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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 "아들 하나도 못지켜..32세에 뇌종양으로 떠난 子, 다 내탓"('마이웨이')[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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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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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나연 기자] 음악평론가 임진모가 떠나간 아들을 회상했다.

14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는 음악평론가 임진모가 출연했다.

이날 임진모는 32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제가 내외경제 기자때 사표내고 평론가에 전념하려고 했을 때 저를 운전해준 기자 동료가 있었다. 그 동료가 한 말이 가슴 속에 오래 남았다. '진모 네가 너무 젊어서 사정을 모르고 그러는데 잘못하면 패가망신한다'고. 그땐 젊었다. 저만 생각한거다. 내가 음악 좋아하니까 이렇게 한다고. 아내에게, 가족에게 그렇게 힘든것이라고는 깨닫지 못했다"고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돈 못벌어서 집안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집에서 아들과 딸을 데리고 나온날 어머니 혼자 사는 좁은 집에 사람이 셋이 들어갔다. 그날도 제가 평론을 썼다. 딸이 '아빠 오늘도 일해?'라고 했다. 그런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음악평론 하다보면 패가망신하겠다고. 처음으로 음악 평론하는거 후회했다. 다른거 했으면 더 나았겠다 싶더라.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빠 왜 우리집은 이렇게 이사를 많이 가?'라고 했다. 현재 아파트 오기까지 8번 이사했다. 수도 없이 항상 전세 대출이었다. 죽은 우리 아들이 금호동에 처음 깨끗한 방 얻었을때 뒹굴뒹굴 구르면서 '정말좋다'한걸 잊을수 없다. 너무 미안하다"라고 죄책감을 토로했다.

임진모의 아들은 1년 전 32살의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에 임진모는 "아들이 젊었을때 떠나서 다 나때문이라고 생각이 든다. 아이들 사춘기때 용돈 많이 못준게 가장 미안하다. 아들 잃고 나서 더 그랬다. 나 좋다고 평론했는데 결국 가족들한테 조금은 나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게 늘 미안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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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임진모는 첫째 딸 임효나 씨와 데이트를 즐겼다. 그는 "우리 딸하고 문화적으로 연결고리를 가졌다. 인생 음악중 하나가 비틀즈였다. 사실 딸에게 거의 강요했다. 효나도 음악 좋아했다"며 "딸과 평한 정도가 아니라 술친구다. 얘가 좀 한다"라고 친구 같은 아버지의 면모를 드러냈다.

임효나 씨는 "아빠랑 보냈던 시간들이 많았던 기억이 많다. 항상 주말에 만화영화 보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아빠가 음악도 틀어준 기억이 있다. 어릴때 집이 풍족하진 않았지만 저는 오히려 제가 어릴때 아빠한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용돈 100만원 받는거랑 그때만큼 사랑받고 용돈 못받는거 생각하면 금전적인것과 별개로 아버지를 그때나 지금이나 존경스럽고 멋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진모는 "경제적으로 단한번도 행복한적 없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한번도 불행한적 없다. 아들, 딸이 응원군"이라며 "너무 행복한다. 아들딸이 합창하면서 응원해준다는건. 이 자리에 오빠가 있었으면 우리 둘이 이야기 안하고 혼자 다 이야기 할수 있는데. 다음 주면 일년이다"라고 세상을 떠난 아들을 향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그는 "쉽게 극복이 안된다. 아들딸의 개념보다는 막역한 사이. 친구. 그런 사람이 세상을 떠났으니.. 딸과 두살차이인데 싸우기도 싸웠지만 정말 좋은 사이였다. 딸도 참는거다. 그런 오빠를 잃었으니 오죽했겠냐. 아버지인 내가 부족해서 그렇게 된거다"라고 자책했다.

이를 들은 임효나 씨는 "저도 힘들고 슬프지만 제가 부모가 돼보지 않았으니까. 아버지로서의 고통이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더 어떻게 보면 '아빠 힘들지'라는 질문을 해보진 않았다. 차마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어서. 아빠가 만약 오빠 생각으로 힘들면 나한테 편하게 기대고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임진모는 "언제든 늘 그런다. 근데 난 자식을 잃었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감정을 잃고 행복을 잃고 관계를 잃고 그런사람이 얼마나 많냐. 어차피 인생은 슬픈거다. 그렇게 생각하고자 한다. 이제 괜찮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극복했냐 물으면 그렇다고 말할순 없다. 그래도 차츰차츰 올라가고 있다. 가족들 덕분에"라고 고마워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던 당시 이야기도 전했다. 임진모는 "군대 갔다와서 대학교 3학년때 '오늘 병원에 다녀와야할것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병원 갔다 왔다. 제가 일하고 있는데 '아빠 나 뇌종양이래'라고 하더라. 마지막 수술을 넘지 못했다. 병원에 들어가서 다시 치료 받고 수술하고 나서 경과가 안좋았다. 신장 기능이 점점 줄어들고 모든 기능이 떨어지면서 서서히 지켜봐야겠다. 이틀 가까이 중환자실에서. 그 후로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8월 6일 새벽 1시에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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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임진모는 소중하게 보자기에 싸둔 아들의 액자를 꺼내들었다. 그는 "제일 중요한게 이거다. 우리 아들. 세상에서 최고의 사람. 나는 우리 아들이라고 본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20대에 뇌종양 판정을 받고 5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아들. 임진모는 "곳곳에 아들 흔적이 있다. 이 사진이 아들이 병세가 좋아졌을때였다. 졸업식날 너무 좋았다. 나는 우리 아들이 꼭 완치해서 다시 돌아와주길 바랐고 이때만 해도 완전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신념화 했다. 지금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이어 "우리 아들 책상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아들이 쓰던거 하나도 안버리고 놔뒀다. 죽은 아들 유품 다 태우라고 하는데 그러기 싫다. 당장 신고있는 신발 중에도 버리기 싫더라. 아들이 좋아했던 신발은 지금도 신고 다닌다. 내가 아들 계속 설득했다. 어차피 아빠가 일을 계속하는데 운전 할 줄 알고 의상 감각을 갖고 있었다. 아빠가 어떻게 옷을 입는게 좋은지 관심 많았다. 내 매니지먼트 해달라고 했다. 너무 좋아했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5개월간 같이 다니면서 꿈에 부풀었다. 아들이 내 일을 해준다고. 아들은 아빠 일을 돕는다고. 세상 떠난 아들이 가장 큰 팬이었다. 나비넥타도 제가 나비넥타이 하고 나가면 '다른 거로 해봐'이런식으로 거의 나비넥타이를 강요하는 수준이었다. 건강하게 살아있다면 내 매니저가 됐을거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임진모는 "지금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방송 요청 들어오는건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아직도 그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이 '자식도 하나 간수 못하는 놈이 무슨 방송활동을 하고 공적인 활동을 해'라고 하는게.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저는 그 소리가 들린다. 정말 미안하다 우리 아들. 아들도 지키지 못한 아버지가"라고 자책하면서도 "이런 말 하면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이 혼낼것 같다"고 말했다.

두 딸과 함께 아들의 첫 주기를 치른 그는 "처음으로 제 인생에서 마이웨이가 정해지지 않은 시점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최선을 다해서 아들의 삶을 살아야겠다 그런 마음도 있다"고 털어놨다.

/delight_me@osen.co.kr

[사진]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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