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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단독]법무부, ‘인혁당 유족’ 전영순·추국향씨도 이자 면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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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장관 “책임있는 결단으로 해결할 문제···진영논리 초월해야”

경향신문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유족이 2012년 9월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희생자의 영정을 들고 오열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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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인혁당 사건)’ 피해자 이창복씨에 이어 다른 피해자의 유족들에 대해서도 지연손해금(지연이자)을 면제하기로 했다. 배상금보다 커진 지연이자는 사라졌지만 ‘빚 고문’ 논란을 끝내려면 이들이 국가로부터 입은 피해를 실질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추가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법무부는 최근 인혁당 사건 피해자 유족인 전영순씨와 추국향씨에 대한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전씨와 추씨가 국가에 지연이자를 제외한 초과지급 배상금 원금만 돌려주면 재산 압류를 정지하고 부동산 강제 경매를 취소하겠다는 것이다. 추국향씨에 대한 지난달 28일 화해권고결정은 2주 동안 양측의 이의가 없어 확정됐다. 법무부는 전영순씨에 대한 지난 8일 화해권고결정에 대해서도 이의 신청을 하지 않을 방침이다.

인혁당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고(故) 전재권씨의 딸 전영순씨는 2009년 국가배상 소송에서 가지급금으로 4억2300만원을 받았지만 1억9500만원을 돌려줘야 할 처지가 됐다. 징역 20년이 선고됐던 고 정만진씨의 부인 추국향씨는 가지급금으로 배상금 10억원을 받았지만 4억6000만원을 돌려줘야 했다. 2011년 대법원이 ‘오래된 사건에 불법행위 시점 기준으로 이자를 계산하면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너무 많은 배상금을 줘야 한다’며 판례를 바꿨기 때문이다.

생활고에 시달려온 사건 피해자나 유족은 그동안 진 빚을 갚는 데 이미 가지급금을 써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초과지급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초과지급금을 갚지 못하는 동안 매년 20%씩 이자가 붙었고 피해자들이 갚아야 할 지연이자는 보상금 액수를 훌쩍 넘어섰다. 국가는 이들의 재산을 압류하고 살고 있는 아파트를 강제로 경매에 넘겼다.

경향신문

법무부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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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의 이번 ‘지연이자 탕감’ 조치로 피해자들은 일단 큰 짐을 덜었다. 하지만 초과지급금 원금을 돌려주는 일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씨는 이달 8월31일까지 2000만원을, 내년 8월31일까지 1억75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추씨는 내년 2월28일까지 4000만원을, 내년 10월31일까지 4억2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1회라도 지급이 지체되면 지연이자 면제 효력이 사라진다.

전영순씨는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초과지급금 원금을 돌려주려면 아파트를 팔아야 한다. 추국향씨는 아파트 가액이 초과지급금 원금보다 낮아서 화해권고결정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를 그대로 경매에 넘겨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측은 ‘초과지급금 원금도 대법원의 잘못된 판결 때문에 생긴 이자이니 면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법무부 측은 ‘원금까지 면제하면 배임죄에 해당할 우려가 있다’고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의 대리인인 김형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기존 대법원 판례대로라면 사실 법무부가 말하는 초과지급금 원금도 피해자에게 받아가선 안 될 이자”라며 “국가가 이자를 제대로 안 주고선 피해자들에게 이자를 내놓으라고 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법무부의 이창복씨 지연이자 면제 결정에 대해 “피해자가 배상금 반환 채무로 여전히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며 “정부는 피해자와 가족의 경제적·정신적 피해가 실질적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다양한 조치를 실행해야 한다”고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번 조치는 진영논리를 초월해 민생을 살피고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하는 국가의 임무를 다하려는 것”이라며 “국가의 실책은 없었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해당 국민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고 책임있는 결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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