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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동급생 사칭 '음란대화·욕설'... 新 '사이버 학폭' 온상 된 에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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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 사칭해 욕설, 성희롱 등 사이버 폭력
관심 받기 원하는 10대 심리 자극했지만
익명성 탓 집단따돌림 등 학교폭력 진원
한국일보

A양이 피해자를 사칭해 만든 계정에서 익명 이용자와 나눈 음란한 대화 내용. 피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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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이수아(13ㆍ가명)양은 지난달 친구의 제보를 받았다. 익명으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에스크(Asked)’에서 누군가 자신을 사칭해 음담패설을 일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계정을 확인한 이양은 너무 놀라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친구 말대로 사칭 계정은 이양의 이름과 다니는 학교를 내걸고 문란한 생활을 즐기는 것처럼 행동했다. 경악한 이양이 즉각 친구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자 계정은 활동을 멈췄다. 어머니 이모(41)씨도 화가 나긴 마찬가지였다. 물증만 없을 뿐, 범인으로 짚이는 동급생이 있었다.

이씨는 당장 에스크 측에 전화를 걸어 따지려고 했지만, 아무리 뒤져도 연락처를 찾을 수 없었다. 피해 내용을 상세히 적어 보낸 이메일에도 운영진은 한 달 넘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결국 이양 가족은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사칭 계정으로 음담패설... 청소년 호기심 자극


1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양천경찰서는 이달 4일 이양 사건을 접수해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양천서 관계자는 “정말 입에 담지도 못할 내용이 가득해 적극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크는 익명 기반 SNS다. 아이디, 비밀번호, 닉네임만 입력하면 가입할 수 있다. 명칭처럼 질문과 답변이 핵심 기능이다. 계정 주인에게 익명으로 질문을 보내면 주인이 답하는 식이다. 답변을 등록할 경우 질문과 답변 모두가 전체 공개되고, 답변을 하지 않으면 질문도 비공개된다.

한국 기업 모비온즈미디어가 운영하는 에스크는 최근 입소문을 타고 10대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16일 기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100만 회 이상 다운로드됐다.
한국일보

왼쪽 사진에 기자가 만든 한국일보 에스크 계정으로 익명 질문이 들어와 있다. 답변을 입력하면 가운데 사진처럼 질문과 답변이 전체 공개되고, 답변하지 않은 질문(오른쪽)은 계정 주인만 볼 수 있다. 대화가 공개돼도 답변자 닉네임만 노출돼 계정을 사칭한 범죄에 용이하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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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비결은 주목받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의 심리를 꿰뚫었기 때문. 서비스 자체는 익명이지만, 페이스북과 연동하면 친구들의 에스크 아이디와 닉네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구조를 잘 아는 10대들은 친구들끼리 익명 질문을 주고받는데, 시스템상 답변자의 닉네임은 공개되지만 질문자의 닉네임은 ‘익명’으로만 나타난다. 친구로 보이는 누군가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질문을 던져준다는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에스크 측도 “친구들에게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이야기를 물어볼 수 있고, 나에게 관심이 있는 친구들을 팔로어로 모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100% 익명, 학교폭력 조장... 운영사는 나몰라라

한국일보

사이버 폭력을 경험한 청소년 비율. 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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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100% 익명성을 보장하는 에스크 시스템 탓에 새로운 ‘사이버 학교폭력’의 온상이 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양 사건처럼 특정인을 사칭해 허위 사실을 퍼뜨릴 때도 있고, 괴롭힘 대상에게 집단적으로 욕설이나 성희롱을 퍼붓기도 한다. 올해 6월 대전의 17세 여학생 두 명은 2개월 동안 ‘너의 사진을 보면서 성적 행위를 하고 싶다’ ‘성매매 업소에 몸을 팔고 다니냐’ 등 각종 성희롱 메시지에 시달렸다. 같은 학교 학생의 범행이 의심돼 경찰에 신고했으나 역시 물증은 없는 상황이다.

에스크가 ‘사이버 불링(집단 따돌림)’의 진원지가 된 것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학교폭력예방단체 푸른나무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인터넷을 통해 괴롭힘을 당한 청소년 중 8.5%가 에스크에서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틱톡에 이은 4위였다. 지난해엔 5.2% 학생이 에스크를 지목했다.
한국일보

에스크를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모비온즈미디어 사무실에 폐쇄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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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지만 운영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약관에 언어폭력, 성희롱, 욕설은 신고 및 차단 대상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실제 제재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취재진은 모비온즈미디어의 입장을 듣기 위해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사무실에도 찾아갔으나 폐쇄된 상태였다. 학교폭력ㆍ성희롱 예방단체 탁틴내일의 이현숙 상임대표는 “1대 1 대화 메신저는 정부 감시망에서도 벗어나 있다”면서 “아이들에게 안전한 SNS 사용을 교육하는 등 예방 활동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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