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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단독] 반지하 나와 고시원…현 주거급여로 갈 곳은 ‘지옥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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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반지하에서 산다 : 반복되는 ‘지옥고’ 참사

도시연 ‘지옥고 보고서’ 분석

15년새 반지하 거주 58만→32만

고시원·쪽방 등은 40만가구 늘어


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침수 피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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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고시원에 사는 나수현(가명·54)씨에게 반지하 주택의 침수 피해는 남일 같지 않다. 열리지 않는 유리창이 달린 6.61㎡(2평) 단칸방에서 매일 밤 진드기와 사투를 벌이는 나씨에게도 걱정이 있어서다. “불이 나면 정말 문제예요. 통로도 좁고 방도 좁다 보니 다 타 죽을 거예요.” 3년 전 시민단체 도움으로 쪽방에서 벗어났지만, 기초생활수급자인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고시원뿐이었다.

반지하 주택이 장마철마다 수마로 피해를 본다면, 고시원에서는 화마로 인한 참사가 끊이질 않는다. 2018년 11월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로 기초생활수급자 4명을 포함한 고시원 거주자 7명이 사망했다. 서울시는 참사 뒤 고시원 방 전용면적을 7㎡ 이상으로 두고, 유사시 탈출이 용이하도록 방마다 창문도 설치하도록 건축조례를 바꿨다. 화재 원인 중 하나였던 ‘스프링클러 미설치’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시원이 간이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소방시설 및 다중이용업소 안전관리법도 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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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대책에도 올해 4월11일 서울 영등포구 ㄱ고시원에서 불이 나 2명이 또 사망했다. 국일고시원 참사로 개정된 건축조례는 ‘2022년 7월1일 이후 신축·증축·리모델링 고시원’에만 해당해 ㄱ고시원은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간이 스프링클러도 10분 동안 작동했지만, 재난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안전기준을 강화하는 게 답이 아니다. 반지하, 쪽방, 고시원 등 모든 비적정 주거 거주 가구들은 그곳이 좋아서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주거 상향을 통해 그곳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옥고’(지하·옥탑방·고시원)로 묶이지만 반지하 거주 가구는 감소하는 반면 고시원 거주 가구는 급증하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위협받고 있는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 실태와 대응 방안’ 보고서(‘지옥고’ 보고서)를 보면, 지하 거주 가구는 2005년 58만7천에서 2020년 32만7천으로 대폭 줄었다. 반면 주거 환경이 양호한 오피스텔을 제외한 ‘주택 이외의 거처’(고시원, 비닐하우스, 판잣집, 쪽방, 컨테이너 등) 거주 가구는 같은 기간 5만7천에서 46만3천으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고시원이 약 40%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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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이외의 거처’가 늘어난 시기는 서울 강북 일대가 재개발을 진행한 시점과 맞물린다. 재개발로 밀려난 반지하 거주 가구가 고시원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내 거주층 항목을 보면 2010년과 2015년 지하 거주층 가구는 51만8천가구에서 36만4천가구로 5년 새 15만4천가구가 대폭 줄었는데, 같은 기간 주택 이외의 거처는 12만9천에서 39만4천으로 26만5천가구 폭증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당시 고시원을 포함한 주택 이외의 거처는 25만가구 늘었다. 반지하에 거주해온 사람들이 주택 이외의 거처로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8일 폭우로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이 참변을 당하자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반지하 거주 가구를 대상으로 한 공공임대주택 대량 공급, 지상층 이주 시 월세 지원(2년간 매달 20만원) 등을 대책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급조되는 땜질식 처방이 아닌 주거 취약계층 전반을 고려한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지옥고’ 보고서는 주거급여 보장 수준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대책으로 제시한다. 현재 주거급여(서울 1인가구 기준 최대 32만7천원) 보장 수준으로는 기초생활수급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지옥고’뿐이라 참사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국일고시원 화재부터 최근 반지하 수해 참사까지 피해자 대부분이 주거급여를 받고 있었다. 최 소장은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단편적 대책을 쏟아내는데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는 비상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며 “취약계층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비적정 주거 전반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옥고: 지하(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의 앞 글자를 따 줄여 이르는 말. 2020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지하와 옥상, ‘주택 이외의 거처(고시원 등)’에 거주하는 가구는 85만6천가구로 집계됐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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