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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선의 인물과 식물] 폴 시냐크와 우산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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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온통 장안의 화제다. 사건의 결과보다 과정과 인물의 배경에 초점을 맞춘 특성 때문일까. 그 인기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 20여개국에서 넷플릭스 1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우영우 신드롬이 엉뚱한(?) 곳으로까지 번져 나갔다. 극 중 등장한 ‘소덕동 당산나무’는 경남 창원에 실재하는 팽나무인데, 연일 관람객들이 몰려 인증샷을 찍으며 야단법석이다. 갑작스러운 관심에 주민들은 반가워하면서도 혹시 팽나무 생육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뭔가 유명하다고 하면 바로 몰려가 북새통을 떨다가 결딴내기 일쑤인 우리 행태를 돌아보면 괜한 걱정만은 아니다.

100여년 전, ‘우영우 팽나무’와 흡사한 사례가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가생에서 벌어졌다. 이 마을에는 수형이 멋진 우산소나무가 도로변에 있었는데,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 르피가로 등에 실리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1888년 프랑스 원예학회에서는 높이 16m에 몸통 둘레 6m나 되는 이 소나무가 매우 건강하고, 나이는 350~400년이나 된다고 추정했다. 1911년에는 지역 관련 학회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 우산소나무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폴 시냐크 덕분이다. 그는 점묘법의 창시자 조르주 쇠라와 함께 신인상주의의 대표로 활동했던 화가였다. 이 소나무에 매료된 그는 소나무를 화폭에 담았다. 주황색, 보라색, 초록색의 점을 섞어 모자이크처럼 묘사한 소나무는 노을에 붉게 타오르는 듯, 화려하고 웅장한 아우라를 내뿜는다. 당시 화단의 주목을 받던 시냐크의 작품이었으므로 실물을 궁금해하던 사람들은 소나무를 보려고 작은 시골 마을로 몰려갔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나무 주변에 자동차까지 붐비면서 지반 침하로 인해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하다가 1924년 끝내 세상을 떠났다. 과도한 답압에 못 이겨 나무가 질식사한 것이다. 본격적인 유명세를 치른 이후 십여년 만의 인재로, 나무를 사랑한 사람이 결국 나무를 죽인 꼴이 되었으니….

지금 창원의 ‘우영우 팽나무’가 ‘폴 시냐크의 우산소나무’와 같은 운명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 마을에서 ‘아이고, 절딴났네, 절딴났어!’하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과유불급이라! 지나친 관심과 사랑은 오히려 무관심만 못하니, 사람이나 나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가생의 우산소나무는 현재 모스크바 푸시킨 박물관에서 시냐크의 작품으로만 만날 수 있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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