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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얽힌 진실과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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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387] <고산자, 대동여지도>

역사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과 일부 왜곡을 하더라도 극적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것 사이에서 역사를 소재로 삼는 작가들은 끊임없이 갈등한다. '씨네만세' 지난 편에서 다루었듯 최근 흥행하는 <한산: 용의 출현>에서도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이 여럿 등장하는데 오히려 그와 같은 설정이 영화를 더욱 맛깔나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선 비판도 제기된다. 역사소재란 실제 역사를 전제로 한 것인데 마음대로 고치고 비튼다면 역사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2016년작 <덕혜옹주>나 2019년작 <나랏말싸미>가 대표적인 경우다.

대한제국 황실의 독립의지를 내보인 <덕혜옹주>는 개봉 직후 왜곡 논란에 시달렸다. 영화 속 덕혜옹주는 민중들 앞에 나가 연설을 하며 독립심을 고취시킨다. 또 영친왕이 독립에 힘을 싣고자 일제로부터 도망치는 모습도 담겼다. 하지만 이는 실제 역사와 다르다. 덕혜옹주는 민중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마도 백작과 정략결혼을 했고, 영친왕은 일본 육군 장교로 복무하고 일제로부터 국빈 대우를 받았다.

<나랏말싸미>는 더욱 큰 논란에 시달렸다. 이 영화는 세종대왕이 신미 스님에게 훈민정음을 만들도록 했다는 설정을 가진다. 창제 목적과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해례본이 실존할뿐더러 신미 스님의 문자창제설에 이렇다 할 근거조차 없는 상황임에도 이 같은 가설을 따라 영화화했다는 것에 학계는 물론 대중들의 비판까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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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대동여지도 ▲ 포스터 ⓒ CJ ENM



부재한 역사 너머 상상을 펼쳤다

역사영화를 역사 그대로만 영화화할 필요는 없다. 쓰인 역사 사이로 무구한 상상력이 깃들 수 있는 데다, 예술이란 그 상상의 영역에서 의미를 피워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역사 안에 상상의 영역을 확장하는 일이 어디까지 가능한 지 내보이는 좋은 사례다.

주지하다시피 영화는 고산자 김정호(차승원 분)의 이야기다. 대동여지도와 청구도로 유명한 지리학자로, 남겨진 지도에 비해 그 신상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얼마 없다.

그가 베일에 싸여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벼슬을 한 적도, 좋은 집안의 자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역사 속 모든 기록을 뒤져도 김정호에 대한 것은 A4용지에 10포인트 글로 채 반 장이 나오지 않는다고 전할 정도다.

그래서 김정호의 이야기엔 상상력이 자유롭게 끼여들 수 있다. 영화는 그에게 깊은 상처를 안기며 시작한다. 김정호의 아버지는 북방의 중인계층이었는데 홍경래의 난을 맞아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길을 나섰다 산길에서 얼어 죽는다는 설정이다. 아버지의 죽음엔 부실한 지도가 한 몫을 했다. 관아에서 베껴간 지도에선 산 하나로 표시된 것이 실은 넘기 어려운 산맥이었던 것이다. 성인이 된 김정호가 지도에 미쳐 살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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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대동여지도 ▲ 스틸컷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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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이야기, 절반만 사실?

김정호는 전국을 떠돈다. 더 정확한 지도를 그리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방방곡곡을 다닌다. 지리학에선 실측이라 부르는 일로, 김정호는 전국을 실측해 길과 물과 산을 따로 그리는 현대식 지도를 조금씩 그려나간다.

그의 목적은 분명하다. 아버지와 같은 죽음을 막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위해서 그는 정확한 지도를 만들려고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하기에 지도 제작방식도 남다르다. 그는 지도를 목판으로 새긴다. 목판을 종이에 찍으면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베낄 필요 없이 간편하게 보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이 같은 내용이 딱 절반만 사실이란 점이다. 김정호가 전국을 실측해 대동여지도를 그렸다는 건 역사 속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낭설이다. 그와 연이 있는 무신 신헌의 기록에 따르면 그가 직접 김정호에게 국가 소유의 지도를 여럿 내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김정호가 대규모 지도를 목판에 새겼단 걸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정보가 담긴 전국지도를 김정호가 일일이 발로 답사해 그렸단 게 당시 교통사정에 비추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높다.

또한 김정호는 실학자 최한기며, 그와 신헌의 스승이기도 한 김정희와 교류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가 지도를 만든 시기는 이미 동아시아를 넘어 동남아시아 대다수 나라가 현대식 지도를 갖고 있던 때로, 김정호는 그때까지 실존했던 다양한 국내 지도를 모아 현대식으로 재조합한 것이라는 설이 설득력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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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대동여지도 ▲ 스틸컷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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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지도의 목판제작, 영화화 가치 충분

김정호가 목판으로 지도를 찍어 민중들에게 보급하려 했다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대중 보급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지도를 목판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가 앞서 제작한 책자 형식의 청구도와 종이 위에 그려진 동여도가 대동여지도에 비해 특장점이 있다는 점도 목판본의 중요성을 반증한다. 무엇보다 관료며 주류 양반이 아닌 이가 상당한 공력을 들여 목판지도를 만들었다는 건 당대 쇄국정책 흐름 속에서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일이라 하겠다.

적잖은 역사적 주요지점을 한반도보다 몇 년 씩 앞질러간 베트남의 경우, 대남국 2대 황제인 민망 황제 명령으로 국가 주도 하에 육지와 해안을 실측한 지도가 만들어졌다. 1820년대의 일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무려 40년가량 이르다. 중국이며 일본의 근대적인 지도도 우리 역사보다 크게 앞선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영화가 주목한 지점은 특별하다. 당대 사회가 주목하지 않아 기록마저 일천한 일개 백성이 개인의 힘으로 민중에게 쉽게 보급하기 위한 현대식 지도를 제작했다는 점이 그렇다. 그 안에 담긴 뜻과 의지는 다른 어느 나라의 현대식 지도 제작 사연과 비교해도 매우 특수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역사교육이 가볍게 훑고 지나갔으나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제대로 포착해 올린 지점이라 하겠다.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는 개봉 때마다 국민적 관심을 받곤 한다. 그 과정에서 역사를 어디까지 다루고 어떻게 비트느냐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어느 것은 변주라 환영받고, 어떤 것은 왜곡이라 비난을 산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그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선명히 드러낸다. 다루어 마땅하지만 미처 조명되지 못한 부분, 예술이 파고들 곳이 바로 거기에 있다.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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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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