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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노동운동가→공안경찰…'밀정 의혹' 휩싸인 초대 경찰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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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동료 "김순호 잠적 전후로 줄줄이 잡혀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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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경찰국장인 김순호 치안감의 이른바 '프락치 의혹'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 국장은 "프레임 씌우기"라고 반박했지만, 당시 활동가들의 증언과 정황에 비춰 해명이 석연찮다는 지적이 나온다./이동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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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김이현 기자] 초대 경찰국장인 김순호 치안감의 이른바 '프락치 의혹'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 국장은 "프레임 씌우기"라고 반박했지만, 당시 활동가들의 증언과 정황에 비춰 해명이 석연찮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균관대 민주동문회,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민족민주열사 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등은 12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주화 운동 동지들을 배신하고 밀고한 자를 경찰국장에 임명한 것에 참담한 심경"이라며 "김 국장의 사퇴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기억하는 김 국장은, 1980년대 노동운동을 이끌던 활동가였다. 그는 1983년 초 성균관대 운동권 동아리인 ‘심산연구회’에 가입했고, 그해 4월 녹화공작 대상자로 강제 징집됐다. 녹화공작은 보안사가 민주화운동 학생들을 군에 징집한 뒤 교내 동향 등을 수집하도록 강요한 일이다.

김 국장은 1985년 7월 부천지역 공장에 위장취업해 노동운동을 이어갔다. 이후 1988년 논란의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 가입했고, 그해 말 인노회 부천지부지역장을 맡았다.

그러다 김 국장은 1989년 4월 돌연 자취를 감췄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을 전후해 인노회에 대한 경찰 수사가 전방위로 시작됐다. 김 국장이 사라진 그해 4월엔 선배 최동, 김 국장의 친구 등 관련자 18명이 연행됐고 그중 15명이 구속됐다. 이에 인노회는 공중분해 됐다.

네 달 뒤 김 국장은 경찰 제복을 입었다. 연락이 두절됐다가 1989년 8월 ‘대공 특별채용’으로 경찰이 된 것이다. 인노회 수사를 담당하는 대공수사3과에서 업무를 시작한 그는 1990년 ‘범인검거 유공’을 사유로 치안본부장상, 1995년 ‘보안업무 유공’으로 대통령상 등 총 7차례 상훈을 받았다. 경장 채용 뒤 4년8개월 만에 경위, 22년 만에 총경으로 고속 승진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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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민주동문회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경찰국 앞에서 김순호 경찰국장의 사퇴와 피해자 사죄를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박헌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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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노회는 ‘밀고설’을 제기했다. 당시 같이 활동했던 A씨는 "김순호가 4월에 잠적한 전후로 줄줄이 다 잡혀갔다"며 "나는 진술을 거부하고 있었는데, 경찰은 속속 꿰뚫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조직도 등 세부자료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대학은 다르지만 같은 시기 인천지역에서 활동했던 B씨는 "경찰이 3일간 불법 구금하면서 잠을 안 재우고, 폭행을 일삼았다"며 "당시 연행된 18명 중 나도 포함됐었는데, 지역책인 김순호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후 최동 열사 추모제에 모습을 한 번 안 보이면서 강한 의혹이 확신으로 변했다"고 했다.

김 국장과 막역했던 최 열사는 1989년 구속돼 경찰의 고문을 받고, 후유증을 앓다 이듬해 8월 분신했다. 지난 7일에도 경기도 이천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서 최동 열사 제32주기 추모제가 열렸지만, 김 국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최 열사의 여동생 최순희 씨는 "김순호 뒤를 봐준 홍승상(당시 내무부 치안본부 경감)은 동대문경찰서에서 근무할 때부터 오빠를 감찰했던 사람"이라며 "1989년 4월 (오빠가) 홍제동 치안본부에 불법 연행된 지 며칠 만에 면회를 했고 거기에 홍승상이 있었다"고 말했다.

홍 전 경감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말을 지어낸 남영동 대공분실의 장본인이다. 홍 전 경감은 최근 TV조선 인터뷰에서 "인노회 사건 당시 김 국장에게 수사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김 국장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지난 11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억측으로 구성된 소설같은 소리"라며 "그 당시 4월에 주사파로부터 단절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프락치) 프레임을 씌운 분들이 그걸 입증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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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국장은 특채 당시 운동권 활동을 형사면책 받은 과정, 홍 전 경감이 언급한 ‘도움’ 등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이동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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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명이 석연찮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관련자들이 대규모 경찰에 연행됐지만 김 국장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점, 특채 당시 운동권 활동을 형사면책 받은 과정, 홍 전 경감이 언급한 ‘도움’ 등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존안자료’가 관건이 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존안자료는 보안사가 녹화사업 대상자들을 관리하며 작성한 개인 파일이다. 이성만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과거 국군안보지원사령부에서 작성한 김 국장 관련 존안자료를 국가기록원이 이관받아 관리 중이다. 최근 MBC가 공개한 1983년 보안사령부 문서에는 대학 재학 시절 김 국장이 강제징집 후 자신이 몸담았던 이념서클 '심산연구회'의 활동을 보고한 대목이 등장하기도 했다.

김 국장은 당초 "존안기록은 나한테도 접근이 제한되는 자료"라고 해명했다. MBC 보도 이후에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 라며 존안자료의 유출을 놓고 수사의뢰할 뜻을 밝혔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1989년 경장 계급과 지금의 경장은 차이가 크다. 경장 특채 자체도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라며 "존안자료뿐 아니라 상훈에 대한 공적도 어떤 대공업무 사안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pe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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