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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규제 풀어 270만호’ 외쳤지만…집값 불안에 시행시기 ‘빈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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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 부동산 대책’ 뜯어보니

수도권 158만·비수도권 112만호…67% 민간공급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개편, 안전진단도 완화

국토부 관계자 “시장불안에 규제 뭉텅이 완화 부담

규제완화 방향 제시뒤 시행시점은 시장봐서 할 것”


한겨레

윤석열 정부가 첫 주택공급대책을 발표한 16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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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년부터 2027년까지 5년 동안 전국에 주택 270만호를 공급하기 위한 청사진을 내놨다. 그러나 신규 택지 개발 등 정부 주도의 공급 물량 목표치는 88만호에 그치고, 나머지 67%에 이르는 물량은 각종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에서 끌어낸다는 구상이라 불확실성이 크다. 무엇보다 최근 금리 인상으로 집값이 조정되는 국면에서, 정부가 가격 상승 요인이 될 규제 완화 카드를 대대적으로 꺼내드는 등 주택 정책의 목표와 전략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주택공급이라 쓰고 규제완화라 읽는 8·16 대책

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차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한 뒤 앞으로 5년 동안 수도권에서 158만호, 비수도권에서 112만호 주택을 새롭게 인허가하겠다는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제시한 목표 물량 270만호는 최근 5년(2018∼2022년)간 공급된 257만호(수도권 129만호·비수도권 128만호)에 견줘 13만호 많은 수준이다. 지난 정부 때 공급량에 견줘 대폭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윤석열 정부는 ‘수요가 많은 도심에 공급 집중’을 달라진 점으로 내세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기존 주택 공급의 한계는 한마디로 수요자 의견 무시, 공급자 중심 정책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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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주택 공급의 ‘수단’으로 정부는 각종 규제 완화를 제시했다. 우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개편해 부과금 부담을 낮추고 정비 사업의 ‘관문’인 안전진단 문턱을 낮출 계획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이 사업 주체가 됐던 도심복합사업(도심 고밀 개발)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며, 이때 민간 사업자에 공공사업자에만 주던 500% 안팎의 용적률과 세제 혜택이 제공된다. 정부는 “용적률 증가로 늘어나는 주택 절반은 공공임대·공공분양 등으로 기부채납 받고 필요하면 민간 사업자의 이익률에 상한을 두는 이익 상한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입자 등 원주민의 거주 안정을 해치지 않고 개발사업을 추진할 이주 대책 등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이밖에도 정부는 주택 공급이 부족한 지역에서 신규 공급을 촉진하기 위해 각종 건설 규제를 한꺼번에 푸는 ‘주택공급 촉진지역 제도’ 신설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집값 과열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지정해 수요를 억제하는 세금·금융 규제를 강화하는 것처럼, 공급 촉진 지역 또한 주택법이 정한 별도 위원회에서 행정구역 별로 지정해 용적률 등 규제완화 ‘패키지’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 목표·전략 충돌…시행시기·구체안은 불분명

이날 발표된 대책을 두고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의 목표와 세부 시행방안이 서로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원 장관은 이날 “주택 정책의 목표는 국민 주거안정”이라고 했고, 국토부는 “근본적 시장 안정 기반을 마련할 과제를 담았다”고 했다. 그러나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경제금융부동산학)는 “이번에 완화된 규제가 다음 정부나 그 다음 정부에서 투기 열풍이 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짚었다. “지금은 워낙 (집값) 하방 압력이 강해서 당분간은 집값이 오르지 않겠지만, 과거 이명박 정부 때 풀었던 각종 규제가 박근혜 정부 후반의 집값 상승세를 만들었던 것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집값 하락세가 뚜렷하고 미분양이 늘어나는 일부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반대로 이번 대책 발표가 집값 하락 속도를 키워 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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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가운데)이 주재하는 제2차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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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여러 규제 완화 대책의 ‘시행 시점’을 대체로 못박지 않은 것도, 정부 또한 ‘시장 재과열’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는 안전진단 개편 방안은 “향후 시장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한 뒤 연내”에, 주택공급 촉진지역 제도 도입은 “의견수렴 등을 거쳐 내년 1분기”에 구체적 제도 변화 폭과 시행 시점 등을 밝히겠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시장이 확실한 안정세로 접어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저런 규제를 한번에 푸는 것은 정부도 부담스럽다”며 “공약과 국정 과제에서 규제 완화를 내걸었기 때문에 방향은 제시했지만, 실제 시행시점은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올 하반기 바로 가시화하는 사업은 ‘윤석열 표 공공주택’인 청년원가·역세권 첫집 사업 정도다. 청년원가 주택과 역세권 첫집은 공공택지 개발과 도심 정비사업 용적률 상향으로 생기는 주택을 건설원가(시세의 70%) 수준으로 공급하는 공공주택이다. 정부는 두 공공분양 주택을 청년(19∼34살),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신혼 부부(결혼 7년 이내)에 공급할 계획이다. 다만 이들 가운데서도 소득이 노동자 월평균 소득의 140∼160% 이하여야 청약 신청 자격이 생긴다. 정부는 우선 올 하반기 고양창릉, 부천 대장, 남양주 왕숙 등에서 3천호 물량을 두고 사전청약을 시작하고, 5년에 걸쳐서 총 50만호를 공급할 계획이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는 “무주택자들은 자기 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집값이 하락할 때까지는 공공임대 물량 공급과 민간 임대차 시장 안정화가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집값 상승기에 커진 조급한 내 집 마련 욕망에 맞춰 고가의 주택 공급 방안에 초점을 뒀다”고 비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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