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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공만으로는 시원찮은 ‘주식 투자 성적표’…반등 준비물은 ‘확고한 자기 철학’[윤지호의 투자, 함께 고민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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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2022년 여름, 대학입시 학원도 고시 학원도 아닌 증권가에, ‘공부만이 살 길이다’란 슬로건이 떠돌고 있다. 그런데 무엇을 공부하란 말인가?

문득 떠오르는 지식은 회계와 경제, 그리고 성장산업 정도이다. “재무상태를 보고 그 회사의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오늘날 세계 최고의 부자들은 회계사일 것이다”라는 피터 린치의 농담이 떠오른다. 전보다 더 아는 것 같은데, 투자 성적은 시원찮다. 이유는 뭘까? 투자성공 여부는 어떤 순간순간 내리는 투자자의 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결정을 미루기보다 각자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독립적인 사고 틀을 갖고 있어야만 투자자로 생존할 수 있다.

누구나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지만 그리 쉽지 않다. 성공한 소수의 특징은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 각자 개성이 뚜렷하다는 정도가 이들을 하나로 묶을 뿐이다. 이를 대개 개개인이 지닌 ‘투자철학’으로 규정한다. 다모다란 교수의 <투자철학>은 투자를 할 때 각자의 철학이 필요함을 재조명해 준 책으로 유명하다. 투자철학이 바탕이 된 운용만이, 모든 투자자가 합리적으로 가정하는 기존 투자이론이 지닌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필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려 한다. 바로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되는 철학적 사고가 투자에 매우 유용하다는 시각이다.

현실에서 철학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학은 앞다퉈 철학과를 축소하고, 경영과 공학 비중을 늘린다. 한마디로 철학은 실제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괴짜들의 지적 유희 정도로 치부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투자세상에서 꼭 그렇지는 않다. 성공적인 투자자가 되기 위해 회계, 경제 그리고 신기술 관련 지식으로 기초 체력을 쌓는다면, 이는 멋진 타자가 되기 위해 러닝을 하고 웨이트 훈련을 하는 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기초 체력은 준비일 뿐이다. 위대한 타자가 되려면 자신만의 타격 폼을 갖춰야 하듯이 투자자도 자기에 맞는 추론능력을 갖춰야 한다. 철학은 이를 가능하게 한다.

대중에서 벗어나 남과 다르게 투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앙드레 코스탈리니는 부다페스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소로스는 런던정경대(LSE)에서 사사한 칼 포퍼의 철학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재귀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재귀성 이론을 통해 펀더멘털과 주가는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 존속변수의 관계일 뿐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신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도 다트머스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평소 그는 니체와 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 차용한 철학적 개념어를 활용하기로 유명하다.

위의 세 명이 낯설다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제로 투 원>의 저자 피터 틸을 떠올리기 바란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철학자 르네 지라르를 알게 되면서, ‘모방하기’라는 미메시스 개념을 투자와 연결했다. ‘모방욕망’은 현재 금융시장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유용한 사고틀이다. 지라르는 모방욕망이 전염됨을 강조했고, 이를 ‘모방전염’이라 지칭했다. 투자자에게 주는 시사점은 모방하고자 하는 욕망은 영원하지 않고, 과열되면 결국 어느 시점에서 모방욕망이 사라진다는 데 있다. ‘모방전염’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누구나 네이버 검책창이나 투자 토론방에 사고자 하는 종목명을 올려보지 않나? 지라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기’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다른 투자자가 먼저 원했기 때문에 나도 원한다는 것으로는 투자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중국집에 가서, 한 명이 짜장면을 시키면 ‘나도’, 다른 이가 짬뽕을 주문하면 ‘나도 짬뽕’을 외친다면, 그것은 내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에 불과하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볶음밥’이라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투자자라면 타인의 욕망이 맞물린 사이클에서 한 걸음 벗어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를 훈련해야 한다. 투자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묻고, 이해하는 과정이 있어야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이유를 모르고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무력감에 빠진 투자 성적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발점은 남이 아닌 내 안에 있다. 초라하게 우리를 떠난 철학적 사고가 투자자에게 다시 필요해진 이유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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