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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과학기술이 미래다] <57> 과학 생활 전도사 '새마을 기술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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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1974년 2월 14일 과총이 새마을 기술봉사단 회의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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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는 이날 오전 10시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제5회 과학의날 기념식과 제7회 과학기술자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는 과학기술자로 구성한 과학기술 생활 전도사 조직인 새마을 기술봉사단을 창단했다. 새마을 기술봉사단은 범국민운동인 농어촌 새마을운동을 과학기술 측면에서 뒷받침하고, 특히 농어촌 근대화를 위한 소득 증대와 주민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과학기술 문제 지원에 목적을 두었다. 봉사단은 농어촌 주민에게는 희망 사다리였다.

봉사단은 주요 사업으로 전국 농어촌 대상 기술순회 지도와 강연회, 과학기술 지식 보급을 위한 지침서 발간 등을 추진키로 했다. 과학의 날 기념식에는 김종필 국무총리,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 김윤기 과총회장 등 모두 1000여명의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김종필 총리는 치사를 통해 “전국 과학기술인이 새마을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새마을 기술봉사단을 창단해서 농어촌 기술지도와 소득 증대에 앞장서기로 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봉사단은 지속적 활동을 통해 농어촌 과학기술 보급과 올바른 과학기술 생활의 길잡이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총리는 “그 나라 과학자 수준은 바로 국력의 척도”라면서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여러분 두 어깨에 조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조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봉사한다 △과학기술 업무를 공정 성실하게 처리한다 △명예와 권위를 지키고, 이해와 관련한 평가 보고나 증언은 하지 않는다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과학기술윤리강령을 채택했다.

과학기술봉사단 창단의 산파역을 한 김윤기 과총회장의 생전 회고. “새마을 기술봉사단은 어떤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하게 조국 근대화와 농어촌 주민 소득 증대를 위해 전국 마을을 찾아 기술지도를 하는 과학기술인들의 봉사 조직입니다. 특히 농어촌에 가 보면 과학기술자나 전문가의 지도 또는 도움이 필요한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과총 산하 과학기술인들로 순회반을 꾸려서 현지 기술 지도와 강연을 하고 기술 서적을 제작, 전국 농촌에 보급할 계획입니다.”

내무부 초대 새마을 담당관으로서 새마을운동 실무를 총괄한 고건 전 국무총리의 회고록 증언. “새마을운동은 관이 주도한 게 아니라 관(官)과 민(民)이 협력해서 사업을 추진했다. 어떤 사업을 추진할 때 주민들이 마을 총회를 열어 민주적으로 결정토록 했고, 정부는 이를 지원했다. 이 운동으로 말미암아 당시 마을마다 성행하던 음주나 도박 풍조가 사라졌다. 그런 점에서 이 운동은 지역사회 개발 운동이자 정신개혁 운동이었다. 이 운동을 기획하고 연구한 많은 교수가 있었다. 그들은 젊음과 열정을 새마을운동에 바쳤다.”(고건 회고록)

창단된 새마을 기술봉사단은 크게 3단계로 나누어 목표를 설정했다. 우선 1단계인 초기단계(1973~1975년)는 농어촌 대상으로 기술상담 지도와 기술자료를 보급하기로 했다. 2단계(1976~1981년)는 마을에 적합한 과학기술 보급과 응용에 집중하고, 3단계(1982년)는 과학기술 활용 극대화와 신기술 개발 등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

과총은 새마을 기술봉사단 활동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봉사단 중앙본부를 신설했다. 김윤기 과총회장이 기술봉사단 중앙본부 회장직을 맡았다. 중앙본부는 산하에 모두 4개 분야별 기술지원단을 두기로 했다. 제1 지원단은 농수산 분야를 담당했다. 제2 지원단은 전기, 통신, 토목, 건축 등 공학 분야를 맡았다. 제3 지원단은 보건위생을 전담하고, 제4 지원단은 생활 과학화를 담당하기로 했다. 이런 분야는 농어촌 마을의 열악한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에 절실한 기술이었다. 이들 4개 지원단에 참여한 초창기 과학자는 모두 53명이었다. 제1 지원단이 18명으로 가장 많았다. 제2 지원단과 제3 지원단 각 12명, 제4 지원단 소속은 11명이었다.

