서 연주한 것이 꽤 많다. 생각해보면 사이먼 앤드 가펑클이나 유명한 팝 가수들은 이처럼 민요를 꽤 불렀다. 예전에 포크송이라고 불렀던 팝 음악 자체가 민요를 뜻하는 포클로어(folklore)에서 온 것이고, 이게 동시대의 대중음악이 된 것이다. 이 가운데 우리의 정서에 잘 맞는 민요들이나 팝 음악들은 대부분 사랑이나 가족의 소중함, 또는 가족이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민요 또는 민요에 기반을 둔 팝 음악이, 항상 사랑이나 그리움 등 인간 본연의 감정에 호소하는 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에서 내려오는 민요 중에는 권선징악과는 살짝 거리가 있거나 이야기의 마무리를 맺지 않고 우리에게 화두를 남겨두는 사례가 허다하다. 한 예로, ‘두 자매’는 살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국의 고대 왕국 시절부터 전해 내려온다는 민담이다. 영국 사람들은 이런 내용을 따로 모아 ‘살인에 관한 발라드’(Murder Ballad)라고 부른다. 원형은 6세기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라 영국 사람들은 주장하는데, 시대와 지역에 따라 내용이 다른 것들을 정리한 완성형은 17세기가 되어서야 등장했다.

세계일보

황우창 음악평론가


기본 틀은 이렇다. 어느 날 두 자매가 바닷가에서 한 남자가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알고 보니 난파선에서 탈출해 목숨을 건진 옆 나라 왕자였는데, 두 자매는 이 왕자를 극진히 간호했다. 왕자는 건강을 되찾은 후 이윽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왕자를 간호하던 중 두 자매는 모두 이 왕자를 사모하기 시작했고 결국 왕자 역시 이 자매 중 좀 더 예쁜 동생과 눈이 맞아 결혼을 약속했다. 이 왕자가 고국으로 돌아갈 무렵, 사신을 보내 동생을 데리고 가겠노라며 약속까지 한 건 좋았는데, 이 언약을 지켜본 언니는 질투에 눈이 멀어 왕자가 떠난 후 동생을 살해하고 말았다. 바닷가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린 것이다. 얼마 후 이곳을 찾은 옆 나라 사신은 혼자 기다리던 언니를 데리고 그 나라로 돌아갔고, 조국에서 언니를 만난 왕자는 의심을 했지만 오래 못 봐서 그렇겠거니 생각하며 약속대로 결혼식을 준비한다. 언니는 죽은 동생인 척하면서 왕자와 결혼을 하려는데….

물에 빠져 죽은 동생의 시신은 바닷속을 헤매고 있다가 옆 나라 바닷가까지 흘러갔다. 이 시신을 발견한 사람들은 옆 나라 어부들, 정확히는 그 왕자의 나라 어부들이었다. 어부들은 아름다운 시신을 보고는 그 혼을 달래기 위해 시신의 머리칼로 하프를 만들었다. 곧바로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만지지도 않았는데, 이 하프가 스스로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 여긴 바다 사람들은 곧 결혼할 왕자를 위해 이 ‘스스로 노래하는 하프’를 진상하기로 결정했다. 결혼식이 있는 그날, 왕자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나라 전역에서 올라온 공물 가운데에는 이 문제의 하프도 등장했다. 그리고는 수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이 하프가 과연 노래를 할 것인가. 하프는 노래 대신 크게 외쳤다고 한다. “저 여자가 동생을 죽이고 동생인 척하는 언니입니다. 잔인한 언니!”

그래서 이 노래는 ‘두 자매’와 함께 ‘잔인한 자매’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심지어 영국 동쪽과 바다를 공유하는 지역들, 특히 스칸디나비아 쪽엔 거의 틀과 내용이 똑같은 민담과 민요가 ‘하프’라는 제목으로 존재한다. 이 민담이 이런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는 이유는, 현실에는 항상 아름다운 것만 있지 않다는 냉혹한 현실성을 후대에 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서구 대중음악에서는 ‘두 자매’보다 ‘잔인한 자매’라는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졌는데, 펜탱글 등 1960년대 영국 포크 밴드들이 레코딩으로 많이 남겼다. 문득 든 생각 하나. 만일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앞으로 좀 더 우리의 민담이나 민요를 잘 녹여낸다면 어떨까? 세계 팝 음악의 대세로 자리 잡은 케이팝의 가치와 한국의 문화가 팝 음악의 역사에 제대로 남지 않을까?

황우창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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