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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대만이 갖고 싶어 했던 한국의 사드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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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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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얘기는 아니지만 대만(臺灣)은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자 이를 부러워했다. 대만의 한 관계자는 한국이 미국한테 잘 말해서 대만에도 사드가 배치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도 했다. 덧붙인 그의 한마디는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니까, 사드도 주네."

한국 안에서는 굴곡진 현대사로 인해 한미동맹에 대해서 논쟁이 있고 사드 배치에 대해서 격렬한 찬반 시위도 있었지만, 한국 바깥에서 보는 사드에 대한 시각은 이처럼 사뭇 다를 수 있다. 더불어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몇 안 되는 정식 동맹 (pact ally)이란 점은 한국 바깥에서 총 20년 넘게 관찰한 경험에 의하면 확실한 프리미엄이다. 이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11년을 베이징에서 살았는데 중국은 한미동맹을 무척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중국인들의 생리를 아는 사람은 이 감정의 성격이 '질투'라는 것을 안다. 역사상 중국과 가장 가까웠던 조공국이 지금은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와 '1촌 관계'를 맺고 있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도 있다. 조선 후기 한반도 지식인들은 중국이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심지어 자신을 'Little China'(소중화·小中華)라고 칭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던가.

베이징 체류시 한 번은 한·중 세미나가 열렸다. 그날 따라 논쟁이 조금 뜨거웠다. 한 중국학자는 저녁 만찬 중 화장실에서 만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희 한국, 주한미군 철수하면 한 번 손 좀 봐줘야겠다." 취기에 나온 말이겠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주한미군 때문에 중국이 한국을 손봐주지 못하고 있다는 함의도 담고 있다.

한국 내에선 좌·우 진영의 대립과 중국과의 경제 관계, 미·중 갈등의 향후 불확실성 등으로 사드에 대해서도 논쟁이 잔존하지만, 자고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이라면 분명 가치가 있는 것일 테다. 남들이 포기하라고 종용할 때 그것을 부담으로 여기기보다는 이것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관한 생각의 전환도 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정부는 2017년 10월 30일 '사드 3불'에 대해 한국이 '약속'(承诺)했다고 했다가 10월 31일에는 입장 '표명'(表態)으로 바꾸었다. 이번 칭다오(青島)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사드 문제가 한중 관계 발전의 핵심현안으로 재확인되었다. '3불 1한' 표현 관련해서 8월 10일 '선서'(宣誓)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한국에서 강렬한 반발이 일자 11일에는 '공포하다'라는 뜻의 '선시'(宣示)로 바꿨다. 표현 수위를 조정한 것뿐이다. 중국의 기본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중국의 사드 몽니는 대국답지 못한 치졸한 모습이지만 한국의 전임 정부가 빌미를 준 측면은 통렬히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사드를 배치하고 나서도 1년 반에 걸쳐서 좌고우면한 모습, 중국에 준 무수한 혼동된 시그널은 중국 정부가 애초에 계산한 '짧은 보복 후 관계 정상화' 기회의 상실로 이어졌고, 지난 정부가 그토록 바랐던 시진핑 주석 방한의 동력 상실로 이어졌다.

한국이 사드를 철수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중국이 이 문제에 집요성을 보이는 것은 사드가 한국 압박용으로 유용한 카드임을 지난 한국 정부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는 반도체 공급망 문제 등 기타 현안에서 한국의 양보를 끌어내려는 압박 지렛대로 작동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한국일보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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