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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폭로한 ‘위험도시’ 서울…‘이것’만 바꿔도 목숨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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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신고 폭주’ 대응…우선순위 정하자

②차수판 먼저 높이자

③맨홀 뚜껑…안전그물 설치

④지하 공간 방수대책 개선


한겨레

지난 8일 밤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빌라 반지하에서 40대 자매와 10대 어린이 한 명이 폭우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9일 오전 해당 빌라의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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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기반 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진 대도시를 삽시간에 마비시킨 기습 폭우는 우리 사회 기본적 안전 시스템 누수를 곳곳에서 확인시켜줬다. 특히 서울에서는 폭우가 시작된 8일 하룻밤에만 모두 7명(실종 뒤 발견 등 포함)이 숨졌다. 반지하 침수(4명), 맨홀 빠짐(2명), 지하주차장 침수(1명) 등 과거에도 늘 위험성이 강조됐던 사고로 또다시 피해가 발생했다. 대심도터널 등 중장기 대책 이전에 당장 오는 9월 태풍 시즌을 앞두고 인명·재산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짚어봤다.

①‘신고 폭주’ 대응…우선순위 정하자


8일 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집에서 숨진 일가족 3명은 신고 2시간46분 뒤에야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최초 신고는 8일 저녁 8시59분 경찰에 접수됐다. 갑작스런 폭우에 시민 신고가 폭주하면서 경찰은 첫 신고 접수 뒤 20분, 소방차는 47분이 지난 뒤 반지하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구조작업은 밤 11시45분에야 시작됐다. 현관문과 방범창을 뜯는 장비를 확보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50대 여성 역시 신고 접수 1시간 뒤에야 소방관이 현장에 출동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인접 지역에서 각종 폭우 관련 신고가 폭주해 현장 출동이 늦어졌다고 설명한다. 8일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서울지역 25개 소방서에 접수된 신고는 1만1600여건(중복 신고 포함)에 달한다. 소방당국은 4분의 1 정도인 2700여 현장에 출동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인명구조가 필요한 상황은 서울종합방제센터에서 처리하고, 인명구조와 상관없는 신고는 관할 소방서로 이첩하고 있다. 신고가 폭주한 데다 도로가 침수돼 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출동 매뉴얼부터 점검하자고 제안한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는 “비응급 상황의 경우는 119 이외 다른 번호로 나눠서 상담 전화를 걸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응급 상황인지 잘 판단해 인력과 장비 등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베테랑 소방관을 종합상황실에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찰 신고·출동 체계 정비도 필요하다. 신림동 반지하 침수 신고 당시 경찰은 긴급 신고(코드0)로 분류했는데도, 현장에 도착하는데 20분이나 걸렸다. 관할 지구대에 순찰차는 4대뿐이지만 8일 저녁 8시부터 불과 1시간30분 동안 68건의 폭우 관련 신고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이날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신림동을 관할하는 관악경찰서에 접수된 신고 192건 중 ‘코드0’으로 분류된 사건은 15건(7.8%)이었다. 경찰은 인력 부족 등으로 이미 다른 현장에 출동한 경찰을 도중에 코드0 현장으로 돌리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단순 침수 신고와 긴급 신고를 구분해 출동 우선순위를 정하는 매뉴얼 검토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현행 코드0 등 112 긴급 신고 체계는 강력범죄에 초점이 맞춰져 설계돼 있다. 재난 상황에서 현장 경찰관들이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지침이 마련되어야 한다. 신고 폭주 상황에서 소방과 이중 신고가 됐을 때 업무분담을 어떻게 할지도 지침 등으로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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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전 시민들이 폭우 피해로 천장이 무너진 서울 7호선 이수역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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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폭우 무방비 지하철역…차수판 먼저 높이자


이번 폭우로 서울과 수도권 지하철역은 거대한 물탱크가 됐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이수역에서는 천장에서 물이 새다가 아예 무너졌다. 9호선 동작역 등은 빗물이 계단을 통해 폭포처럼 내려와 역 자체가 침수됐다.

차수판(물막이판) 설치부터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지하철역 출구 차수판 설치는 의무 사항이 아니다. 이 때문에 저지대에 위치한 지하철역 중에는 차수판이 설치돼 있지 않은 곳도 있다. 이번에 침수된 동작역의 경우 9개 출입구 가운데 지대가 낮은 1곳에만 차수판이 비치돼 있었다. 그나마 차수판 높이도 30∼35cm에 불과해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빗물과 하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울교통공사는 “국토교통부 규칙에는 침수 방지 설비를 해야 한다는 정도만 규정돼 있다. 의무 사항은 아니라 현재는 저지대 등 취약한 출구 위주로만 설치되어 있다”고 했다.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는 ‘연면적 1만㎡ 이상 건축물을 건축할 때는 물막이판 등 침수를 방지할 수 있는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차수판 높이 등 규격, 설치 장소 등과 관련한 명확한 설치 기준은 없다. 이 때문에 지하철역마다 자체 판단으로 저지대 위주로 차수판을 비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밤에 단시간 쏟아진 폭우로 침수가 발생하지만 역 출구마다 차수판을 세울 인력도 부족하다. 출구가 9개에 달하는 동작역에는 침수 당시 역무원 2명만 근무하고 있었다. 이수역에도 역무원 2명과 사회복무요원 1명만 근무중이었다.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토목환경공학)는 “각 출구에 미리 기둥만 세워두고 잘 관리해두면 차수판은 금방 설치할 수 있다. 이것만 제대로 갖추고 적절한 인력을 동원해 빠르게 설치한다면 지하철역 침수 사태는 막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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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새벽 폭우로 다수의 차량이 침수된 서울 강남구 대치사거리의 배수구가 맨홀 뚜껑이 없어진 채 소용돌이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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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블랙홀’ 맨홀 뚜껑…안전그물 설치하자


