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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30년간 1위 자산부국’ 일본, 경상수지 적자국에 빠져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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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완의 경제판독]

‘수출대국’ ‘대외자산 부자’ 일본

42년만에 연간 경상수지 적자 우려

지난해말부터 월간 경상적자 빈번

무역수지, 10개월 연속 적자 행렬

3500조 해외자산 이자·배당 흑자도

더는 무역수지 적자 상쇄 어려워져

‘아베노믹스’ 10년의 또다른 이면?

“엔화약세-경상수지악화, 상호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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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9일 일본 동북부 지방에 내린 폭우로 아오모리현 아지가사와 마을의 교차로에서 차들이 물에 반쯤 잠겨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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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4위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산출하는 전통적 ‘수출 대국’이고 지난 30년간 세계 1위의 대외순자산(자산-부채) 경제인 일본이 올해, 42년 만에 연간 경상수지 적자를 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엔화 급락세와 수입 원자재가격 급등 속에 무역수지 적자 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간 경상수지 흑자를 이끌어온 대외순자산부문의 ‘1차 소득수지’ 계정(해외 수취 이자·배당) 흑자로도 무역수지 적자를 상쇄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이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국가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까지 대두되고 있다. 경상수지는 국가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다.

일본 재무성이 지난 8일 발표한 국제수지 동향을 보면, 올 상반기 일본 경상수지는 3조5057억엔 흑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63.1% 급감했는데, 상반기 기준으로 2014년 이래 가장 작은 흑자규모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엔화 가치 급락세와 함께 경상수지 적자 우려가 최대 경제 이슈로 떠올라 왔다. 월간 기준으로 일본 경상수지는 지난해 말부터 빈번하게 소폭 적자를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3천억엔)에 이어 지난 1월(-1조2천억엔)에 적자를 냈고, 지난 6월 또다시 1324억엔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국제원자재가격 상승 등으로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 폭이 확대되면서 간혹 월간 경상수지 적자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상수지 계정은 무역수지에다 외국과의 투자거래를 나타내는 ‘1차 소득수지’(이자·배당 소득 등 본원소득수지) 및 서비스수지(해외 운송운임 및 여행 등)로 구성된다.

연간으로 일본의 경상수지(흑자 최고치는 2010년 2208억8천만달러)는 1981년 이후 41년간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2021년(회계년도 2021년 4월~2022년 3월) 경상수지는 12조6442억엔 흑자였으나 2020년에 견줘 흑자 폭이 22.3%(3조6231억엔) 줄었다. 2017년(2031억6천만달러) 이후 흑자규모는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다만 한국과 비교하면 경상수지 흑자액이 아직 더 많다. 지난해 연간 경상수지 흑자액은 달러 기준으로 일본(1424억9천만달러)이 한국(883억달러)보다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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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상수지 추이. 자료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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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수지 축소를 초래하는 요인으로는 수출입 무역수지(통관 기준)에서의 대규모 적자가 꼽힌다. 지난해 연간 일본 무역수지(-1조6507억엔)는 7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8월 적자로 전환된 이후 지난 6월(-1조1140억엔)까지 10개월 연속 적자를 보이면서 올 상반기에도 7조9241조엔 적자(수출 45조9천378조엔, 수입은 53조8천619조엔)를 냈다.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무역적자다. 엔화 가치가 2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데다 주요 수입품인 원유·천연가스·식량 가격이 급등해 무역수지 적자를 키웠다. 일본 제조업은 1990년대 초 일본경제 거품이 붕괴하면서 수출경쟁력이 점차 쇠퇴했고, 이에 따라 2010년대부터 무역적자를 내는 해가 많아졌다.

그동안 무역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해 온 비결은 지난 30년 내내 ‘세계 1위 자산부국’ 일본을 상징하는 2020년 기준 357조엔(약 3503조)에 이르는 대외부문 순자산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각국 대외부문 보고서를 보면 일본의 순대외투자자산은 달러 기준으로 2021년에 3조7480억달러(약 4889조원·일본 국내총생산의 75.9%)로, 한국(6600억달러·국내총생산의 36.4%)보다 훨씬 많다. 이 순자산으로 벌어들이는 해외 이자·배당금 등 ‘1차 소득수지’(본원소득수지)로 경상 흑자를 이끌고 있다.

일본은 거품 붕괴 전까지 30년 넘게 이어진 무역흑자를 기반으로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부동산·증권을 사들이는 등 거대한 직간접 투자행렬에 나섰는데, 2010년대부터 이 막대한 해외 투자자산에서 꾸준히 나오는 이자와 배당 소득으로 무역적자를 상쇄하는 특유의 국제수지 구조를 띠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일본 무역수지가 7년 만에 적자를 냈음에도 경상수지 흑자를 낸 것도 1차 소득수지 흑자(21조5883억엔)가 2020년 대비 14.7% 증가한 덕분이다. 일본의 1차 소득수지는 연간 약 20조엔에 달한다.

그러나 올해 들어 가파른 엔화 가치 하락과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현상이 겹치면서 무역적자 규모가 1차 소득수지로도 상쇄할 수 없는 수준이 되면서 경상수지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경제 전문가들은 올해 일본 경상수지가 1980년 이후 42년 만에 적자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닛케이>(일본경제신문)는 자체 분석 결과 올해 달러당 엔화 환율이 평균 120엔,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일 경우 일본의 경상수지가 -9조8000억엔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경상수지 적자 위기는 정책적으로 엔화 가치 약세를 꾀해온 이른바 ‘아베노믹스’ 10년의 또 다른 이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013년 3월 일본은행 총재에 취임한 구로다 하루히코는 아베노믹스를 지휘해왔는데,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일본 제품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고 양적 통화완화로 소비·투자를 활성화하면서 동시에 국내 물가상승률을 2%로 끌어올려 20여년 동안 일본경제를 괴롭혀온 디플레이션을 종식시키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엔화는 글로벌 경제위기 때마다 미 달러화와 함께 대표 안전자산으로 여겨져 통화가치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여왔으나, 올해 들어서는 양상이 일변하면서 폭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4월 중순에 20년 만에 달러당 128엔을 웃돌았고, 이른바 ‘구로다 라인’으로 불리는 지지선(124엔)을 넘어섰다. 지난 7월 한달간 달러당 엔화 환율은 평균 136.7엔으로 더 치솟아 2021년 연간 평균환율(109.9엔)보다 30엔 가까이 가치가 떨어졌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 외환위기가 휩쓸었던 1998년 당시(연평균 달러당 130.7엔)보다 더 약세다.

한국은행 도쿄사무소는 최근 엔화 약세 흐름에 대해 “(아베노믹스에서) 엔화 약세가 일본제품 수출 확대를 이끈다는 인식이 장기간 지속돼왔으나, 일본 제조기업의 해외 현지화 전략이 늘고 일본 경제에서 서비스업 비중이 확대되고 또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도 증가하는 등 경제 여건이 바뀌면서 최근 들어서는 엔화 약세가 주로 수입물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엔화 약세가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악화를 초래하고, 경상수지 적자 우려가 다시 엔화 약세를 증폭시키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는 얘기다. 유비에스(UBS)증권 아오키 다이주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일본은 앞으로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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