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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단독]"엘리베이터 기다리는데 뒤에서 돌려차기" 부산 귀갓길 행인 살인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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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유 없이 폭행...해리성 기억상실에 발목 장애 생겨

지난 5월 22일 새벽, 26살 A 씨는 전날 부산 서면에서 버스킹을 본 뒤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저녁 약속이 길어진 탓이었습니다.

"저녁 약속이 길어져서 새벽까지 있었죠. 제가 그런 거에 별로 겁이 없었나 봐요."

(피해자 A 씨)

새벽 5시쯤, 오피스텔로 들어서는데 그날따라 현관문이 고장이 나 있었습니다. 외부인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겁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A 씨.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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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오피스텔 (사진제공 : A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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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A 씨의 뒤로 30대 남성이 다가왔습니다. 일면식도 없던 남성이었습니다. 이 남성은 느닷없이 A 씨의 뒷머리를 발로 강하게 찼습니다. 갑자기 머리를 공격당한 A 씨는 엘리베이터에 부딪힌 뒤 바닥으로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제가 등지고 있는데 제 뒷머리를 가격하더라고요. 그것도 주먹이나 그런 거로 한 게 아니라, 돌려차기로, 발로 160㎝ 여성을 가격하더라고요."

(피해자 A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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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A씨 (JTBC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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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폭행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미 쓰러진 A 씨의 머리를 4차례 발로 세게 밟았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감싸던 A 씨는 결국 의식을 완전히 잃은 채 쓰러졌습니다. 남성은 그 뒤에도 머리를 한 차례 더 밟았습니다. 그리곤 A 씨를 어깨에 들쳐메고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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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오피스텔 내부 (사진제공 : A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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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오피스텔 1층 복도에 쓰러져 있던 A 씨를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부상 정도는 심각했습니다. 현장에 출동했던 119구급대가 상태를 보고 A 씨의 가족에게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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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당시 A 씨 (사진제공 : A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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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성 두개내출혈, 두피의 상처 등으로 전치 8주가 나왔습니다. 뇌가 다쳐 우측 발목엔 완전마비의 영구장해가 생겼습니다.

"머리를 맞고 나서 신경 쪽에 문제가 와서 발목 아래는 마비가 돼서 걷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갔어요. 불면증, 불안증 우울증 등 많은 것들이 부가적으로 따라왔어요."

(피해자 A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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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절룩거리는 A씨 (사진제공 : A 씨)




당시 상황도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심각한 폭행으로 해리성 기억상실이 온 겁니다. 의료진은 "뇌가 일부러 기억을 지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보는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사실은 경찰이 확보한 CCTV를 통해 알게 된 겁니다.

"사건 당일과 23일 근처는 기억이 잘 안 나요. (병원에서) 갑자기 일어났는데 제가 폭행을 당했다니까. 제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본인이 알지 못한다는 것 자체도 고역입니다."

(피해자 A 씨)

용의자가 경찰에 붙잡힌 건 사흘 뒤였습니다. 경호업체 직원 31살 B 씨라고 했습니다. 역시 A 씨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왜 그랬을까.

"자기 말로는 내가 시비를 걸어서, 피해자가 시비를 걸어서 폭행했다."

(피해자 A 씨)

A 씨는 시비를 걸었다는 가해자 B 씨의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새벽에 거구의 남성을 상대로 시비를 거는 게 말이 되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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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B씨 사진 (사진제공 : A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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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3배는 돼 보이는 거구의 남성을…. 제가 시비를 걸 일도 없고, 그런 성격도 아니고.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게 시비를 걸었으면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하고 말로도 풀 수 있었는데…. 굳이 머리를 가격해서 실신할 때까지 때렸거든요. 너무 이상한 핑계이지 않나요."

(피해자 A 씨)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B 씨는 길거리를 혼자 걸어가는 A 씨를 발견했습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A 씨를 폭행하기로 마음먹고 눈치채지 못하도록 뒤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10분 정도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A 씨가 건물로 들어가자 따라붙어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처음에 경찰은 B 씨에게 중상해죄를 적용했지만, 검찰은 머리만 집중적으로 가격한 점으로 미뤄 A 씨를 살해할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살인미수죄로 혐의를 바꿨습니다. 재범의 가능성이 높다고 봐 전자발찌 부착 명령과 보호관찰 명령도 청구했습니다.

