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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우영우' 양쯔강 돌고래 같은 변호사, 여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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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세연 기자] [편집자주] 젊은 변호사들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분야와 위치에서 MZ세대 변호사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얘기를 전합니다.

[[MZ 변호사가 온다] 법무법인 지향 신유정 변호사]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배우 박은빈)는 인권 변호사 류재숙(배우 이봉련)을 '양쯔강 돌고래'에 비유한다. 양쯔강 돌고래는 바다가 아닌 중국 양쯔강에 살다가 2006년 멸종했다. 대형 로펌 변호사로 사회적 강자를 변호하는 자신과 다르게 기꺼이 인권의 편에 서는 희귀한 변호사를 비유한 표현이다. 여기 양쯔강 돌고래 같은 변호사가 있다.

신유정 변호사(31·법무법인 지향)는 기업이 인권 존중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법적 자문을 제공한다. 직장 내 성희롱, 갑질, 환경오염 등에 대해 기업과 함께 고민한다. 고 노회찬 의원실과 법무부 인권정책과를 거치며 대기업부터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인권 친화적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란 표현이 생소한 시기부터 '기업과 인권 길라잡이'란 경영지침본을 만들었다. 석유화학기업은 그에게 환경 친화적 경영 전략을 자문했다. 그는 해외에 진출한 중소기업의 해외 노동자 인권을 위해 지침을 마련하고 공공기관 내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 등에 대한 자문에 응했다. 현재는 인권경영 실무자를 대상으로 강사활동을 하고 있다.

머니투데이와 만난 신 변호사는"인권 감수성이 있는 변호사들이 많이 생기려면 결국 시장이 생겨야 한다"며 "후배들이 사회적으로 기여하면서도 본인 역시 지속 가능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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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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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굳이 계기를 찾자면 동네 복지관에 제 교육을 일임한 어머니 덕분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예전부터 사교육에 관심이 없으셔서 저를 동네 복지관에 보내셨습니다. 그곳에서 장애인, 한부모 가정, 빈곤 노인들을 이웃으로 접하고 살았고 그러다 보니 인권에 관심 많은 사람이 된 듯합니다.

로스쿨에서 국제인권법이란 강의를 들었는데, 변호사가 인권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다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동성혼 헌법소원과 같은 기획소송을 하는 역할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국제기구에 호소하거나 입법을 통해 정책을 만드는 다양한 역할을 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기업의 ESG 경영을 위해 자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변호사가 된 후엔 노회찬 의원실로 향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셨나요.

▶주로 의원님을 도와 법률안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원래 정치나 국회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닌데, 공익 인권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의원님이 평소 공익 인권에 관심이 많으셨으니까요.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 현실적인 부분과 통과 가능성을 검토하고 실제로 발의했습니다. 이외에도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극악무도한 일부 판사들의 사례를 모아서 국정감사장에서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의원실에서 1년 반 정도 근무했는데, 많은 걸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학부 때 정치외교학과 행정학과를 전공하고 로스쿨에서는 법학을 공부했으니 '제도'를 형식적,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원실에선 제도가 생동하는 동적 과정을 봤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 변호사 일을 할 때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대해 자문을 하고 계시는데 어떤 일인지 설명해주세요.

▶공공기관은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정부가 수용하면서 2019년부터 경영평가에 인권경영 항목을 추가했습니다. 그런데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내부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또 중요한 사업의 인권영향평가를 할 때 어떻게 해야할지 정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인권침해 사건부터 크게는 인권경영 계획 전반에 대한 법적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ESG 경영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요.

▶아직 우리나라에선 공공기관의 ESG 경영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상태입니다. 인권영향평가는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서 평가하는데, '이 사업에 강제 노동이 있나요'와 같은 질문입니다. 항목 자체가 추상적이라 기관 각자의 사정에 맞게 고쳐야 합니다. 제가 자문에 응하고 있는 한국어촌어항공단은 외국인 노동자들 관련 항목을 추가하는 식으로 항목을 특화해야 합니다.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기 때문에 제 역할은 인권영향평가를 잘할 수 있도록 체크 리스트 항목의 수정 방향을 조언해드리는 정도입니다. 앞으로 공공기관이 이해관계자나 지역주민, 노동조합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실제 어떤 인권침해 위험이 있는지 파악해서 실제적인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직업적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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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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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 기업에도 자문에 응한 경험이 있으십니다.

▶법무부 인권정책과에서 민간기업을 위한 인권경영 지침을 마련했습니다. 당시엔 ESG 경영이란 개념도 익숙하지 않은 시기라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선 인권이란 개념이 어렵게 느껴졌을 겁니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인권경영에 대해 어떤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게 2018년 4월 기업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기업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너희 반도체에 아동을 착취해 생산된 광물이 들어갔는지 증명하라'는 요구받았다고요. 기업들도 생각보다 관심이 많았던 터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후엔 법무법인 지평의 ESG 센터에서 석유화학기업, 제조업 등에 자문에 응하기도 했습니다.

-중소기업의 인권경영은 더욱 어려울 것 같은데요.

▶법무부에서 동남아시아 진출기업의 인권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힘썼던 경험이 생각납니다. 우리 기업의 해외 공장에서 임금체불부터 파업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까지 다양한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동남아 진출기업은 대부분 소규모 섬유·제조업 기업이라 돈과 인적 자원이 부족합니다. 중소기업의 인권경영은 해외 노동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결국 현지에서 계속 사업을 할 수 있는가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아직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많지만 나아지고 있는 추세인 건 사실입니다. 우리 기업이 해외 노동자들의 인권을 해치지 않게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저와 같은 조력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중소기업의 ESG 경영 자문을 더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기업은 인권을 대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인권을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회사 경영의 측면에서 인권이란 촘촘한 운영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구멍을 막는 식으로 대응해선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떤 위험이 있는지 미리 감지하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야 합니다. 촘촘한 거름망을 만든다는 태도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기업들도 분명히 가렵고 답답한 부분이 있거든요. 그럴 때 중간자적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게 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겠네요. 지치지는 않나요.

▶ESG 경영 자문에 응하는 일 외에도 많은 일들을 합니다. 어제도 법정에 나가 증언해야 하는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를 만나고 왔어요. 이런 일을 하는 게 재밌다고 말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을 돕는 일이든 기업을 돕는 일이든 구체적인 일을 하니 제가 도움이 된다고 느낍니다. 그럴 때 직업적인 효능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사각지대를 찾아다니시는 것 같아요

▶ 전 지금도 시장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인권 감수성이 있는 변호사들이 많이 생기려면 결국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 생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익 인권 지향을 가진 변호사들이 많아져야 기업이 변하고 생태계가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후배들이 사회적으로 기여하면서도 본인 역시 지속 가능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시장을 개척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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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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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연 기자 2count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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