봉사단은 중앙본부 업무를 전담할 사무국을 설치하고 산하에 총무부·사업부·지도부를 두기로 했다. 창단 1개월여 후인 1972년 5월 25일. 새마을봉사단은 이날 현지기술지도반을 구성해 1차로 현장 지도 활동을 시작했다. 대상 지역은 충남 온양군 아산읍 좌부리 시범 마을이었다. 현지 기술지도단장직은 김윤기 과총회장이 맡았다. 단원은 심종섭 서울대 교수, 김정수 연세대 교수, 강면희 고려대 교수, 홍문화 서울대 교수, 조경철 연세대 교수 등으로 구성했다.

봉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내무부에서 김병량 새마을지도과 사무관과 과학기술처에서 한기익 진흥국 조성과장 직무대리가 동행했다. 기술봉사단이 좌부리 마을을 기술지도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마을 주민들의 협동심과 자립 의욕이 남달리 강해서였다.

조경철 교수의 생전 회고. “이 마을은 145가구로, 주민은 786명이었습니다. 주민들은 협동 단결심이 강했고, 주민들이 밭과 논 농사 및 가축을 기르고 있어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다양한 기술지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교통이 편리해서 기술지도 교수들이 수시로 마을을 방문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과학기술처 조성과장 직무대리로 봉사단과 함께 기술지도에 나선 한기익 전 과학기술처 정책기획관의 회고. “새마을 기술봉사단이 마을에 가면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홍문화 교수는 지방에 가면 대학 제자들이 플래카드를 제작해서 거리에 내걸고 대대적으로 환영했습니다. 홍 박사가 강연하는 장소는 언제나 주부들로 초만원이었습니다.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을 해설해서 유명해진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을 몰고 다녔어요.”

조경철 박사는 봉사단 활동을 나갈 때 당대 인기 스타이자 부인인 전계현 씨와 가끔 동행하기도 했다. 전계현 씨는 여성 팬의 가슴을 울린 '미워도 다시 한번'을 비롯해 '산불' '단종애사' 등에 출연한 은막 스타였다. TV나 지역 영화관을 통해 가뭄에 콩 나듯 볼 수 있던 배우 전계현 씨가 조경철 박사와 함께 지역에 나타나면 일대 주민과 아이들이 전계현 씨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고 한다.

새마을 기술봉사단은 같은 해 8월 4일 좌부리 마을을 방문해서 2차 현지 기술지도를 실시했다. 2차 기술봉사단도 김윤기 과총회장이 인솔했다. 당시 농촌에서는 병해충의 극성으로 벼농사에 어려움이 많았다. 기술봉사단은 작물학 권위자인 서울대 이은웅 농대 교수를 비롯해 가축 역병 예방 대가인 강면희 고려대 축산학과 교수 등이 현지에서 영농기술지도를 했다. 농민들이 가장 궁금한 벼농사 병해충 방제법, 다수확할 수 있는 이모작 영농법, 가축 사료 확보와 가축의 기형출산 등에 관해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문답식 강의를 했다.

2차 기술지도 기간에 봉사단과 좌부리는 자매결연을 맺고 증서를 교환했다. 김윤기 회장은 좌부리 마을에 새마을 공구함을 기증했다. 이 공구함은 김 회장이 직접 고안한 것으로 주민들이 필요한 망치, 톱, 전정가위, 나사못 등 14개 공구를 함에 넣어 전달했다. 농어민들의 새마을 기술봉사 요구는 날로 급증했다. 과총은 이에 따라 봉사단 조직과 기술지도 범위를 확대했다.

과총은 1974년 들어와 새마을 기술봉사단 조직을 확대 개편했다. 4개 기술지원단을 전공 분야별 분과위원회로 개편하고 새마을분과를 추가, 모두 5개 분과위원회로 확대했다. 확대한 5개 위원회는 농수산분과위원회(위원장 심종섭 서울대 농대 교수), 환경개선위원회(김정수 연세대 교수), 보건위생분과위원회(홍문화 서울대 교수), 종합분과위원회(조경철 연세대 교수), 새마을분과위원회(유태종 고려대 교수) 등이었다.

분과위원회는 관련 학회에서 추천받은 전문가 50명 안팎으로 구성해서 특성에 맞는 기술지도와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각 분과 위원장은 스타 과학자들이었다. 홍문화 교수는 국내 의학박사 1호로, 당시 건강 전도사로 유명했다. 유태종 교수는 국내 식품영양학계의 귄위자였다. 조경철 박사는 아폴로 박사로 불리며 과학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과학자였다. 김정수 교수는 서울 장충체육관과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였다. 심종섭 교수는 국내 임업계의 거두였다. 농어촌 주민들은 새마을 기술봉사단 방문을 크게 반기고 고대했다. 기술봉사단은 농촌 주민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과학기술 나무, 그 자체였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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