공소장에 따르면, B 씨는 강력범죄 전과자였습니다. 2014년 부산에서 강도상해 등 재범으로 징역 6년, 2020년에는 대구에서 공동주거침입죄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JTBC 취재결과, B 씨는 일당들과 함께 미성년자 성매매를 미끼로 성매수남들을 끌어들여 집단 폭행한 뒤 금품을 빼앗았고 채권추심을 한다며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 집에 들어가 체크카드를 훔쳐 돈을 인출했습니다. 이전에는 상습적으로 청소년들을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다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미성년자일 때에는 소년부에 6차례 송치되기도 했습니다.

A 씨에겐 대체 왜 그런 걸까.

사라진 물건은 없어 금품을 노린 범행은 아닌 거로 추정됩니다. 범행 목적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한 정황들은 있습니다. 피해자 속옷에서 B 씨의 DNA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당시 속옷이 벗겨져 있었던 겁니다. 또, 피해자를 CCTV가 없는 곳으로 옮겨놓고 일정 시간이 지난 뒤 피해자의 신발과 가방을 챙겨서 피해자 옆에 가져다 놓는 기이한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언니가 옷을 벗겨주다가) 너 속옷 안 입었어, 어 내가 입었는데 하니까 오른쪽 종아리쯤에 팬티가 있었다고."

(피해자 A 씨)

재판은 진행 중입니다. 피해자 A 씨 측은 강간살인 미수 혐의를 적용해달라는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사건 이후 한 차례도 피해자에게 사과하거나 합의를 시도하지 않던 가해자 B 씨는 재판부에는 반성문을 제출했습니다.

"(재판에서 본 B 씨가) 너무 멀쩡한 거예요. 범죄자가. 갓 미용실을 나온 사람처럼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있고. 저한테 연락도 없이 (재판부에) 반성만 제출한 것을 보고도 화가 났어요."

(피해자 A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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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진술서 (사진제공 : A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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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의 삶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월 300만 원을 버는 프리랜서 디자이너였던 A 씨는 사건 이후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져, 약 먹기와 밥 먹기 같은 일상적인 행위를 까먹는 일도 잦습니다. 한 달 넘게 입원했던 병원비는 1700만 원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제가 피해자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고, 한동안 못 믿었죠. 꿈인가, 영화인가, 몰래카메라 찍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황당했어요."

(피해자 A 씨)

사건 이후 기사에 달린 익명의 댓글들은 A 씨와 지인들에게 또 다른 가해가 됐습니다.

"(당시 기사 댓글에) 노출이 안 되는 옷을 입어라. 머리도 긴 머리를 하고 있으니까, 여자처럼 하고 다니지 말아라.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하고 다니라는 2차 가해가 있었고. 여자에게도 잘못이 있었겠지. 페미겠지. (원래) 기사 댓글을 잘 안 보는데 제 일이니까 보게 되더라고요. (이런 댓글들이) 제 지인들에게도, 당사자인 본인에게도 상처가 많이 됐죠."

(피해자 A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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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 (JTBC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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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일부 만류에도 자신의 재판을 꼬박꼬박 들어가 챙기고 있습니다.

"피해자라고 숨어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어요.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범죄자가 피해자를 무서워하지 않고 피해자가 무서워해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 같았어요. 난 봐야겠다, 생각했어요."

(피해자 A 씨)

A 씨가 이렇게 언론 인터뷰에 나선 이유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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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 인터뷰 (사진제공 : A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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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이렇게 갑자기 범죄 피해를 보고 나니 피해자에 대한 공적 지원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됐다는 겁니다. 피해자 지원을 받아보려 했더니, 심사받을 피해자들이 몰리면서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심사 결과를 받을 때까지 2개월을 걸리고, 장애 판정을 받는데에도 6개월이 걸린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피해자들은 그사이가 힘든 건데, 치료를 받고 영구장애를 얻은 뒤에야 보상을 받는 게 뭔가 허점이지 않나 싶었어요. 중상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이시 장애인지원제도를 마련한다든가, 그런 제도가 필요한데."

(피해자 A 씨)

A 씨는 범죄피해자들을 위한 지원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공적 지원이나 수사기관 수사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을 신속하게, 세세한 영역까지 도울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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