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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제주 변호사 살인 배후 ‘성명불상자’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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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제주지사 후보 측·나이트클럽 운영자 등

제주지검 “배후 밝혀내기 위해 추가 수사”

김 씨, 판결 불복 상고

제주에서 23년 전 일어나 장기미제 사건으로 남았던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의 피고인이 유죄를 선고받으며 범행을 교사한 ‘성명불상자’에 관심이 쏠린다.

검찰이 살인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이끌어냈지만, 범행 동기와 배후 등 이 변호사 피살사건의 실체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제주지검이 피살사건 전담 수사팀을 구성하고 대검이 철저히 수사하고 엄정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검찰이 사건 실체 규명에 주력했지만, 범행을 사주한 배후는 여전히 미궁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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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으로 이송되는 변호사 피살 사건 피고인.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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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주지검은 항소심 살인죄 유죄 판결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검찰은 피해자 부검의, 국과수 감정관, 혈흔분석 전문가 등 증인신문 4명, 쟁점 정리 의견서 제출 등 충실한 공소유지를 통해 살인 혐의 징역 12년의 유죄 판결을 받아냈다“라며 “피고인에게 살인 범행을 지시한 배후자를 밝혀내기 위해 추가로 수사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18일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앞서 광주고법 제주형사1부는 지난 17일 이 변호사 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56)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진술을 여러 차례 번복했지만, 김씨가 이 사건 공소시효가 만료된 줄 알고 한 방송 인터뷰 내용과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던 경찰 수사 결과가 대체로 부합한 점 등에 비춰 피고인 진술 중 일부는 사실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당시 조직폭력배인 피고인이 ‘성명불상자’로부터 3000만원을 받고 피해자 가해를 사주받아 공범인 친구 손모(2014년 사망)씨에게 이를 의뢰했고, 손씨는 피해자 정보를 수집하고 범행을 실행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당시 피고인에게 3000만원을 건네며 범행을 사주한 배후는 누구일까.

조직폭력배인 김씨에게 ‘누군가를 손 좀 봐줘라’며 금전적 대가를 지급했다면 조직 윗선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항소심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피해자가 검사 출신 변호사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3000만원은 상당한 액수”라고 판시했다.

사실 그동안 배후자에 대해서는 여러 소문이 무성했다.

우선 전 제주도지사 후보 측이 있다.

이 변호사는 1998년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모 제주지사 후보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청년회장의 양심선언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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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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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 변호사는 양심선언과 관련한 모든 증거 자료 원본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해당 제주지사 후보 측에서 김씨가 속해있던 지역 폭력조직인 ‘유탁파’에 사주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실제 당시 제주지사 선거에서 유탁파 조직원 일부가 활동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도내 대형 나이트클럽 운영자가 개입했다는 설도 있다.

김씨는 범행 발생 5개월 전 제주시내 모 나이트클럽을 운영했다.

당시 김씨에게 운영권을 준 대표이사 A씨는 호텔 소유권과 관련한 법적 분쟁이 발생하면서 밀려났고, 그때 직무대행으로 이 변호사가 선임됐다.

경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 변호사는 직무대행으로 선임된 후 경영권을 빼앗긴 A씨와 갈등을 빚었다. A씨는 이 변호사 죽음 직후 갑자기 해외로 잠적했다.

하지만 아직 배후세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김씨는 당시 조직폭력 두목인 백모(2008년 사망)씨로부터 ‘피해자를 은밀히 손 좀 봐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처음에 진술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 초기 단계에서 해당 진술을 유지하다 검찰에 송치되기 전 진술을 번복하더니 윗선은 검찰에서 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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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역 장기미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관련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김씨가 2021년 8월 21일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영장실실심사를 받기 위해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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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피고인은 검찰 조사에서도 윗선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회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다 피고인은 1심 재판 과정에서 이 사건 배후로 같은 폭력조직에서 활동했던 B씨를 지목했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은 B씨가 당시 조직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고, 조직 내 권력 서열상 B씨가 김씨에게 지시할 위치에 있지 않았던 점을 들어 허위 진술이라고 판단했다.

정황상 조직 내에서 서열이 낮은 B씨가 배후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두목인 백씨를 배후로 내세운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주지역 조직폭력 유탁파의 전 행동대원인 김씨는 이 변호사 피살 사건 범행을 공모한 혐의(살인)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김씨는 1999년 8∼9월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동갑내기 손모씨와 이 변호사를 미행하며 동선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가해 방법을 상의하는 등 범행을 공모했다.

손씨는 1999년 11월 5일 오전 3시 15분에서 6시 20분 사이 제주시 삼도2동 제주북초등학교 인근 노상에서 흉기로 피해자의 가슴과 복부를 3차례 찔러 살해했다. 손씨는 그러나 2014년 8월 사망했다.

1심 재판부는 살인 혐의에 대한 직접 증거가 없고,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하려면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사실이 증명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직접 증거는 없지만 검찰 측이 ‘논리와 경험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간접 증거를 충분히 제시했다고 봤다.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배후를 밝혀낼 지 주목된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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