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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취재파일] 민주당이 당헌 80조 개정으로 놓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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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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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8월 28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헌 80조 개정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부정부패 혐의 기소와 동시에 당직자 직무를 정지하도록 한 당헌 80조를, 1심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정지하도록 개정하기로 의결하면서, 친이재명계와 비이재명계 갈등이 다시 격화하는 모습입니다. 윤석열 정부 검찰이 야당 인사에 대한 무작위 기소에 나설 거라며 직무 정지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찬성 의견이 있는 반면, 당 혁신 노력과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의지를 후퇴시키는 특정인에 대한 '방탄용 개정'이라는 반대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기소 시 당직 정지 조항을 개정하지 않기로 했지만, 징계 처분을 취소 또는 정지할 수 있는 주체를 윤리심판원이 아닌 당무위원회로 바꿨습니다. 특히 비대위는 당내 비상상황에서 비대위를 구성하는 요건에 대한 당헌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그런데, 당헌 80조 개정 이슈에 시선이 집중되는 동안 민주당은 중요한 문제 하나를 놓쳐버렸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불렀던 민주당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민주당은 지난 2020년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하며 2차 가해와 내로남불 논란을 자초했습니다. 성추행 피해자가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린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여성 권리 신장과 성인지 감수성,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장했던 민주당의 부끄러운 민낯이었습니다. 해당 표현을 언급했던 당내 인사들은 모두 사과했고, 지난 3월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의원도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이 권력형 성범죄를 저지르고, 당 역시 '피해 호소인'이라는 이름으로 2차 가해에 참여한 분들이 있다. 결국 책임을 다 지지도 않고 공천까지 한 점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상처입고 질타하고 계시다"라며 "죄송하다"라고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잊히는 것 같았던 논란을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민주당 강령과 당헌·당규 등에 대한 개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지난 6월 21일부터 30일까지 열흘 동안 당 소속 의원들에게 당헌·당규 개정과 관련한 의견서를 받았습니다. 한 여성 의원은 민주당 윤리규범에 적시된 '피해 호소인'이라는 문구를 빼고 '피해자'로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피해자면 피해자인 것이지, 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는 민주당 윤리규범에 두 차례 등장하는데, 해당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민주당 윤리규범 제14조(성희롱·성폭력 등 금지)
③당직자와 당 소속 공직자는 제1항과 제2항의 피해자(피해 호소인을 포함한다)와 관계 자의 의사를 고려하여 신변을 보호하고, 조사 및 처리 등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름,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는 물론 그 내용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당직자와 당 소속 공직자는 피해자(피해 호소인을 포함한다)의 의사에 반하여 피해자 본인에게 피해사실 등에 관하여 지속적으로 말하거나 확인을 구하여서는 아니 된다. 또 한 피해자와 관련해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거나 객관적 사실이 아닌 사실을 불특정 다수 에게 알려서는 아니 된다.


하지만, 이 문제는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강령과 당헌·당규 개정 업무를 맡고 있는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윤리규범은 당헌상 전준위의 업무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당헌 77조상 윤리규범의 제·개정 및 시행에 관한 사항은 윤리심판원의 권한으로 정해져있습니다. 소관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개정할 수도 없고 논의할 필요도 없었다는 건데, 문제는 윤리심판원도 이 문제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의원들의 개별 의견서가 전준위를 거쳐 윤리심판원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윤리심판원 소속 한 의원은 '피해 호소인'을 삭제하고 피해자로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서 내용 자체를 "모르고 있다.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했습니다.

소관 업무가 아니라는 형식적인 논리를 들며 손을 놓은 전준위나, 윤리규범에 적시된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의 부적절성에 대한 당내 의견을 모르고 있다는 윤리심판원이나, 무책임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는 지난해 4.7재보궐선거를 앞두고(2021년 3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민주당에는 소속 정치인의 중대한 잘못의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축소시켰고 당원 투표를 통해 서울시장에 결국 후보를 냈다. 사과하기 전에 사실에 대한 인정과 후속적인 조치가 있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사과는 진정성도 현실성도 없는 사과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민주당은 다시 돌아봐야 합니다. 당헌 80조 개정 문제에 집중하는 사이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이미 늦어도 너무 늦었기 때문입니다.
장민성 기자(m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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