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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의심거래' 모호한 기준, 억울한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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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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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모습.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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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해외송금 거래가 8조5000억원으로 늘어난 가운데 금융권에서 자금세탁행위 의심거래 보고(STR) 의무 준수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애매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은행이 '합당한 근거'를 들어 정부에 보고해야 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보고의 적정성'을 기준으로 관련 은행에 대한 징계를 고려한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법적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15일 법조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대구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부는 최근 우리은행의 한 지점에서 약 4000억원을 해외로 송금한 A사 관계자 3명을 특정금융거래정보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과 외환 관리법 위반 혐의로 지난 10일 구속했다. 검찰은 해외에서 싸게 산 코인(가상자산)을 국내에 비싸게 팔아 시세 차익을 올리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활용한 '코인 환치기'를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연초 금융정보분석원(FIU)로부터 A사 관련 이상거래 내역을 제공받았다. 이에 앞서 우리은행은 A사 관련 해외 송금 건을 의심거래라고 판단해 FIU 보고했다고 한다. 특금법은 은행이 이상거래 정황을 발견하면 FIU에 즉시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지점의 보고는 본점 확인을 거쳐 FIU에 전달되고, FIU는 이상거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검찰 등 관계기관에 이를 공유한다.

우리은행이 이상거래 내역을 FIU에 선제적으로 보고했지만 금융당국은 보고의 적정성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의심거래로 당연히 보고했어야 하는 송금 건에 대해 빠짐없이 보고했는지도 점검 대상이지만 그 내용이 충실한지가 더 중요하다"며 "은행 보고가 부실했다면 FIU가 주요 의심거래를 골라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특금법은 은행 등 금융사가 자금세탁행위가 의심되는 거래를 FIU에 보고할 때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특금법 제 4조 1항과 3항은 '금융거래 상대방이 자금세탁행위 등을 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금융사는 FIU에 보고해야 하며 그 합당한 근거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금융권에선 '합당한 근거'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코인과 관련한 자금세탁 정황의 경우 은행이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금세탁행위의 수단과 방법이 수시로 변하고 있는데 수사기관이 아닌 은행이 객관적인 기준에 따른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는 게 애초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구속된 A사 관계자들도 은행에 허위 증빙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세탁행위 의심거래를 적발할 수 있는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금은 개별은행이 자체적인 기준에 따라 이상 정황을 판단하고 있어 자금세탁방지 실효성이 떨어지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정확히 따지기도 어렵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객 확인 의무(CDD)나 고액 현금 거래 보고 의무(CTR) 수준으로 금융사가 반드시 체크해야 하는 사항들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자금세탁행위 의심거래 여부 판단에서 '합당한 근거'의 기준이 모호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은 각각 고객 특성 등에 맞게 마련한 자체 STR 추출 룰(Rule)에 따라 의심거래 보고를 한다"며 "개별 룰에 따른 판단 근거를 충실히 적었다면 합당한 근거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추출 룰 자체에 문제가 있을 경우도 배제하진 않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은행들이 최근 금융거래 동향을 반영해 룰을 업그레이드 했는지 등 룰 자체의 적정성을 들여다 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상준 기자 award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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