8일 밤 서울 서초구에서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진 남매가 사고 지점에서 1㎞ 이상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남매가 맨홀에 빠질 당시 이미 무릎 높이 이상 물이 차오른 상태였다. 하수 역류로 맨홀 뚜껑이 튕겨 나간 상태였지만 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쇠(주철)로 만들어진 하수도 맨홀 뚜껑은 보통 무게가 40㎏가량 나간다. 평상시에는 뚜껑 열림 사고가 잘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비가 갑자기 내리면 하수관 내부에 빗물이 가득 차게 되고, 그 수압에 의해 맨홀 뚜껑이 튀어 오르기도 한다.

과거 폭우가 내릴 때마다 반복된 사고이지만 대책 마련은 더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폭우 시에도 맨홀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만, 현재 일부 맨홀에 설치된 뚜껑 잠금장치도 높은 수압을 견디지 못했다. 서초구 맨홀 역시 잠금장치가 있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맨홀 뚜껑 한쪽만이라도 고정해 완전한 이탈을 막거나, 맨홀에 구멍을 많이 내 맨홀에 가해지는 수압을 낮추는 방안도 제시한다. 장기적으로는 맨홀 주변 빗물 배수를 원활히 해 수압을 낮추는 배수 체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서울시는 하반기부터 맨홀 뚜껑 바로 아래 안전 그물 등 ‘맨홀 추락 방지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맨홀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관리체계 개선도 필요하다. 서울시는 매년 1회 이상 맨홀 상태를 점검하고는 있지만, 서울시에 하수도가 지나가는 맨홀만 25만개에 달한다. 상수도를 포함해 통신 가스시설 관련 맨홀까지 합하면 62만여개에 이른다. 모든 맨홀은 설치 목적에 따라 26개 기관이 각각 유지·관리를 담당한다. 기관당 2만4천개 맨홀을 관리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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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하수도 맨홀 뚜껑 열림 사고와 관련해 대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지난 12일 오후 부산 사상구 한 업체에서 직원이 추락방지 장치가 설치된 맨홀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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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지하 공간 방수대책 개선


반지하 주택과 지하주차장 등 지하 공간은 폭우에 특히 취약하다. 8일 밤 서초구에선 차량 상태를 확인하려 지하주차장에 들어갔던 40대 남성이 주차장으로 쏟아지는 빗물이 만들어낸 급류에 휩쓸렸다. 이 남성은 사흘 뒤 숨진 채 발견됐다. 이 건물엔 성인 허리높이 차수판이 설치돼 있었지만 갑자기 불어난 빗물은 차수판을 넘어 지하로 쏟아졌다.

지하주차장이 ‘거대한 하수구’ 역할을 하기에 한 번 빗물이 들이닥치면 대처가 쉽지 않다. 방재관리연구센터가 초고층 건축물 침수 대피 방안을 연구한 자료(2020년)를 보면, 지상의 침수 높이가 60㎝인 상황에서 지하 공간 수위는 5분40초 만에 75~90㎝에 도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차수판은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꼽힌다. 이번 폭우 상황에서 완벽히 침수를 막아 ‘노아의 방주’로 알려진 강남역 한 건물은 주차장 차수판을 1m 넘는 높이로 설치했다. 다만 모든 건물에 이같은 차수판을 설치하기란 기술적, 경제적으로 한계가 있다. 정부가 민간건물에 효과적인 차수판을 설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교수(소방방재학)는 “국가가 민간에 기술적 지원을 하거나 비용 지원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형 건물 지하주차장 출입구 주변 배수로 정비도 필요하다.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는 취약 계층은 평소 방수대책을 마련할 경제적 여유가 없다. 이들을 ‘표적 지원’ 할 수 있는 대책도 필요하다. 전국 각 시군구에선 저지대 주택의 침수방지시설(역류방지밸브·차수판 등)을 무상 설치해주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설치를 위해선 세입자의 경우 건물 소유주 동의가 필요하다. 설치 이후에는 유지·관리를 주민 스스로 해야 한다. 이영주 교수는 “모든 주택을 시가 관리해 줄 수는 없으니 저지대 주택 등 취약계층에만 한정해서라도 집중적인 관리 및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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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전 전날 내린 폭우로 서울 동작구의 한 빌라의 지하주차장에 차들이 빗물에 잠겨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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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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