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8 (목)

흔들리며 피는 청춘, 빌리 아일리시 내한 공연 [쿡리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쿠키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4년 만에 한국에서 콘서트를 연 미국 가수 빌리 아일리시. 현대카드

음산한 목소리, 기괴한 몸짓, 불온한 표정. 지하 세계를 뚫고 온 자의 모습이 이럴까. 15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공연한 미국 가수 빌리 아일리시는 흔들리며 자기 자신을 피워내는 청춘의 표상 같았다. 노래 ‘베리 어 프렌드’(Bury a friend)에서 ‘나를 끝내고 싶다’(I wanna end me)고 읊조리던 20대 팝스타는 혼란과 방황을 거쳐 마침내 “여러분을 여러분답게 만들어주는 것들을 지지한다”는 메시지에 다다랐다.

2018년 첫 내한 이후 정확히 4년 만에 다시 여는 내한 공연이었다. 규모는 훨씬 커졌다. 4년 전 서울 광장동 예스24 라이브홀에서 2000명 남짓한 관객 앞에서 공연했던 아일리시는 이날 한국 최대 규모 실내 공연장인 고척 스카이돔을 매진시켰다. 공연을 주최한 현대카드에 따르면 공연 입장권 2만여장은 예매 시작 20분 만에 동났다. 아일리시는 “내 생애 첫 스타디움 공연”이라며 감격에 젖었다.

아일리시는 거침없이 달렸다. ‘베리 어 프렌드’로 막을 열더니 ‘아이 디든트 체인지 마이 넘버’(I Didn't Change My Number), ‘NDA’, ‘데어 포 아이 엠’(Therefore I Am)을 연달아 들려줬다. 선곡표는 지난해 7월 내놓은 정규 2집 수록곡으로 채웠다. 그래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을 휩쓴 정규 1집이 불안과 자기혐오로 점철됐다면, 2집에서 아일리시는 분노의 정점을 찍고 희망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이런 흐름은 공연에서도 도드라졌다. 아일리시는 공연 초반 거친 록 음악으로 분위기를 달구더니, 이후 ‘유어 파워’(Your Power) ‘겟팅 올더’(Getting Older) 등 발라드곡으로 관객의 마음을 감싸 안았다.

쿠키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빌리 아일리시. 현대카드

무대는 단출했다. 아일리시의 오빠이자 그의 음악 프로듀서인 피니즈 오코넬과 드럼 연주자 앤드류 마샬이 밴드 구성원 전부였다. 그런데도 허전하지 않았다. 두 연주자의 실력이 워낙 출중한데다가 대형 전광판과 경사진 무대, 조명과 레이저를 활용한 연출이 적재적소에 빛을 발해서다. 아일리시가 ‘NDA’를 부를 땐 무대가 황량한 도로로 변해 청춘의 격랑을 강조했다. ‘웬 더 파티스 오버’(When The Party’s Over)는 성스러웠다. 부드러운 아카펠라 속에서 아일리시의 목소리가 몽환적으로 울려 퍼졌고, 천장을 향해 수직으로 쏘아 오른 흰 조명은 따스한 느낌을 줬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노래에요. 의미도 남다르고요. 그런데 부르기가 어려워요. 그러니 잘 부르지 못해도 용서해주세요.” 아일리시는 이렇게 말하며 오코넬과 나란히 앉아 신곡 ‘더 써티스’(The 30th)를 불렀다. 아일리시가 공연에서 이 곡을 부른 건 지난 13일 필리핀 공연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한국 관객을 위한 이벤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로스트 커즈’(Lost Cause) 무대에서 어깨에 태극기를 둘러매 환호를 샀다. 광복절 맞춤 팬서비스였다. 빌리 아일리시 이름이 적힌 태극기를 애타게 흔드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쿠키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빌리 아일리시. 현대카드

공연 마지막은 공전의 히트곡 ‘배드 가이’(Bad Guy)와 정규 2집 타이틀곡 ‘해피어 댄 에버’(Happier Than Ever)가 장식했다. 익숙한 리듬이 공연장에 울려 퍼지자 흥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시작부터 선 채로 공연을 즐기던 1층 관객들은 물론이고, 위치가 높기로 악명이 자자한 4층 객석 관객들까지 제자리에서 뜀박질했다. 아일리시는 80분 내내 “마음껏 소리 지르고 춤추자”고 외쳤다. 공연 말미에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 여러분의 삶을 여러분답게 만들어주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다”는 응원 섞인 인사도 남겼다.

이번 공연은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시리즈로 성사됐다. 애초 아일리시는 2년 전 한국에서 공연을 열 계획이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발생해 일정이 미뤄졌다. 현대카드는 코로나19 재확산을 맞기 위해 모든 관객의 체온을 재고, 이상이 있을 경우 자가진단키트로 검사하게 했다. 스태프들도 당일 자가진단키트에서 음성 반응을 확인하고 공연에 참여했다고 현대카드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