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이슈 끝없는 부동산 전쟁

尹 "집값 안정" 자평에…경제학자 이준구 "뭘 했나? 염치없어"

댓글 14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이준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사진 홈페이지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집값, 전세값 안정을 새 정부 성과로 내세우자 국내의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인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느냐”고 반문했다.

경제학계 원로인 이 교수는 “최근의 주택가격 급등세의 진정은 시장이 정점을 찍었고 금리 상승까지 일어나 생긴 결과일 뿐”이라며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게 뻔한데 이걸 자신의 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회견에서 "(새 정부는) 폭등한 집값과 전셋값을 안정시켰다. 국민들의 주거 불안이 없도록 수요 공급을 왜곡시키는 각종 규제를 합리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주거 복지 강화에 노력했다"고 자평했다.

중앙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연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후 이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폭등한 집값-전세값 안정시켰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윤 대통령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교수는 “이 정부가 집값과 전세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그런 뜬금없기 짝이 없는 자랑을 늘어놓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이 정부가 해온 언동은 집값과 전세값 안정과는 반대되는 방향 아니었느냐”며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대폭 줄여 계속 다주택 상태를 유지해도 되게 만들어 줬다든가, 투기를 억제하는 각종 규제를 완화시킨다는 등의 조처 말이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내가 늘 말하는 거지만, 투기수요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때는 백약이 무효인 경우가 많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 후반기 3년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며 “그래서 사상 초유의 주택가격 상승이 일어났고 그 결과 정권까지 잃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주택시장의 사이클도 언제나 정점에 머물 수는 없고 주택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꺼질 줄 모르고 불붙던 투기수요도 주춤하게 되는 법”이라며 “내 생각으로는 윤 대통령의 취임 직전이 바로 정점에서 내려와 아래쪽으로 하락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MB정부 초기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고, 따라서 그때와 마찬가지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주택가격이 주춤하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 효과가 나타난 게 아니라 시기적으로 집값이 떨어질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중앙일보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 소비심리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토연구원]



이 교수는 “더군다나 이번에는 급격한 금리 상승까지 일어나 갭투자를 통한 주택투기가 더 이상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게 되는 상황 변화까지 일어났다. 이 금리 상승은 윤석열 정부가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 취한 조처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했다. 금리 인상이 집값 하락에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이는 부동산 안정을 위한 대책이 아니라 물가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는 취지다.

이 교수는 “내가 보기에 이 정부가 제일 능사로 하는 일은 ‘MB 정부 따라하기’”라며 “부자감세며 부동산 규제 완화 등 MB 정부가 했던 일을 그대로 따라만 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MB정부가 했던 것처럼 주택투기를 조장하는 기조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주택가격이 어느 정도 안정세를 보이면 다시 주택시장을 부양하려는 근시안적 충동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최근 주택가격 폭등의 연원은 바로 MBㆍ박근혜 정부의 주택투기 조장정책”이라며 MB 정부가 경제 성장을 위해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시키려 주택투기를 부추겼고 이러한 기조가 박근혜 정부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모든 정책은 시차를 두고 그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설명하면서 “주택 가격이 크게 뛰어오르지 않다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주택투기가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는데, 불행히도 취임 초기에 그 불을 끄는 데 실패해 오늘의 비극을 불러왔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주택시장이 안고 있는 비극의 핵심은 바로 이와 같은 냉탕-온탕 정책으로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며 “우리 정치인들이 조금만 더 긴 안목으로 일관성 있는 주택시장 정책을 펴왔다면 이런 비극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점이 몹시 아쉽다”고 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