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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멍드는 대학원생 인권… 유전자 무단채취·폭언에도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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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의대 교수 재판 장기화
대학원생 인권 문제 다시 수면위
학교는 '권리장전' 내세우지만
강제력 부족해 보호막 역할 못해
사적업무지시·성희롱 등 반복


파이낸셜뉴스

지난 12일 대학원생노조 고려대분회 등은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구 윤리를 부정하고 인권 침해 등 의혹을 받는 A교수의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박지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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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내 대학원생들의 유전자를 불법 채취한 의혹을 받는 고려대 의대 교수에 대한 재판이 장기화하면서 대학원생 인권 문제가 재조명받고 있다. 각 대학은 학생 권리 보호 등 내용을 담은 권리장전을 대안으로 삼고 있지만 강제력이 부족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 유전자 불법 채취에 폭언까지

17일 대학원생 인권단체 '대학원생119'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제보된 대학원생 피해 사례는 216건에 이른다.

피해 사례는 △폭언·폭행, (32건14.8%) △연구비 횡령 (29건·13.4%) △사적 업무 지시(13건·6.0%) △성희롱·성폭행(11건·5.1%) 등이다.

특히 연구실 내 부당한 지시는 대학원생들의 정신적·신체적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등은 지난 12일 서울북부지법 형사8단독(김범준 판사) 심리로 열린 고려대 의대 A교수의 연구 윤리 부정 관련 3차 공판에 앞서 "상급자인 교수로부터 받을 불이익을 우려해 학생들이 자발적 실험 참여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만큼, 이에 대한 보호가 시급하다"고 촉구한 바 있다.

A교수는 지난 2016년부터 3년간 사전 동의 없이 연구실 소속 대학원생 등에게서 DNA(Deoxyribo nucleic acid)와 RNA(리보핵산)를 무단 채취 후 연구에 활용해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교수는 채취된 학생들의 유전자 정보를 보고 '너는 우울한 유전자라서 실험을 잘 못 한다' 등의 인격 모독을 일삼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처럼 학내 갑질이 여전히 만연하지만 지도 교수와의 위계질서로 인해 학생들은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이예리 대학원생노조 고려대분회 부분회장은 "지난해 대학원 실태조사에서 학생 44%가 지도교수와의 관계에 '불만족한다'고 답했다. 이유로 강압적·억압적 태도, 부당한 대우 등을 꼽았다"며 "학생들이 갑질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진로와 연구 성과가 지도교수의 단순한 차등만으로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위계질서 속에 속해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권리장전' 마련해도 강제력 부족

반복되는 대학원 내 갑질과 폭언 등을 막기 위해 각 대학은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마련한 상황이다. 대학원생 권리장전은 대학원 학생들의 학내 인권 보호와 권리 보장 내용을 명문화한 것이다. 카이스트가 지난 2014년 10월 국내 대학 중 최초로 선포한 데 이어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은 지난 2017년에 마련했다.

고려대 역시 지난 3월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마련했다. 평등적 처우, 인격 침해 금지, 휴식과 안전에 대한 권리, 대학원생 보호를 위한 기구 운영 등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어 선언적 대책에 그친다. 실제 고려대 측은 학내 연구진실성위원회가 A교수에 대해 "비윤리적 연구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으나 A교수에 대한 징계는 권리장전이 배포된 최근까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관련해 강태경 대학원생노조 정책위원장은 "권리장전과 같은 형태의 선언의 경우 강제력이 부족해 쟁점 사항이 될 경우 위력이 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대학원 내 폭언, 갑질 등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연구실 문화 개선과 자치 조직을 통한 문제 대응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 위원장은 "미국은 대학원생 노조가 약 60여개에 달한다"며 "특히 미시간대 노조는 학내 희롱과 차별, 처우 부족 등 문제가 있을 경우 대학과의 단체협약 내 탄원 절차를 거쳐 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체협약을 맺을 경우 대학원생 권리 보호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될 수 있어 대학원 학생들의 근로자성 인정을 위해 도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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