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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300억짜리 CG액션 ‘카터’, 이것은 게임인가 영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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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길 감독 넷플릭스 영화

인질 구조하는 영웅의 액션

CG 지나치게 써 슈퍼히어로화

되레 관객의 공감 빼앗아버려


한겨레

넷플릭스 영화 <카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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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를 걸었다. 지난 5일 공개된 정병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카터> 이야기다. 전작 <악녀>(2017)는 꽤 흥미로운 데가 있었다.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문제는 정 감독이 각본을 정말 못 쓴다는 것이다. 아니다. 각본을 못 쓰는 게 아니다. 그는 액션을 위해 각본을 희생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관객을 놀라게 할 과장된 액션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이야기는 부차적이다. 그런데도 <악녀>를 즐겼냐고? 한국 영화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과잉의 액션이 넘치는 괴작이었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는 새로운 뭔가를 보고 싶어 한다.

<악녀>는 새로웠다. 숙희(김옥빈)가 홀로 70여명의 조직원을 몰살시키는 오프닝은 야심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1인칭으로 진행되는 러시아 영화 <하드코어 헨리>를 <올드보이>의 장도리 복도 시퀀스와 결합하면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터널을 질주하며 벌이는 액션 시퀀스는 할리우드 영화 <존 윅 3: 파라벨룸>에서 오마주 되기도 했다. 그러니 <악녀> 제작비 47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300억원짜리 <카터>에 내가 얼마나 많은 기대를 했을지 생각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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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길 감독의 액션 영화 <악녀> 스틸컷. 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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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는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난 카터(주원)가 귀에 장착된 장치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따라 인질을 구조하는 과정을 그린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나온 바이러스로 세상은 망가졌다. 거기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정원, 북한군 등 다양한 세력이 얽혀든다. 물론 여기서도 이야기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 정 감독은 그저 300억원이라는 압도적 제작비로 온갖 과잉된 액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만 집중한다.

그게 문제다. 제작비가 문제다. 제작비가 늘어나자 정 감독은 많은 장면을 시지(CG)의 힘을 빌려 완성했다. <악녀>에도 시지는 많았다. 하지만 <악녀>는 감독과 배우와 스태프의 땀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카터>는 많은 장면을 그린스크린을 활용해 시지로 매만져 완성했다. 그러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주인공이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일종의 슈퍼히어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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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그레이 맨>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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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시지를 지나치게 활용하는 최근 액션 영화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다. <카터> 공개 직전 넷플릭스는 한화로 2400억원을 들인 <그레이 맨>을 공개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루소 형제가 연출하고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한 영화다. 루소 형제는 마치 마블 영화를 만들듯 <그레이 맨>을 만들었다. 고슬링이 연기한 캐릭터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인간이다. 그러나 <그레이 맨> 속 그는 그린스크린으로 촬영해 실사 배경과 합성한 마블스러운 무대에서 중력을 거스르는 액션을 펼친다. 근사한가? 그럴 수 있다. 재미있는가? 그럴 리가.

우리가 액션 영화를 즐기는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의 고통에 우리를 대입시킬 수 있어서다. <다이 하드>를 보면서 우리는 브루스 윌리스가 육체적 한계를 느끼며 지친 얼굴로 벌이는 진짜 액션의 힘을 느낀다. 요즘 액션 영화는 주인공들을 중력의 법칙마저 위배하는 슈퍼히어로로 만들어버린다. 관객이 실체적으로 느껴야 할 법한 타격감도, 충돌감도, 위기감도 없다. 그냥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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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카터>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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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캐릭터가 죽는 것에 별 감정의 파고를 느끼지 못한다. 죽으면 다시 살려 플레이하면 그만이니까. <카터>와 <그레이 맨>은 절대 죽지 않는 캐릭터가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꾸역꾸역 달려가는 걸 조이스틱도 없이 지켜봐야 하는 괴로운 경험이다. 좋은 액션 영화는 잘 짜인 합과 편집만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시지 거품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게임만 스크린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미래의 액션이라면, 액션은 차라리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김도훈 작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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