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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끊임없는 전세사기에도 임차인 보호 못하는 임대차법… “구멍 메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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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 상한제) 손질이 임박한 가운데 주택임대차보호법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차인이 아무리 조심해도 제도상 허점 때문에 당할 수 밖에 없는 전세사기가 반복되는 등 문제가 많은데 법 개정은 하세월인 경우가 많아서다.

조선비즈

8월 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빌라 밀집지역의 모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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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임대인 미납세금에 임차인이 날린 전세보증금만 122억

집주인이 밀린 세금에 임차인이 피해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캠코는 임대인의 세금(국세·지방세), 공과금 체납 시 압류된 주택 등 소유 재산을 공매 처분해 체납 세액을 회수한다. 이때 세금은 보증금 등 다른 채권보다 우선 변제한다. 즉 주택을 처분한 금액으로도 임대인이 밀린 세금을 충당하지 못할 경우에는 임차인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미납 세금 공매에 따른 임차보증금 미회수 내역’에 따르면 올해 1~7월 임대인의 세금 미납으로 임차인이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은 122억 1600만원(101건)이었다. 금액 기준으로는 이미 지난해 연간 피해 보증금 93억6600만원(143건)을 웃돌았다.

임차인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전세계약을 체결할 때 임대인의 국세 완납을 확인하는 것이다. 지금도 임차인은 국세청의 ‘미납국세열람제도’를 활용해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임대인 동의 없이는 열람이 불가능하다. 개인정보 보호법과 상충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과 국세징수법에는 “임차인은 임대인의 미납 국세·지방세, 확정일자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실상 무용지물인 셈이다.

이에 부동산 업계에서는 임대차 계약시 임대인의 세금완납증명서를 첨부하거나 중개사를 통해 세금 체납여부를 확인하게 하는 등의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임대인에게 국세완납 증명서를 떼달라고 하면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는데, 전월세 계약을 할 때 국세완납증면서를 필수서류로 지정하면, 서류구비를 요구하는 사람도 부담스럽지 않다”고 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전세계약을 맺을 때 임대인의 세금 완납 여부를 공인중개사가 반드시 확인하게 하는 등 구비서류와 절차에 강제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② “좋은 값에 판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반값에 내 집 팔았다”

확정일자의 효력이 전입신고 다음 날부터 발생하는 것도 아직 시정되지 않았다. 2020년 3월 서울 반포 일대 공인중개업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발생하고 개정안까지 발의됐으나 유야무야 폐기된 것이다.

이 사건은 2020년 3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면적 59㎡ 주택이 23억원에 매도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시세는 21억. 하지만 매수자는 매도자가 2년간 12억5000만원에 전세를 살아주는 조건으로 매매를 진행했다. 매도자가 집을 팔고 전세살이를 시작하면서 전입신고에 확정일자까지 받았지만 결국 전세사기의 대상이 된 것은 효력 날짜 때문이다.

매수자는 등기를 변경하면서 대부업체로부터 25억8000만원에 근저당을 설정했다. 임대인의 변경 또는 근저당권 설정은 등기를 접수한 때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반면 확정일자는 대항력이 당일이 아닌 그 다음날 0시부터 발생한다. 현재 일선 공인중개업소에서는 ‘임대인은 계약기간 동안 근저당 없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등의 특약을 넣어 사고를 예방하고 있지만, 일단 사고가 발행하면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해결책은 지자체와 법원간 시스템 통합으로 선후관계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시스템부터 마련하는 것이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저당권설정 등 등기는 법원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는 지자체가 각자 관리하고 있고 둘 중 선후관계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시스템이 구비되어있지 않아 생기는 문제”라면서 “관련 시스템을 구비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고 전입신고 시간부터 효력이 발생하게끔 법을 마련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③ 나도 모르는 새 집주인이 바뀌었다… 오피스텔 전세사기 주의보

임차인 모르게 임대인이 바뀌면서 임차인이 실질적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임차인은 전세로 계약을 했는데, 임대인이 바뀌면서 각종 서류가 월세 계약으로 뒤바뀌는 경우다.

이런 경우 임차인은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했어도 제 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집주인이 변경됐을 때 새 집주인이 계약서에 세입자 승계내용을 명시하지 않으면 생기는 일이다.

엄연한 사문서 위조라 법적 절차를 밟으면 되지만, 구제받을 길은 요원한 것이 사실이다. 임차인이 받아야 할 스트레스에 비해 공문서 위조를 감행한 임대인이 받는 죄값도 크지 않은 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최근 공문서 변조, 변조 공문서 행사,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 사문서 행사 혐의를 받는 A씨(54)에게 징역 6개월의 선고가 나왔다. A씨는 전세를 준 오피스텔을 마치 월세 계약을 한 것처럼 관련 서류를 위조한 뒤 오피스텔을 담보로 대부업체로부터 7000만원을 대출받아 가로챘다. A씨는 동종 범죄전력이 5회나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범행을 반복했고, 이날 판결에도 항소를 결정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교수는 “임대인이 바뀔 때 임차인이 반드시 참관해서 계약내용을 고지받고 전세보증보험 승계도 이뤄질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수 있다”면서 “임대차 3법 같이 부작용이 큰 법을 일시에 만들어 혼란을 줄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구멍부터 잘 메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연지연 기자(actres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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